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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소송에 있어 입증책임과 손해액 산정

나지원 변호사(법무법인 충정)

1. 머리말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제정 이래 무과실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다가, 2004년 법 개정을 통하여 고의·과실의 입증책임을 법 위반자에게 전환하는 방식으로 변경된 바 있다. 개정 규정상 피해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 없이도 자유로이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고 단기소멸시효조항(3년)의 제한도 없어져 민법상 불법행위의 소멸시효기간 내에 자유로이 제소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손해액의 입증곤란을 완화하기 위해 법원의 재량에 의한 손해액 인정제도가 함께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소송은 많이 활용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사인간의 소송을 통한 공정거래법 집행의 활성화를 의도했던 개정법의 취지가 충분히 달성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피해자(원고)의 입증책임과 손해액 산정기준에 관한 해석방향을 중심으로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소송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적 성질

먼저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조항(제56조)의 법적 성질에 관해  살펴보면 법 개정 전후를 막론하고 이를 불법행위책임으로 보는 견해가 대체적이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유형에 따라 개별적으로 불법행위책임 내지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볼 수 있다는 이견(엄기섭,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의 법적 성격, 법률신문 제3440호, 2006.3.6.)이 제시되었는데, 그 주요한 근거는 부당한 거래거절행위에 있어서 거래중단과 같이 행위자가 상대방과 거래계속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문제되는 경우의 손해배상책임은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래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간의 거래중단의 경우 피해자가 발생한 손해를 전보받기 위하여 계약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과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을 동시에 주장할 수 있는(청구권 경합) 사안에 불과한 것으로 이를 근거로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조항의 본질을 불법행위책임가 아닌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조항과 민법 일반의 불법행위책임간의 관계에 대해 청구권 경합관계에 있다고 보는 견해(윤태영, 경쟁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불법행위책임, 법률신문 제3515호, 2007.1.15.)가 있으나, 양자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관한 국가배상법 제2조와 민법 제756조의 관계처럼 특별법과 일반법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법조경합 관계에 있다고 볼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청구시 피해자(원고)는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와 같이 ① 사업자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존재 ② 손해의 발생 ③ 법위반행위와 손해발생 간의 인과관계 ④ 손해액을 각 입증해야 하되, 다만 가해자(피고)는 공정거래법 제56조 제1항 단서규정에 따라 당해 가해행위에 대한 고의 내지 과실 없음을 입증할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위 불법행위 성립요건의 각 입증과 관련해 먼저 가해자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입증은 소제기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고 및 조사가 병행되는 경우가 많아 법원이 변론기일추정 등을 통해  공정위의 처분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사건기록을 확보해서 판단할 수 있어 특별히 문제되고 있지 않다. 또한 손해의 발생은 가해자의 법 위반행위로 인한 경쟁제한, 거래제한에 따른 손실발생, 비용증가 등의 사실은 피해자의 회계자료, 가격자료 등을 통해 비교적 피해기간과 정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행위와 손해발생간의 인과관계의 입증과 손해배상청구의 최종적 목표인 손해액의 산정은 실무상 명확한 입증이 곤란한 경우가 많아 문제되고 있다.


3. 입증책임의 문제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에서 가해자는 가해행위에 대한 고의 내지 과실 없음을 입증할 책임을 부담하므로 사실상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법 위반행위와 손해발생 간의 인과관계, 손해액의 입증은 원칙적으로 일반 불법행위책임의 입증책임에 입각해 피해자가 법원이 고도의 개연성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입증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입증이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만일 법원이 이에 대해 비현실적인 정확성을 요구하는 경우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활용도는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 인과관계의 입증책임 완화
공정거래법상의 손해배상책임도 민법의 일반 손해배상책임의 특칙으로서 법이 정한 특별규정 외에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민법상의 논의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는 시장에서의 경쟁질서와 관련된 새로운 불법행위이므로 이러한 행위 자체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흐름의 판례이론이 전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상 가해자는 피해자의 매출부진이나 시장봉쇄현상에 대해 피해자의 가격 및 서비스 정책의 잘못, 생산·영업활동의 비효율성, 타 동종 사업자들의 성공사례, 시장경쟁에 따른 자연적 퇴출현상 등에 거론하면서 피해자들의 경영상 과실이 손해 발생 내지 손해 확대의 원인이라고 보아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간에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중소기업이나 소비자가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개개의 구성사실을 모두 입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제조물책임소송, 환경오염피해소송, 의료과오소송과 같은 특수소송에서 인정되고 있는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판례의 태도가 적용될 필요성이 있다.  사회적 형평의 관념을 고려하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따른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사실과 이에 따른 손해의 발생이 구체적으로 입증된 경우, 일응 양자간 인과관계는 인정되고 이를 부인하기 위해서 가해자가 문제된 행위가 적법하다거나(계약이 체결된 경우 계약에 근거한 행위라거나), 외생적 요인(기술혁신, 경기침체 등)이 전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손해임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나. 손해액 인정제도의 적극적 활용
공정거래법 제57조 손해액의 인정조항은 손해액의 산정에 있어 법원에 일정한 재량을 부여해 손해액의 산정기준을 완화하고자 한 것이다. 법문상 손해액 인정조항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인과관계의 인정을 전제로 ① 손해의 성질상 그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곤란한 사안임이 인정되고 ② 증거조사의 대상이 되고 변론의 전 취지로 고려될 수 있는 상당한 입증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같은 손해액 인정제도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것으로 대법원 판례는 일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때에는 손해액에 관한 입증이 없거나 불충분하더라도 법원이 석명권을 행사하고 입증을 촉구해서 손해액을 심리 판단해야 하고, 장래의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관한 입증에 있어서는 그 증명도를 과거 사실에 대한 입증에 있어서의 증명도보다 경감해 채권자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익의 증명이 아니라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은 범위 내에서의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이익의 증명으로 족하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8.2.14. 선고 2006다37892 판결 참조). 이처럼 손해액의 금전적 평가에 대한 판단은 비송적 성질을 가지는 것이어서 법원의 창조적인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거래거절과 같은 일부 유형을 제외하고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의 특성상 손해액 입증이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므로 법원은 손해액 산정에 관해 적극적인 석명권을 행사하고 이를 토대로 명문으로 도입된 손해액 인정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원고들의 경영상 잘못이 일부 확인되는 경우에 이러한 정황사실은 과실상계와 유사하게 손해액 인정에 있어 법원의 재량판단의 고려요소로 삼아서 구체적인 타당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4. 손해액 산정기준의 문제

가. 판례상 손해액 산정방법
불법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의 산정방법에 관한 우리 판례의 입장은 차액설이다. 이는 위법한 가해행위로 인해 발생한 재산상 불이익을 기준으로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재산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상태의 차이가 손해로 산정되며, 이것은 기존의 이익의 상실(적극적 손해)과 장차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상실(소극적 손해)로 구성되게 된다. 우리의 판례상 주로 부당거래거절사안에서 손해액의 입증이 다루어졌는데 이 경우에는 기존 차액설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대법원 1990. 4. 10. 선고 89다카29075 판결, 대법원 1991. 5. 19. 선고 90다17422 판결, 대법원 1997. 4. 22. 선고 96다54195 판결 등). 한편 시장지배적사업자의 부당한 가격인상이나 가격담함과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의 경우 경제분석 등을 통해 정상가격만 도출된다면 초과가격 부과로 인한 손해는 차액설에 입각하여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당염매나 끼워팔기, 구속조건부 거래로 인한 경쟁사업자 내지 소비자의 손해액 산정은 차액설에 따라 입증하는 것이 매우 곤란한 경우가 많아 문제되고 있다.

나. 미국의 손해액 산정이론
미국에서는 적극적 손해액의 산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론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전후이론(before-and-after method)이란 위반행위가 행해지기 전의 가격과 위반행위 중의 가격을 비교하여 그 차액을 근거로 손해액을 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편 척도이론(yardstick approach)은 미 연방대법원이 Bigelow사건(Bigelow v. RKO Radio Pictures, Inc., 327 U.S. 251)에서 인정한 방법으로 위반자의 경쟁제한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다른 비교시장의 가격을 기초로 경쟁가격을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점유율이론(market share theory)은 위반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비교시장에서의 원고의 매출 등 영업활동을 기준으로 문제되는 독점시장에서 위반행위가 없었다면 원고가 획득했을 이윤을 산출하여 실제 발생한 이윤과의 차이를 기초로 손해를 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 미국에서는 사안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손해액 산정방법들이 판례상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원고가 특정사업이나 고객을 잃었음을 입증함으로써 과거의 영업손해를 주장하거나, 피고의 법 위반으로 인해 원고가 영업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되었다거나, 피고의 가격과 이익을 분석하는 방법 등을 통하여 배심원들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재산상 손해가 인정되고 있다.  한편 원고의 영업이 피고의 행위에 의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라도 침해된 경우에 원고는 영업의 ‘일실영업권(lost goodwill)’이나 ‘계속기업가치(going concern value)’에 따라 손해를 산정하기도 하는데, 계속기업가치란 장래의 일실이익의 현재가치이므로 원고는 계속기업가치나 장래의 일실이익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하여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윤세리,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소송’, 「공정거래와 법치」, 법문사, 2004, 1105∼1106면).

다. 손해액 산정기준의 다양화
위와 같은 미국의 이론과 판례의 입장은 매우 탄력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거래현실에서 발생하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유형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우리도 매출동향, 비용집계, 영업이익 등을 종합하여 손해액을 산정하는 대안적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 판례상 재산상 손해 외에 위자료청구권이 별개로 인정되고 위자료의 조정적 기능이나 징벌적 기능을 감안할 때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소송의 원고인 개인사업자나 일반 소비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추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5. 맺음말

공정거래법은 전체시장의 관점에서의 경쟁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거래관계에 있어 사업자 그리고 궁극적으로 일반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경쟁당국이 공권력을 통해 시장의 경쟁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당사자에 의한 사법적 절차를 통해 시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질서에 더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억제하고 동시에 피해자의 손해를 전보하는 사소제도는 조속히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현 시점에서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간의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입증이 곤란한 손해액의 산정기준을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으며, 법원은 손해발생이 인정되는 경우 손해액 입증이 다소 곤란하더라도 이를 기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하고 합리적으로 추산되는 손해액을 적극적으로 인용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각종 경제분석이나 통계수치 등을 근거로 저작권법(제125조)과 부정경쟁방지법(제14조의2)의 규정과 같은 공정거래법상 손해액에 관한 합리적인 추정규정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