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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해외판례] 개(犬) 점유자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러시아연방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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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연방(이하 ‘러시아’)에서 개(犬)가 인적·물적 손해를 야기한 경우 그 점유자는 원칙적으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적으로 과실과 무관하게 책임이 인정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대부분의 사건이 항소심에서 종결되는 것이 일반적인 바, 아래에서는 개 점유자의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하급심 판결 두 건을 검토하고자 한다. 두 판결은 각각 개 점유자에 대해서 무과실책임을 인정한 사례와 인정하지 않은 사례로서, 러시아 법원이 민사책임과 관련하여 어떤 경우에 개 점유자의 귀책사유를 고려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동물점유자에 대한 손해배상문제와 관련하여 비교법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러시아 민법 중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조문으로는 제1064조와 제1079조를 들 수 있다. 러시아 민법 제1064조(가해행위에 대한 책임의 일반사유)는 “① 자연인의 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손해와 법인의 재산에 대한 손해는 가해자가 완전하게 배상하여야 한다. ② 가해자는 손해가 자신의 과실에 의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면한다”라고 규정하고, 또 러시아 민법 제1079조(주위에 고도의 위험을 초래하는 활동으로 입힌 손해에 대한 책임)는 “① 법인 또는 자연인은 그 활동이 주위에 대하여 고도의 위험을 수반할 경우, 손해가 불가항력 또는 피해자의 고의에 의하여 발생하였음을 증명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도의 위험원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부담한다”라고 규정한다.

첫 번째 판결(Апелляционное определение Московского городского суда от 18.01.2013 по делу N 11-1754)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닥스훈트(Dachshund)’ 종의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서 저녁 시간에 공원을 찾은 원고 S녀는 피고 L군이 ‘블랙 러시안 테리어(Black Russian Terrier)’ 종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피고의 개는 목줄과 입마개를 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원고는 피고에게 반려견을 목줄로 묶어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에 원고는 자신의 반려견을 팔로 안고 공원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자신의 개를 목줄로 묶고 원고에게 다가가면서 거친 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피고의 반려견도 점차 사나워지더니 결국 원고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원고는 가슴 부위를 물렸고 입고 있던 옷도 찢어졌다. 원고가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자 피고는 황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원고는 피고의 반려견이 러시아 민법 제1079조의 ‘고도의 위험원(источник повышенной опасности)’이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1심 법원은 무과실책임을 규정한 민법 제1079조에 기초하여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하였고, 피고가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러시아 민법은 동물에 의한 손해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일반불법행위를 규율하는 민법 제1064조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동물점유자는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자신의 동물에 의해 야기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동물에 대해서도 러시아 민법 제1079조를 적용할 수 있다. 이 조문이 고도의 위험원에 의한 손해에 대해 무과실책임을 규정한 것은 인간에 의해서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활동을 규율하는 데 본질이 있다. 피고의 반려견이 속하는 블랙 러시안 테리어라는 견종은 러시아 애견협회(Российская кинологическая федерация)의 기준에 따르면 군견(軍犬, служебная собака)에 해당하며, 대형견으로 다 자랄 경우 몸무게가 69kg에 이른다. 이런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의 반려견을 고도의 위험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1심 법원이 피고의 반려견을 고도의 위험원으로 보아 민법 제1079조에 기초하여 피고에게 무과실책임을 인정한 판단에는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두 번째 판결(Апелляционное определение СК по гражданским делам Свердловского областного суда от 20 июня 2013 г. по делу N 33-7574/2013)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원고는 동물보호소 근처를 지나다가 그곳에서 관리하고 있는 개의 무리와 직면하게 되었다.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개들은 원고를 보자 크게 짖으며 흥분하기 시작하다가 일부는 동물보호소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아래의 빈틈을 통해서 기어 나오고 다른 일부는 담장을 뛰어넘어 밖으로 탈출하여 원고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원고는 신체 부위를 물어뜯기는 등 인적 피해를 입었다.
원고는 동물보호소 관리인이 개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과실이 있고 자신을 공격한 개들이 러시아 민법 제1079조의 고도의 위험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1심 법원은 동물보호소의 개들이 고도의 위험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민법 제1079조에 기초한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피고가 개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과실을 인정하여 민법 제1064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하였다. 원고는 무과실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법원의 판단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민법 제1079조의 목적상 개를 고도의 위험원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하고 특별히 사나운 견종에 해당하여야 한다. 동물보호소가 위치한 노보우랄스크 시의회에서 제정한 반려동물 관리규정에 따르면 마스티프(Mastiff), 핏불(Pitbull), 도베르만(Doberman), 블랙 러시안 테리어(Black Russian Terrier) 등이 군견 또는 투견으로 분류되는데, 본 사안의 개들이 이런 견종에 해당한다는 점이 확인되지 않았고 원고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들을 고도의 위험원으로 볼 수 없으므로, 무과실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법원의 판단에는 오류가 없다.

위의 두 판결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에서 개는 원칙적으로 무과실책임을 규정한 러시아 민법 제1079조의 ‘고도의 위험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러시아 민법에는 동물점유자 책임을 규율하는 별도의 조문이 없기 때문에 개를 비롯한 동물의 점유자는 일반불법행위에 따라 과실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일반불법행위에 기하여 손해배상을 구하더라도 과실이 추정되므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과실 없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부담한다. 이런 면에서 동물점유자에 대해서 과실책임을 인정해도 책임의 성격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 개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여 고도의 위험원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아예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점유자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러시아 민법 제1079조에 따라 동물점유자에게 무과실책임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동물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고도로 위험한 동물의 고유한 특성의 발현으로 손해가 발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본래 사나운 특성을 갖는 일부 견종에 속하는 개일지라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등 전혀 사납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과 장난을 치다가 같이 넘어져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민법 제1079조를 적용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러시아 민법에서 고도의 위험원에 의한 책임은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의 위험책임에 해당한다. 반대로 일반 견종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순간적으로 사나워져서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위험한 동물로 돌변하여 손해를 야기하더라도 위험책임이 아닌 과실책임주의에 따라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어느 견종이 본질적으로 사나운 특성을 보이는 군견 또는 투견 등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위의 판례에서도 드러나듯이 러시아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반려동물규정 또는 러시아 애견협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견종을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부터 고도의 위험원에 의한 손해에 대해서 무과실책임을 인정해왔다. 러시아 법원이 항상 동물을 고도의 위험원으로 인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개에 의해서 물리는 사고에 대해서 민법 제1079조를 적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과실책임의 인정은 어디까지나 견종이 군견 또는 투견 등에 속하는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처럼 러시아 법원이 동물점유자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과실책임을 부과하면서도 예외적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동물 사육의 효용과 위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의 결실로 보인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반려견 점유자의 손해배상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 논의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법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시사점을 얻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우 연구위원 (사법정책연구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