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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18) 국제거래법

윤병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1. 직무발명의 통상실시권에 관한 준거법과 국제재판관할권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4763 판결)

가. 사실관계
한국에 거주하는 乙은 자동차 와이퍼를 제조하는 한국 업체인 甲 회사에 입사해 다기능 와이퍼 개발사업의 총괄 책임자로 근무하다 퇴사한 후, 해당 와이퍼에 관하여 자신을 단독 발명자, 고안자로 하여 한국에서 특허권 및 실용신안 설정등록을 받고 캐나다 등 외국에서도 그 등록을 출원하였다.

甲 회사가 와이퍼를 생산하여 캐나다에 수출하자 乙은 수입상에게 해당 와이퍼는 자신의 특허를 침해한 제품이니 거래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서신을 발송하였다. 이에 甲 회사는 해당 와이퍼가 乙의 발명이라 하더라도 이는 직무발명에 해당하므로 와이퍼를 생산?판매할 수 있는 통상실시권을 甲 회사가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 법원에 乙을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 등 영업방해의 금지를 청구하였다. 1심 소송에서 해당 와이퍼의 직무발명성과 甲 회사의 통상실시권이 인정되자, 乙은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없으며, 특허권은 각 등록국의 법제에 따라야 하는 것이므로 원고가 캐나다에서도 통상실시권을 가지는지 여부는 캐나다 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직무발명이라는 것은 근로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제도이므로 그 근로계약관계의 준거법에 의해 일률적으로 판단하면 되지 발명자가 특허출원한 각 나라의 특허법제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안이다.

나. 판시사항
甲 회사의 전 직원인 乙에 대한 영업방해금지 청구사건과 관련하여, 이 직무발명을 완성한 곳이 대한민국이고, 甲 회사가 직무발명에 기초하여 외국에 등록되는 특허권이나 실용신안권에 대하여 통상실시권을 가지는지는 특허권이나 실용신안권의 성립이나 유·무효 등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그 등록국이나 등록이 청구된 국가 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지도 아니하므로, 위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은 대한민국과 실질적인 관련성이 있어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직무발명에 의하여 발생되는 권리의무는 비록 섭외적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라도, 성질상 등록이 필요한 특허권의 성립이나 유·무효 또는 취소 등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속지주의의 원칙이나 이에 기초하여 지식재산권의 보호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국제사법 제24조의 적용대상이라 할 수 없다. 직무발명에 대하여 각국에서 특허를 받을 권리는 하나의 고용관계에 기초하여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평가되는 동일한 발명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당사자들의 이익보호 및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직무발명으로부터 비롯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 고용관계 준거법 국가의 법률에 의한 통일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직무발명에 관한 섭외적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은 그 발생의 기초가 된 근로계약의 준거법이다.

다. 해설
특허권은 등록국법에 의하여 발생하는 권리로서 법원은 다른 국가의 특허권 부여행위와 특허권의 유·무효에 대하여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본 평석 대상 판결은 직무발명과 관련하여 한국법 (현행 발명진흥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취득한 통상실시권에 기하여 제기한 영업방해금지 청구가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한 것이다. 특허권양도 계약의 해석과 효력인 양도계약 이행청구 소송의 경우에는 등록국이나 등록이 청구된 국가 법원의 전속관할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19093 판결도 비슷한 입장의 판결이다.

재판관할권을 가지는 대한민국 법원이 영업방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어느 나라 법률을 적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은 법정지의 국제사법에 의해 결정된다. 피고는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그 침해지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한 국제사법 제24조를 내세워 특허등록지인 캐나다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직무발명에 관한 섭외적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은 그 발생의 기초가 된 근로계약에 관한 준거법으로서 국제사법 28조에 따라 정해진다고 판시하였다.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이 적용될 수 있으므로, 사용자는 캐나다에 출원된 특허권에 불구하고 직무발명을 무상으로 실시할 수 있는 통상실시권을 한국법에 의해 보유한다는 것이고, 이는 외국에서 등록한 특허에 대해서도 인정된다는 판시이다. 따라서 乙은 캐나다에서도 방해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2. 미국에 제기된 제조물 책임 관련 구상금청구 소송의 국제재판관할권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2다21737 판결)

가. 사실관계
전기압력밥솥을 제조하는 대한민국 회사인 甲 회사는 미국 뉴욕 주에 본점을 둔 乙사에 대하여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전기압력밥솥을 제조, 공급하였고, 乙사는 다시 미국 플로리다 주에 본점을 두고 홈쇼핑 사업을 하는 丙사에 이를 판매하여 丙사가 미국 전역에 압력밥솥을 판매하였다. 그런데 압력밥솥의 뚜껑이 너무 일찍 열리는 문제로 인하여 화상 등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丙사에 소송을 제기하자, 丙사는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한 뒤 뉴욕법원에 甲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및 소송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뉴욕법원은 丙사의 결석재판신청을 받아들여 甲회사로 하여금 丙사에 그 판시와 같은 금원을 지급할 것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丙사는 대한민국 법원에 이 뉴욕법원 판결에 대한 집행판결을 청구하였다.

나. 판시사항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한 제조물 공급자가 제조업자를 상대로 외국 법원에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우 그 외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에는 제조업자가 그 외국 법원에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 당할 것임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제조업자와 그 법정지 사이에 실질적 관련성이 있는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피고 甲 회사가 미국에 주소나 영업소, 판매대리점 등을 두거나 미국 소비자에게 이 사건 압력밥솥에 관하여 상품광고 또는 구매상담 등의 영업행위를 한 것이 전혀 없는 이상, 단지 미국 뉴욕 주에 주소를 둔 乙사에 압력밥솥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제작하여 수출하였고, 피해자 중 일부가 뉴욕 주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이 사건 뉴욕법원에 그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당할 것임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피고와 미국 뉴욕 주 사이에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 해설
민사소송법은 외국판결의 승인을 위한 요건으로 당해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의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 본 판결이 내려지기 전, 해외에서 제기되는 제조물책임 판결의 집행과 관련해서 대법원 1995. 11. 21. 선고 93다39607 판결이 주목할 만한 판결이었다. 93다39607 판결은 i) 2001년 국제사법 개정 전에 내려진 판결이었으므로, '실질적 관련성'을 요구하는 근거를 조리에서 찾았으며, ii) 일반 수출업체의 경우 실질적 관련성 및 외국 법원에서 제소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당해 손해 발생지의 시장을 위한 제품의 디자인, 그 지역에서의 상품광고, 그 지역 고객들을 위한 정기적인 구매상담, 그 지역 내에서의 판매대리점 개설 등과 같이 당해 손해 발생지 내에서의 거래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려는 제조자의 의도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열거한 바 있다. 또, iii) 93다 39607판결의 사안은 피고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피해자들에 의해 제기된 제조물책임소송에서 제3자소송인수참가 신청에 의해 제3당사자 피고가 된 후 패소한 판결의 집행이 국내에서 문제된 사안이었다. 이에 비하여, 본 판결은 미국 플로리다에 제기된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피해를 배상한 수입자가 뉴욕법원에 구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그리고 OEM 방식에 의하여 미국에 수출을 한 사안이었으므로, 미국에 주소나 영업소, 판매대리점 등을 두거나 미국 소비자에게 이 사건 압력밥솥에 관하여 상품광고 또는 구매상담 등의 영업행위를 한 것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실질적 관련성을 판단하였다. 일반 수출업체의 경우에는 93다39607 판결이 설시한 바와 같이 당해 손해 발생지의 시장을 위한 제품의 디자인, 그 지역에서의 상품광고 등의 여부도 고려할 것이다. 이 판결들은 외국법원에 제소 당한 한국업체들이 해외 소송에 응소할 것인지를 검토할 때 자주 고려되는 판례들이다.

3. 영국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되는 상계의 수동채권이 압류된 경우의 법률관계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2다108764 판결)

가. 사실관계
소외 乙 해운회사와 피고 丙 해운회사는 상호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미지급 용선료 및 손해배상 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丙 회사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丙 회사는 乙 회사에게 상계의 의사표시를 하였다. 그 후 乙 회사의 채권자인 원고 甲 해운회사는 乙이 丙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가압류한 뒤 추심명령을 받아 丙에 대하여 추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소송에서 丙이 상계항변을 주장하자 甲은 丙의 상계권 행사는 영국법상 상계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효력이 없으며, 丙의 상계가 사법상 확정된 시점보다 甲의 가압류 시점이 앞서므로 丙이 甲에게 상계로써 대항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판시사항
영국법상의 상계는 소송상 항변권으로만 행사할 수 있는 등 절차법적인 성격을 가지는 한편, 상계권의 행사에 의하여 양 채권이 대등액에서 소멸한다는 점에서 실체법적인 성격도 아울러 가진다 할 것이므로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하여 준거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

외국적 요소가 있는 채권들 사이에서의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한 법률관계가 상계의 준거법에 따라 해석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대한민국의 민사집행법에 의하여 가압류명령 또는 채권압류명령 및 추심명령을 받아 채권집행을 한 경우에,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가지고 상계로써 가압류채권자 또는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는 집행절차인 채권가압류나 채권압류의 효력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대한민국 법에 의하여 판단함이 원칙이고 상계의 준거법에 의할 것은 아니다.

다. 해설
원고가 제기한 추심금 소송에서 제3채무자인 피고는 상계항변을 제기하였다. 그에 대해 원고는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르면 사법적 확정이 필요한데 그 전에 수동채권에 대한 원고의 가압류결정이 송달되었으므로, 피고는 상계로 대항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과 대법원은 본 건 채권들 사이에서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한 법률관계가 상계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라 해석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대한민국의 민사집행법에 의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채권집행을 한 경우에, 제3채무자가 반대채권(자동채권)을 가지고 상계로써 가압류채권자 또는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여부는 집행절차인 채권가압류나 채권압류의 효력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법정지인 대한민국의 민사집행법에 따라 판단함이 원칙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가압류의 효력 발생 당시에 대립하는 양 채권이 모두 변제기가 도래하였거나, 그 당시 반대채권(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때라도 그것이 피가압류채권 (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면, 상계로써 가압류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본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서. 甲의 가압류 당시 이미 丙의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여 한국법상 상계적상에 있었던 경우이므로 본 건에서는 상계의 효력이 우선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상계를 소송상의 항변으로 할 것을 요구하는 영국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추심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한국법에 따른 상계의 요건을 갖추면 제3채무자는 상계로 대항할 수 있다는 판시이다.

4. 중재합의의 당사자 확정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3다74868판결)

가. 사실관계
甲은 乙과 丙이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으로, 甲은 乙 및 丙과 사이에 甲이 발행한 주식의 배당금지급 등에 관하여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甲은 소유 토지의 매각 과정에서 매매대금을 주주인 乙 및 丙에게 이익배당금 및 사채원리금 형식으로 선지급하고 나중에 甲이 매매대금을 매수인에게 반환해야 할 사유 등이 발생하는 경우 乙과 丙이 위 선급금을 일체의 이의 없이 반환한다는 확약서를 제공받았다. 이 확약서에는 중재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甲이 매매대금을 반환해야 할 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乙이 위 선급금을 반환하지 않자 甲은 주주 간 계약의 중재조항에 근거하여 乙을 상대로 확약서에 따른 이행을 청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였고 중재판정부로부터 甲의 청구를 인용하는 중재판정을 받았다.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乙은 甲은 이 사건 중재조항의 당사자가 아니며 주주 간 계약의 중재조항이 확약서에 관련한 분쟁인 이 사건에 미치지 아니하여 중재약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판시사항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이 원고, 피고 및 丙(펀드) 사이에 체결되었고 '당사자들(parties)'과 '주주들(shareholders)'이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에서 '당사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에 서명한 3개의 회사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보아야 하고, 이는 이 사건 중재합의를 규정하고 있는 중재조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원고는 이 사건 중재조항의 당사자에 포함된다.

확약서는 주주들에 대한 이익배당, 사채의 발행 및 대여금의 상환 등을 규정하고 있는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의 실행을 위한 후속약정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확약서를 둘러싼 원고와 피고 사이의 분쟁은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으로부터 발생한('arising out of') 분쟁 내지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의 적용과 관련한('in connection with') 분쟁에 해당한다.

다. 해설
피고는 합작회사인 원고는 주주 간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고 이 사건 분쟁은 확약서에 대한 분쟁으로 주주 간 계약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이 사건 중재조항의 효력은 이 사건 확약서에 미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였고 원심은 이를 인정하여 중재판정의 집행을 거부하였으나, 대법원은 주주 간 계약에 서명한 합작회사 원고 역시 그 계약의 당사자이고 중재합의의 당사자이며, 이 사건 분쟁은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으로부터 발생하거나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의 적용과 관련한 분쟁에 해당하여 중재합의의 범위에 속하는 중재판정이라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이 사건 주주 간 계약의 당사자들이 선급금의 '분배'에 관한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기로 하면서도 그 '반환'과 관련된 분쟁은 다른 분쟁해결절차로 해결하기로 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합리적인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건 선급금의 분배 및 반환과 관련된 모든 분쟁을 하나의 분쟁해결수단, 즉 이 사건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로 해결하려고 하였다고 보는 것이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평석 대상 판결은 중재합의가 적용되는 당사자의 범위를 넓게 보았고, 중재회부조항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인 본 계약으로부터 발생한('arising out of') 분쟁 내지 본 계약의 적용과 관련한('in connection with') 분쟁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중재친화적 판단을 한 판결이다.

5. 실손해의 전보 성격의 외국판결 집행과 공서양속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1284)

가. 사실관계
원고는 지폐계수기 특허를 가지고 있는 미국 법인이고 피고는 지폐계수기를 생산하여 미국에 수출하는 대한민국 법인이다. 원고는 피고의 제품이 원고의 특허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약 1200백만 불 상당의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제재적 성격의 손해액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원고가 대한민국 법원에 미국판결의 집행판결을 청구하자 피고는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2 (2014년 5월 20일 신설)를 내세워, 위 미국판결은 과다한 배상액을 인정한 것이고, 대한민국 법률이 특허로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그 집행은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판시사항
"손해배상에 관한 확정재판 등이 대한민국의 법률 또는 대한민국이 체결한 국제조약의 기본질서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에는 해당 확정재판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승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 제1항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배상액의 지급을 명한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 등을 제한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당사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를 전보하는 손해배상을 명하는 경우에는 동항을 근거로 승인을 제한할 수 없다.

다. 해설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3호, 민사집행법 제27조 제2항 제2호는 외국 판결의 승인 및 집행의 요건으로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을 것을 들고 있다. 종래 하급심 판결 중 지나치게 고액의 손해배상액 전부의 집행 승인은 공서양속에 위반함을 이유로 승인을 50%로 제한한 사례(서울동부지방법원 93가합19069 판결) 및 약정보상금의 2배 상당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우리나라의 손해배상제도와 근본이념이 다른 것이므로 실손해액으로 손해배상의 범위를 제한한 사례(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07가합1706 판결)등이 있어서, 징벌적 손해배상 외에도 손해배상액이 과다한 경우 그 집행이 거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논란이 있었고, 2014년 신설된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도 징벌적 손해배상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이 조항의 해석 적용의 범위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평석 대상 판결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실손해의 전보를 위한 것이라면 단지 액수가 과다하다는 사정만으로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 위반 또는 공서양속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본 판결의 취지이며, 2014년 5월 20일 개정에 의하여 신설된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2 제1항의 해석 적용에 관한 첫 판결이다. 최근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5다207747판결도 같은 취지로 판시하여,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2의 해석을 보상적 성격의 손해배상에까지 확대하고 있지는 않다.

6. 독립적 은행보증에서 권리남용의 명백성 입증 (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다6442 판결)

가. 사실관계 및 판시사항
이 판례는 해상법에 관한 2015년 중요판례 분석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나. 해설
선수금환급보증이 독립적 은행보증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독립성과 관련하여 그 예외가 자주 문제된다. 독립성이란, 일반 보증과는 달리 원인관계와 단절되어, 실제 원인계약 하에서 주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보증금액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영미법은 사기(fraud)의 법리로, 대륙법계는 신의칙 내지 권리남용 이론을 통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1994. 12. 9. 선고 93다3873 판결에서 독립적 은행보증과 관련한 권리남용의 법리를 정립하였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계약위반 여부가 다투어지는 사안에 관해서 계약위반이 없음을 이유로 독립적 은행보증의 지급금지가처분을 제기하여, 권리남용의 명백성에 대한 판단보다는 원인관계 분쟁에 대한 실질판단이나 계약위반 존부 판단을 받기 위한 주장이 전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평석 대상 판결은 은행이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위해서 권리남용이 어느 정도로 명백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2014. 8. 26. 선고 2013다53700 판결도 同旨). 권리남용 여부에 대한 판단은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당장 확보할 수 있는 자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원인관계 분쟁에 대한 자세한 탐구를 거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사정을 토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한 예로는 원인계약상 보증의뢰인의 의무가 충분히 이행되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경우나 수익자가 보증의뢰인의 원인계약상의 의무이행을 고의로 방해하였음이 명백한 경우를 들고 있다.

이 사건에서 조선소와 선주는 서로의 계약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 후 본소/반소로 손해배상을 구하였는데, 원심은 조선소의 계약 해제 사유가 좀 더 명백하다는 이유로 선주의 권리 행사를 권리남용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계약해제의 적법성 여부가 양 당사자 간에 상당기간 다투어진 점에 비추어 볼 때 권리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판결은 독립적 은행보증의 예외 사유에 대한 기존의 대법원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예외 사유의 입증방법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데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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