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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기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합564554

갤러리에 맡긴 미술작품 '임의 처분권한' 싸고 공방

A씨는 2009년 8월 유명 설치미술가 야요이 쿠사마의 '무한수옥' 등 미술품 9점을 갤러리 운영자 B씨에게 맡기고 보관위탁계약을 체결했다. B씨는 미술품 목록이 기재된 작품보관증을 작성해 A씨에게 줬다. 그런데 2013년 8월 A씨가 B씨에게 작품 반환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B씨가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A씨는 B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B씨는 작품 3점을 반환했다. 하지만 6점은 돌려주지 않았다. B씨는 "A씨가 미술품을 맡기면서 팔아달라고 해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A씨는 "보관을 위탁하면서 살 사람이 있으면 매매여부와 가격을 협의해 확인 후 매매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임의로 팔아도 좋다는 허락을 한 적은 없다"며 지난해 9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전현정 부장판사)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미술품들을 반환하고, 미술품 강제집행이 불능일 땐 8억6380만원을 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4가합564554)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술계에는 갤러리에 판매를 위탁하면 대신 팔아주고 수수료를 취득하는 관행이 있다"면서도 "미술작품은 작가의 유명도와 경제 상황 등에 따라 가격 변동주기가 짧고 등락폭이 커서 이런 관행은 보통 소유자가 짧은 기간을 정해 작품 판매를 위탁하는 등 시가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2009년 8월 개인사정으로 출국하게 되자 B씨에게 작품들을 맡겼는데,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게 된 상황에서 미술품이 언제 팔릴지 알 수 없었고 미술작품의 국내 시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따라서 A씨가 B씨에게 미술작품 처분권한을 줬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A씨의 임치계약 해지 의사표시에 따라 B씨는 아직 반환하지 않은 6점의 미술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B씨가 2011년 제3자인 C씨에게 작품 판매를 의뢰하고 인도했는데, C씨가 '또 다른 사람한테서 위탁 제안을 받고 넘긴 뒤 판매가 이뤄졌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미술품을 반환하지 못해 B씨가 형사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된 후에도 이를 반환하지 못한 사정에 비춰보면 미반환 미술작품은 B씨로서도 소재를 확인할 수 없어 반환의무는 이행불능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미술품 강제집행이 불능인 경우 전보배상을 해달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미술품 인도의무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강제집행이 불능인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라며 "미술품 인도의무 자체가 이행불능이 됐으므로 8억6380만원을 지급하라는 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미술품의 경우 단기간에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미술품 가액만큼의 손해배상 청구가 아닌 작품 자체의 반환을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소송에서 A씨 패소가 확정되더라도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