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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의 망령

차동언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아직도 나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이야기’라는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 핵심에는 상품권을 둘러싼 일부 국민들의 한탕심리가 깊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의정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근무하던 2004년 말경 전국 최초로 상품권 발행업자와 오락실 업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단속하였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소위 ‘딱지 상품권’이라고 불리는 종이쪽지와도 같은 물건을 이용하여 하루에도 수백억원 이상의 상품권이 오락실의 경품으로 거래되고 그 거래액의 10%를 수수료로 챙기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오락실에 투자하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오락실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분명히 사회의 독버섯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실체를 뒤집어보면 한탕주의에 빠진 불쌍한 서민들의 군상이라는 이중적인 존재를 확인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씁쓸하였다.

십 수년 전에는 이미 망해버린 모 구두회사의 상품권이 액면가의 10% 내외의 가격으로 유통되는 일도 있었는데 이것도 상품권의 액면가와 실제 거래가의 차이를 이용해 선량한 시민들을 우롱하려는 얄팍한 범죄였다.

당연히 그 상품권을 액면가액의 10% 내외에 싸게(?) 구매했던 사람들이 구두를 사러갔다가 당하는 황당한 상황은 눈에 보듯 선하다.

일반인들 사이에 가벼운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도입된 상품권이 이렇게 서민들의 한탕주의 심리를 자극한 후 그들의 등을 쳐먹는 수단으로 변질되게 된 뒤에는 정부가 상품권의 금융적 성격을 너무 간과한 데 있는 것 같다.

상품권이란 일종의 화폐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유사 발권력을 민간기업에 아무런 제약 없이 허용한다는 것은 결국 상품권을 매개로한 금융시장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지난 2003년의 카드회사의 부실채무논란과도 같은 대형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상품권의 문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물건을 싸게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편승하여 자격도 없는 업자들이 무분별하게 상품권을 발행하여 서민들의 재산을 편취하거나 아니면 이러한 상품권 발행 사업이 속칭 대박이라는 식으로 서민을 유혹하여 투자를 하게 만드는 서민 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바다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있는 대박심리를 타고 상품권이라는 유령이 언제든지 문밖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다. 이런 불안정한 서민들의 심리를 안정시켜 주는 것이 ‘바다이야기’ 수사의 진짜 중요한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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