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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는 항상 선(善)인가

이재교 변호사(인천)

“和解는 名判決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법원은 화해·조정에 열중한다. 과연 화해가 최상일까? 예를 들어보자. 원고가 100만원 대여금 반환소송에 대하여 피고는 차용하지 않았다고 다투고 있다. 원고와 피고가 기억에 착오를 일으킬 사정이 없다면, 원고나 피고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요즘 법원에서 흔히 시도하는 바와 같이 절반의 금액에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하자. 이게 타당한 결과일까? 피고가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피고는 거짓말을 해서 50만원을 편취했고, 원고는 50만원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正義는 실현되지 않았다. 여기서 특히 문제되는 점은 피고의 거짓말이 원고로부터 承認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원고는 피고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타협을 했다. 그 결과 피고는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되고, 원고는 全敗가 무서워 타협했다는 劣敗感이 남는다. 이 건 단순히 금전 문제가 아니다.

이런 타협이 誤判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꼭 그렇지도 않다. 피고가 전부승소하여 100만원을 편취하였더라도 원고의 同意에 의한 타협이 아니라 法官을 속여 범행에 성공한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피고 자신이 잘 안다. 죄의식이 생긴다. 반면, 원고는 비록 패했지만 피고가 교활하게 법관을 속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열패감을 느끼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100만원을 날치기 당한 것과 유사하게 감정을 갖게 될 터인데, 이는 세월이 지나면 곧 잊어버릴 성질이다. 단순 금전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는 화해나 조정이 판결보다 결코 낫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건에서는 당사자 쌍방이 스스로 원하면 모르되, 법원이 타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誤判을 무릅쓰고라도 면밀한 審理를 통하여 흑백을 가려줄 필요가 있다. 그게 正義에 가깝다.

그리고 법원의 권유로 화해나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마음이 약한 사람이 주로 손해를 본다. 법원이 간곡하게 쌍방에 양보를 권할 경우 착한 사람은 그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여 대폭 양보하는 반면, 악한 사람은 버틴다. 결과를 보면, 버틴 사람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화해나 조정이 바람직한 사건도 물론 있다. 친인척 사이의 분쟁, 판결로 액수를 확정하기 곤란한 유형의 소송, 法理대로 판결하면 정의롭지 않은 결과에 이르는 소송 등은 분명 명판결보다 최악의 화해가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법원에서는 조정에 적합한 사건인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우선적으로 조정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大法院에서 법관별로 조정률 통계를 낸다는 소문도 들린다. 더욱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면 조정을 강권하다가 이를 거부하는 측에게 패소 판결해 버리는 듯한 경우에는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느낀다. 화해·조정이 항상 最善은 아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