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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刮目相對)

금태섭 검사(서울중앙지검)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친구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고시원에서 지낸 일이 있다. 친구 녀석은 심심한 시골 고시원 생활에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공부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떠들기도 하면서 잘 지냈다. 유달리 먹성이 좋은데다 남들의 두서너 배는 밥을 빨리 먹는 나는 식사 때마다 밥솥의 거의 절반을 해치워서 눈총을 사곤 했는데, 고시생들의 원성이 린치에 이르기 전에 중재를 해준 것도 그 녀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연수원에 들어갈 즈음 그 친구가 찾아와서 영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만큼이나 예술적인 기질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뜻밖이었다. 녀석은 배우가 되겠다는 것도 감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제작을 해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찾아 떠나는 친구를 보는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지청에 근무하고 있을 때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촬영 현장을 쫓아다니고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녀석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여전히 번듯한 직업이 없었고, 여전히 총각이었다. 나는 모처럼 만난 친구에게 저녁을 사주면서 이제 정신 좀 차리라고 간곡히 충고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내 말은 듣는지 마는지 연신 회를 집어 먹으면서 남해안의 풍광에 대한 찬탄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바쁜 생활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친구가 그 후 외화를 수입하여 제법 수익을 올리고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공직의 꿈을 접고 재미있는 분야에 진출한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녀석이 영화를 만든다는 걱정스러운 소식이 들렸다. 동창들에게 어떤 영화인지 물어보았다. 제목부터 불길해 보였다. ‘왕의 남자’라니. 더 이상 촌스러운 제목이 있을 수 있을까. 개봉 시기는 또 왜 하필 소문난 대작들과 같은지. 선전물을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등장한다고 했다. 흥행 실패는 명약관화였다. 녀석을 설득해서 계속 시험을 보게 하지 못한 것이 친구 부모님께 죄스럽기까지 했다.

얼마 후 ‘왕의 남자’는 개봉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간판을 내릴 것이라는 나의 건방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는 그때까지의 모든 흥행기록을 깨뜨렸고 국민 4명 중 1명꼴로 관람을 했다. 평단의 반응도 좋았다. 친구 녀석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대한민국 관객이 세계최고입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고시원에서 한 방을 나눠 쓰며 티격태격하던 때가 꿈인 것 같았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고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야 한다고 했던가. 옛 사람들의 말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