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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판결 이유설명 소감

김홍엽 연세대법대 교수(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지난달 고등민사법정에서 겪은 일이다. 재판장이 선고할 사건에 대해 먼저 판결을 선고하면서 판결이유를 간략히 설명하였다. 오후 재판이어서 속행 사건의 진행 전에 두 건을 선고하였는데, 먼저 선고한 한 건에 대하여도 항소인이 선고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는 듯이 자리를 뜨지 않고 불평을 하였는데, 다른 사건에서도 아예 재판부를 향해 고함을 치고 점잖게 적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법대에 앉아 재판을 하는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느낄까…’생각하고 나 자신이 민망하여 재판부를 쳐다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았으면 소리를 치는 사람을 잡고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따끔하게 호통을 치고, 그대로 계속 떠들면 감치재판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재판장이 너무나 초연하게 다음 속행사건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기는 했으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물론 민사사건에서의 판결이유의 설명은 민사소송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에서는 모든 사건에 대해 판결을 선고하면서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때에 한해 간략히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사사건의 경우 판결정본이 송달되고, 그때부터 2주일 동안 충분히 판결이유를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형사사건과 같이 판결정본을 별도의 신청 없이는 교부하지 아니하고 불복할 수 있는 기간 역시 선고일로부터 7일인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민사사건 중 판결이유를 간략하게나마 선고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라는 것은 집단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개별 당사자가 그 판결이유를 제대로 알기 어려울 수도 있는 사건, 당사자의 입장이 첨예하여 재판부가 한 판단의 단서를 어느 정도라도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사건이라든지, 당사자가 선고 내용에 대하여 전혀 예상 밖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에 관한 것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실 민사사건의 경우 단순히 “어떻게 주장하나 이에 대한 증거가 없습니다.”라는 정도로 간략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일 경우에는 법률적 판단에 대한 설명이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보이는데, 법률적 사항에 관한 설명을 당사자가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사자로서는 판결 결과가 주된 관심이므로 그 이유에 대해 제대로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들을 마음을 내어 귀를 기울여 듣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소 당사자로서는 선고 결과에 대한 불만이 있는데다가 알기 어려운 판결이유로 인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게 되고, 이는 결국 판결결과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단초가 된다.

나는 비록 민사소송법이 간략히 판결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당사자가 재판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아, 선고를 하면서 판결이유까지 간략히 설명해주더라도 이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인지를 미리 예상하여, 판결이유를 설명할 사건을 매우 신중하게 정하였으면 한다.

일률적으로 판결이유를 설명한다든지, 판결이유 설명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기일진행에 차질을 초래한다든가, 소송대리인이 있는 사건에서 당사자만 출석한 상황에서 법리적인 설명을 한다든지, 당사자가 설명한 판결이유에 대해 시비를 할 개연성이 있는 경우에는 판결이유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보인다.

나는 솔직히 민사소송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민사사건의 경우 판결이유를 설명하는 것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이에 부수되는 부작용적인 면을 고려하면 아예 설명을 하지 않는 방법도 검토하였으면 한다. 앞에서와 같이 설명이 필요한 경우도 없지 아니하나 요령껏 설명을 하지 않으면 추후 판결정본을 받아 이를 제대로 검토하기 전에, 법정에서 들은 몇 마디 설명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불복여부를 감정적으로 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민사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진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이라는 측면에서 배려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요즘 국민을 섬기는 재판의 기치 아래 국민에게 다가가는 법원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하여는 아무리 상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에 충분히 동의한다. 법원이 밝아졌고, 친절해졌으며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속으로 스며들기 위하여 정말 많이 노력하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 다른 면에서는 종래와 다르게 법원이 그래도 확보해야 할 마지막 권위, 이것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헌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적 정당성의 확보를 위한 필요불가결한 법적 권위 자체가 예전보다는 많이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재판당사자가 법정에서 불만을 여과 없이 토로하고 이로 인해 사건의 진행에 방해를 받더라도 이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재판부의 강단성이 친절한 사법부의 시대적 요구 앞에 약화될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현실은 무언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론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어떻게 접근하여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는, 결국 한국의 법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여 진정한 의미의 효율성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변론주의의 원칙을 관철한다고 하여 구술변론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은 그 취지는 너무나 정당하나 구술변론주의의 강화가 종래의 사건처리와 실질적으로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고, 그러한 차이가 민사재판의 적정, 공평, 신속, 경제라는 기본원칙에 어떻게 보다 충실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의 민사소송법 권위자인 모 교수가 사석에서 일본의 경우 구술변론주의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이를 보다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로서는 아직 이에 대한 검토가 없는 상태에서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변화의 조치들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원의 변화가 장래를 위해서 진정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착실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람이 간절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