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및 재산분할 사건 1심 판결(12월 6일,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과 관련해 제3자로부터 노 관장의 인터뷰 의사를 전달받고 법률신문 편집국은 고민과 논의를 거듭했다. 사적(私的) 분쟁 사건에서 일방 당사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인터뷰가 자칫 상급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이 사건은 통상의 재산분할 사건과는 달리 공적 관심의 영역에 있고, 1심 판결이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 기여와 사업용 재산의 분할’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신문은 상대방인 최 회장 측이 요청할 경우 그 주장을 똑같은 비중으로 보도할 것을 약속드리며 인터뷰 전문을 보도한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8일 진행됐다.
<편집자 주>
(사진=백성현 기자)
- 1심 판결에 대한 소감은?
예상 못한 결과였다. 제가 결혼 생활 34년간 가장 애를 쓴 것은 가정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 동안 인내하기 어려운 일도 많았다. 그래도 저는 가정을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을 했다.
2017년 남편(최태원 SK 회장)이 먼저 이혼 소송을 냈고, 그래도 견디다가 더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서 2019년 반소(反訴)를 제기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이어온 재판이고 국민들도 다 지켜보시는 재판인데, 판결이 이렇게 난 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럽다. 특히 이 판결로 인해 힘들게 가정을 지켜온 많은 분들이 유책 배우자에게 이혼을 당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대표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다.
- 1심 판결에서 재산분할 665억여 원이 인정됐다.
많은 분들이 보시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안위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저도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미래세대, 특히 교육과 여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 제가 그동안 해 오던 문화예술과 기술교육 분야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재산분할을 단지 부양의 개념으로만 본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외부에 드러난 바로 5조 가까이 되는 남편 재산에서 제가 분할받은 비율이 1.2%가 안 된다. 3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그 사업을 현재의 규모로 일구는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 금액보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다.
이번 판결로 수십년을 함께 한 배우자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받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 판결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어떤 부분인가요?
1심 판결문에서는 ‘가사노동 등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고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SK주식회사 주식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가정경제공동체와는 뚜렷하게 구분해 관리 운영되었으므로 가정주부이자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인 제가 SK주식의 유지·관리에 관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도 봤다. SK주식의 관리업무와 실무는 과거부터 그룹 경영기획실 등이 협력해 수행해서 저의 기여나 관여가 없다고 했고,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면서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맡고 있는 제가 SK주식의 가치 상승이나 처분 및 관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런 이유로 SK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억울하고 부당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많지만 외부 지면을 통해 판결문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잘 설명드릴 예정이다. 다만 1심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들 뿐만 아니라 그 규모를 불문하고 사업체를 남편이 운영하는 부부의 경우, 외도를 한 남편이 수십년 동안 가정을 지키고 안팎으로 내조해 온 아내를 거의 재산상의 손실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1심 판결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백성현 기자)
- 회사의 성장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요?
최 회장과는 1988년 결혼해서 큰 딸, 둘째 딸, 막내아들을 낳아 잘 키웠고 34년 간 가정을 지켜왔다. 최 회장이 두차례나 구속되고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저는 가사에만 종사한 사람은 아니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에서 최 회장을 만났을 때부터 미래와 사회에 대한 꿈과 비전을 함께 나눈 파트너였다. 결혼 후 자녀들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저는 육아와 내조를, 남편은 밖에서 사업을 하는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는 SK의 무형의 가치, 즉 문화적 자산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 SK 본사 서린동 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는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서 불모지였던 미디어아트 영역을 개척한 SK그룹의 문화적 자산이다. 기술 중심의 미래지향적 기업 이미지와 맞는 영역이다. 시작부터 남편과 의논하며 설립했고 20년 가까이 SK 그룹과 협력하며 유지해 왔다.
여태껏 34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제가 SK의 가치에 기여하면 했지 훼손한 적은 없었다.
- 1심은 SK 주식은 최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돈으로 취득한 특유재산이므로 분할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본 것 아닌가?
1심 판결이 SK주식은 최 회장의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이 1994년 11월경 아버지인 고 최종현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2억 8000만 원으로 인수한 대한텔레콤 주식이 이후 인수, 합병, 액면분할, 증여 등을 거치면서 현재 SK주식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여러 도움도 있었다. 항소심에서 SK 재산 형성 과정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밝히겠다.
1심 판결은 SK주식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의 모든 특유재산, 다시 말해 SK주식뿐만 아니라 미술품과 부동산 등을 전부 분할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특유재산이라 하더라도 배우자가 그 유지와 존속에 기여했으면 분할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으로 알고있다. 같은 가정법원 다른 재판부의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에서도 최 회장의 350만주(약27%) 주식을 처분하지말라는 결정을 받았다. 왜 이런 1심 판결이 나오게 되었는지 납득이 안 된다.
- 1심이 재산분할에서 ‘이해관계자가 많은 기업의 존립과 운영’도 고려한 것 아닌가?
제가 요구한 것은 ‘재산 분할’이지 ‘회사 분할’이 아니다. 함께 이루었지만 최 회장의 명의로만 되어 있는 공유재산이자 사유재산을 분할해 달라는 것이다. 상급심에서 저의 기여만큼 정당하게 SK주식을 분할받으면 SK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다. 주주로서 역할을 잘 할 것이다. 제 아이들 셋이 다 SK에 적을 두고 있다. 저는 당연히 SK가 더 좋은 회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이다.
- 일각에서는 재벌가의 재산 다툼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 않다.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돈 보다도 가정의 가치다. 사회의 기준이 되는 가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저의 경우는 보통의 이혼과는 다른 ‘축출 이혼’이다. 쫓겨난 것이다. 1심 판결로 인해 앞으로 기업을 가진 남편은 가정을 지킨 배우자를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성의 역할과 가정의 가치가 전면 부인되었다. 이것이 제 마음을 가장 괴롭힌다. 이 판결로 갑자기 시계가 한 세대이상 뒤로 물러난 것 같다.
- 항소는 어떻게 결정했나?
1심 재판은 제겐 완전한 패소였다. 재판부가 최 회장의 입장을 거의 100% 받아주었다. 1심 판결문을 받아들고 나서 재판을 더 받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 딸과 함께 차를 타고 눈길을 운전하면서 “엄마 혼자 너무 힘드네. 여기서 멈출까”라고 물어봤다. “엄마, 그만하면 됐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모든 마음을 꺾는 판결이었다. 그런데 딸이 “여기서 그만두는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은 싫다”고 대답했다.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 어떻게 법률신문과의 인터뷰를 생각하게 됐나?
법을 믿고, 법에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법률 문외한이지만 상식과 법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1심 판결에 큰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법과 시스템을 믿는다. 그 시스템을 이끌고 계신 법률가분들에게 항소를 하면서 작은 호소라도 드리고 싶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가정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 가치의 훼손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 사법부가 그것을 지켜주는 곳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사법부를 믿고 열심히 항소심 준비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