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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몰래 녹음한 뒤 소송증거 제출은 ‘음성권 침해’

법원, 국가에 배상책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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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던 당사자 일방이 몰래 대화 내용을 녹음해 녹취서를 소송 증거로 제출되도록 한 것은 다른 대화 참여자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해 위자료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최근 대화 녹음이나 녹취서 등을 소송 등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일이 빈번한데 주의가 필요하다.

여성가족부 공무원인 A 씨는 2020년 2월 갑질 행위 혐의 등으로 중징계가 의결돼 직위해제됐다. 이에 A 씨는 부처 내 비위행위를 고발한 일로 보복성 징계를 받은 것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분보장 조치를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여가부는 권익위를 상대로 소송에 돌입했다. A 씨에 대한 신분보장 조치를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한편 A 씨를 공익신고자로 본 모 공익재단 관계자들은 여가부에 징계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자 여가부 소속 공무원인 B 씨와 C 씨는 이 재단 이사장인 E 씨와 상임이사 F 씨를 만나 "정당한 징계권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B 씨 등은 이 과정에서 E 씨 등과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그리고 녹음 녹취서를 관련 소송에 서증으로 제출되도록 했다. 이에 E 씨 등 재단 관계자들은 "음성권 침해"라며 국가와 B 씨, C 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여가부공무원,

공익신고 조력자 동의없이 대화 녹취


행정소송 서증으로 제출은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하헌우 부장판사
는 지난 2일 E 씨와 F 씨가 국가와 B 씨, C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1가단5160620)에서"국가는 E 씨와 F 씨에게 각각 위자료 3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하 부장판사는 "피고들은 내부적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대화를 녹음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녹음은 녹취서로 작성돼 관련 행정소송 담당자에게 전달됐고 여가부 측 소송대리인에 의해 서증으로까지 제출됐다"며 "서증 제출 시점이 관련 소송에서 원고들이 작성한 탄원서가 제출된 이후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국 원고들이 작성한 탄원서를 탄핵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그런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은 이 녹음과 녹취서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제출·유포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들의 행위는 원고들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공무원 B 씨와 C 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불법행위를 한 공무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개인 책임을 부담하지는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95다38677) 등을 근거로 기각했다.

유사한 사건은 앞서도 있었다. 후배 교사가 갈등을 겪던 선배 교사의 음성을 휴대폰으로 녹음한 사건인데, 법원은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음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당시 이 판결은 통화 중이나 일상에서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을 하는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음성권이 다소 침해됐더라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녹음이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2019다256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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