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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하루

캐비닛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사건들. 신속하면서도 적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애쓰는 법관의 모습은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재판 준비를 위해 기록 속에 파묻히고, 재판기일에는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치열한 고민을 거듭한다. 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선 판사들은 오늘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숨가쁜 삶을 살고 있다. 본보는 '제59회 법의 날'을 맞아 국민 민생 사건 최일선에 서 있는 민사소액재판부와 회생법원 판사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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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정(42·사법연수원 38기) 서울중앙지법 민사소액재판부 판사 


아이 깨우고 씻기고 식사 챙기고

아침은 전쟁터 방불

 

출근하자마자 

전자결재·판결문 작성·기록검토에 몰입


'오늘 필요한 준비물은 없나? 앱 알림장도 확인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인 강민정 서울중앙지법 민사소액 재판부 판사에게 매일 아침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집과 아이 학교, 법원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이동 가능해 가까운 편이지만, 아침을 준비하면서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 먹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 아침밥까지 챙겨주면 어느 덧 등교, 출근시간이 목전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잔소리이자 당부인 말을 늘어놓으며 학교에 도착해 아이를 등교시킨 다음 법원에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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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사무실 도착 후 업무 메일을 열어본 뒤 오늘 하루 할 일을 가늠한다. 주로 오전에는 재판부 문건에 대한 전자결재와 판결문 작성, 기록 검토 등을 한다. 소액재판은 대체로 주 1회, 지정된 재판기일에 진행되지만, 그 하루를 위해 강 판사는 1주일간 세밀하게 기록을 검토하며 재판을 준비한다. 재판이 있는 수요일에는 재판 시작 직전까지 기록을 꼼꼼히 살피는데, 이 날은 전날 저녁 늦게 들어온 서면이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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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 7분 전. 법복을 갖춰 입고 4층 사무실에서 나와 법관용 승강기를 타고 1층에 위치한 법정으로 향했다. 민사19단독 재판이 진행되는 서울중앙지법 2별관 102호 법정에는 사건 당사자 등 9명이 앉아 있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의 소액단독 재판은 일반사건 재판부와 당사자 일방이 주로 금융기관인 금융사건 재판부 등 2개로 운영된다. 강 판사는 대략 월 단위(4주)로 나눠 볼 때, 일반사건은 월 2회, 금융사건은 월 1회 정도 재판기일을 나눠 진행하고 있다. 이날은 일반사건 재판이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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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19단독 오전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오전 9시 50분 선고 들으러 오신 분 있으신가요?"

오전 9시 50분. 선고가 예정된 사건의 원·피고가 출석하지 않았다. 강 판사는 사건의 주문을 낭독했다. 5분 여 뒤 선고가 끝나고, 10시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2022가소XXXX 사건, 원고 A씨와 피고 B씨. 두 분 다 나오셨나요?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부엌 공사 하자와 관련된 소송이다. 공사를 마쳤지만 하자가 많다면서 공사대금을 주지 않아 벌어진 사건이다. 강 판사는 공사를 의뢰한 피고가 제출한 공사 관련 사진을 법정 스크린에 띄웠다.

"판사님이 정확하게 보세요. 전 이런 거 해본 적도 없고, 이 공사 때문에 6번이나 시공했어요. 한 번 공사할 때마다 미세먼지도 많이 생기고 집이 뒤집어지는데, 원고 측은 한 번도 사과를 안 해요. 정말 화가 나는 게 전화해서 어떻습니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사진만 딱 찍어 보내요."

피고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공사업자인 원고는 계속 손을 들었다.

"원고도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보세요."

"여기 있는 사진도 그렇고 전부 다 시공 과정에서 찍어 놓은 거예요."

그러자 피고는 어이없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끼어들었고, 강 판사는 또 다시 큰 목소리로 이들을 제지했다.

"잠시만요. 저도 재판 진행을 좀 해야 합니다. 피고에게도 말씀하실 기회 드렸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별로 이야기를 안 해보신 것 같아요. 서로 대면해서 얘기해보신 적 없죠? 두 분 조정위원들과 잠시 사건에 대해서 잘 이야기 하시고 서로 대화를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이동하셔서 얘기 나눠보시고 법정으로 다시 돌아오세요. 경위님 따라서 이동하세요."

민사소액 사건은 사건 수 자체가 워낙 많다보니 각 사건의 특성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강 판사는 각 사건의 특성을 미리 잘 살펴 적절한 처리 방향을 신속하게 결정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날 역시 메모를 위해 강 판사는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동료와 대화는 점심시간 뿐

긴장도 풀고 사건 실마리도 찾고


오전 11시 30분. 오전 재판을 마친 강 판사는 판사실로 돌아가 자료를 정리한 뒤 옆 부 판사들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를 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그날의 유일한 대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판사들은 대체로 업무량이 많아 업무시간 중엔 동료들과 별도로 이야기나 의견을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회식 등 모임도 많이 줄어 사건과 관련된 고민이나 고충, 일상 이야기 모두 점심시간에 나누는 편이다.

퇴근시간 지켜본 적 없어

잠자리에 누워도 사건 생각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온 강 판사는 오후 재판과 관련된 추가 문건을 검토하고 곧이어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을 마친 뒤 저녁식사를 생략하고 두 시간가량 야근을 하다보니 어느덧 저녁 9시. 업무가 많은 날은 간단하게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사와서 허기를 달래고 계속 야근을 이어가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귀가한다. 아이 숙제를 봐줄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침대에 누웠다가도 사무실에서 잡고 있던 사건들이 떠올라 업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다 하루를 마쳤다. 

 




◇ 황성민(38·40기) 서울회생법원 판사 


오전 7시 30분 이른 업무시작

신건 검토하고 보고·회의준비

 

11시 개정한 법정은

 채무·채권자로 빈 좌석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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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생법원 제335단독 개인회생 집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11시 서울회생법원 제6호 법정은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채무자와 채권자로 가득찼다. 재판장인 황 판사가 법대에 올라 개인회생 집회의 개시를 선언하자 법정 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일순간 조용해진다.

"이 자리는 채무자가 제출한 변제계획안의 내용이 적정한지, 법 위반 사항이 없는지 여부 등을 회생위원님과 출석하신 채권자 분들에게 의견을 묻는 자리입니다."

 
이어 황 판사는 채권자 이름을 호명하고 각기 다른 사정을 주의깊게 들었다.

"오늘 채권자집회 이후에 법원은 채무자들이 제출한 변제 계획안에 대해 법령 요건에 따른 심사를 해서 변제계획 인가 여부를 판단하겠습니다. 출석하신 채권자는 손을 들어주십시오."

황 판사의 요청에 곧바로 한 채권자가 손을 들고 "당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빌려줬는데, 상환액이 너무 적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황 판사는 "채무자의 변제계획안 상환액이 부족하고, 가급적이면 개인회생 절차가 아닌 원 채권액을 다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시죠?"라며 채권자의 주장 취지를 요약해 재차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는 채권자에게 돈을 빌린 채무자가 출석하지 않아 집회기일이 5월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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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분에 걸친 개인회생 집회가 끝나자 황 판사는 부지런히 집무실로 향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외부 회생위원에게 황 판사와의 협업은 어떤지를 물었다. "업무를 같이 한 지는 두 달 정도 됐는데, 항상 사건 전반을 꼼꼼하게 검토하시고 법리적으로도 빈틈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황 판사는 개인파산 재판부와 3개의 개인회생 재판부에 소속돼 각종 결정과 허부 검토, 파산관재인 신청 및 보고 내용 검토, 채권자집회 기일 및 의견청취 기일 준비·진행, 면책여부 판단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개인도산 부총괄로서 재판 업무 외에도 각종 개인도산 통계 분석, 제도 개선을 위한 업무 검토, 회생위원·파산관재인 간담회 준비 등의 업무도 소화하고 있다.

평소에도 오전 6시면 잠에서 깨는 황 판사는 '아침형 인간'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새벽에 일찍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 가상 PC로 잔여 업무를 수행합니다. 추가 업무가 많을 때는 가상 PC에 접속해 야근을 하기도 해요. 사무실에서의 야근이 필요할 때는 혼자 저녁식사 후 업무를 보기도 합니다."

바쁜 업무 탓에 늘 부족한 가족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황 판사의 모습에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판사로서의 사명감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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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 날 오전 7시 30분, 일찌감치 서울회생법원 3층 판사실에서 업무를 시작한 황 판사는 오전에는 개인도산 신건을 검토하고, 각종 보고와 회의 준비를 했다. 점심식사 전까지는 개인도산 관련 각종 결정과 집회기일을 준비하고, 식사 시간이 되면 같은 법원 '밥조' 판사들과 가까운 곳에 나가 식사를 한다. 하지만 이날은 업무가 많아 간단하게 도시락 배달로 해결했다.

 

업무 많은 날은 식당가는 대신 

도시락 배달로 해결


식사 후에도 개인회생 집회기일 진행이나 개인도산과 관련한 각종 결정, 질의 응답 등으로 업무는 숨가쁘게 돌아간다. 쏟아지는 사건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저녁이 있는 삶’ 원하지만 

퇴근 후도 늘 업무 연속


황 판사는 판사실을 나서며 "회생법원에서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한 뉴스타트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니 회생법원을 통해 다시 기회를 갖는 분들이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sypark·shhan·yklee@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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