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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C 국제재판관에서 복귀… 백강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국제적 시각에서 한국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

"법이 갖는 보편성과 개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고유불변의 가치를 토대로 세계 모든 이들의 자유와 평등, 정의,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말 그대로 '싸우고 있는' 국제 법률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시기를 권유합니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the Cambodia) 전심재판부 국제재판관으로 근무하다 법원으로 돌아온 백강진(53·사법연수원 23기·사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말이다. 아시아에 있는 유일한 UN 특별재판소인 ECCC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정권 시기에 벌어진 집단학살 등 중대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UN과 캄보디아 간 양자협정에 따라 2005년 설립됐다. 백 부장판사는 ECCC 설립 때부터 관여하던 국제 NGO(비정부기구)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떠나가고, 예산 부족으로 사건을 제대로 끝내지 못 할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재판 업무를 마무리했다. 그는 젊은 법률가들에게 "더 넓은 범위에서 인류 전체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려는 생각을 가진 법률가들이 많다"며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국제적 시각에서 한국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재판에 복귀한 백 부장판사를 지난달 21일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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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the Cambodia) 전심재판부 국제재판관을 지낸 백강진(53·사법연수원 23기·사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격려 속에 과학자를 꿈꿨다. 중학교 때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해 서울시 과학경진대회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콩으로 만든 메주의 발효 관련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온 상대 학생이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줄곧 이과 1등을 차지했던 백 부장판사가 과학자가 되는 데에는 의문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가장 좋아하던 과목인 화학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진지한 고민 끝에 문과로 전향을 결정해 법대에 진학했다.


노벨상을 꿈꾸던 소년

고교 3학년 때 문과로 轉科

 

"저는 수학·과학을 좋아했지만 문학 책을 읽는 것과 글쓰기를 조금 더 좋아했고, 영어와 세계사 과목을 좋아하고 잘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뒤늦게 문과로 전과해 '전과자'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과 분야에 대한 오랜 관심은 단독판사 시절 법원 재판사무시스템 설계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장문의 글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리게 했고,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으로 일하게 된 것도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법대에 와서 법전과 교과서를 보니 이전부터 좋아하던 데이터베이스(database) 구조와 비슷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법학개론에서 롤즈나 라드부르흐에 대해 배우면서 정의에 관한 담론이나 규범 체계 등이 현실에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정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지만, 저는 막연한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을 더욱 알고싶다는 변명 아래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법·대전지법·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기획조정실 정보화심의관, 창원지법·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고법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법대 재학 중 사시합격

서울동부지원 판사로 출발


백 부장판사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재판'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판결에 그대로 투영됐다. 초임 형사단독판사 시절, 석유사업법 시행령 조항이 포괄적이고 모호해 위헌이라는 이유로 가짜 휘발유 판매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목받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없더라도 판사로서 위헌이 명백한 조항에 대해선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놓게 된 판결이었다. 서울고법 배석판사 시절에는 주심으로 맡은 사건 중 부정경쟁방지법에 명시적 열거 규정이 없더라도 법원이 특수한 형태의 부정경쟁행위를 창설적으로 인정해 금지를 명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다 2015년 ECCC 전심재판부 국제재판관에 공석이 생겨 재판관 임명 절차가 개시됐다는 소식을 대법원을 통해 알게 됐고 공고 절차에 따라 지원했다.

 

2015년 ECCC 재판부 재판관 

선발 소식 듣고 지원


아시아에 있는 유일한 UN 특별재판소인 ECCC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정권 시기에 벌어진 집단학살 등 중대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UN과 캄보디아 간 양자협정에 따라 2005년 설립됐다. 캄보디아 국적의 재판관과 검사, UN이 지명한 국제재판관과 검사가 함께 기소와 심리를 맡았다. 국제재판관은 UN 회원국의 추천을 받아 UN 사무총장이 지명하고 캄보디아 정부가 임명했다.

백 부장판사가 국제재판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송상현(81·고시 16회)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의 강연이었다.

재판 끝내지 못하면 

강제로 절차종료될 우려

 

"한국법률가대회에서 송 소장님께서 강연을 하시면서 '국제적인 법률가들과 한국의 법률가들이 가진 고민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은 뒤 '기회가 되면 (고민의 이유를 직접)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ECCC 국제재판관) 1차 서류심사 통과 후 2차로는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뉴욕 UN본부의 면접관들과 화상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영어로는 처음으로 구두 면접을 보게 된 터라 다소 떨렸지만, 판사로서 오랜기간 근무하면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강조했습니다. ECCC에 부임한 후 저처럼 아무런 국제 경험이 없는 사람을 국제재판관으로 선발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제 개인적 역량보다는 송상현, 권오곤(69·9기), 박선기(68·군법 3회), 정창호(55·22기) 재판관님이 이전부터 국제 재판 기구에서 보여주신 한국 법률가들의 우수성과 한국의 국력 신장이 선정에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ECCC에 부임하니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수사 진행 여부를 두고 UN과 캄보디아 정부가 이견을 보이며 대립각을 세웠는데, 그 주된 전쟁터가 전심재판부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UN과 여러 기부국에선 재판소 자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고, 5인의 재판관이 모여 진행하는 재판부 합의 성사 여부도 미지수였다.


예산 부족 등 열악한 조건에서

 사건 마무리 쾌거


175364_1.jpg"재판관으로서 제 임기는 맡겨진 재판이 끝날 때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적정한 기간 내에 재판을 끝내지 못하면 현실적 제약으로 인한 정치·외교적 결단에 따라 강제로 절차가 종료되면서 국제형사재판의 흑역사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또 재판을 끝낸다면 그 순간 재판관을 비롯한 직원들은 즉시 실직하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다행히 (법관) 휴직 상태라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다른 구성원들은 임무가 끝나는 순간 실업자가 되어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직원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저는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들이 함께 성장하면서 'ECCC의 마지막 사건'을 마무리하는 역사적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거듭 격려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백 부장판사는 미제가 '0건'으로 재판부가 사실상 '해체'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초, 9월 말까지 모든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업무계획을 제출할 때만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는 막바지에 '합숙 훈련' 수준으로 구성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영어·불어·캄보디아어 3개 국어로 된 판결문을 완성해냈다. 가장 마지막에 남은 주심 사건 2개를 2주 간격으로 연이어 선고하는 과정은 ECCC 역사상 유례가 없었다.


미제사건 ‘0건’으로 재판부 해체되는 

 특별한 경험 


"캄보디아어 판결문을 완성해야 하는 ECCC 파견 캄보디아 판사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캄보디아 법원의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ECCC에 출근도 하지 않고 일을 미루기만 했습니다. 또 그간 경험에 비춰볼 때 어떤 재판관이 갑자기 서명을 거부해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계획했던 9월 말까지 모든 사건을 종결할 수 있을지 선고일 당일까지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재판부의 우크라이나 출신 UN 직원(Legal officer)이 캄보디아어를 속성으로 배워 문서편집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15년 넘게 진행된 국제재판소의 마지막 사건 선고'라는 극적인 일을 성취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인턴 시절부터 제가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 선발하고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근무하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한 여러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송상헌 前ICC소장 강연 듣고  

국제재판소에 관심


그는 국제재판관을 지내면서 앞서 송 전 소장의 강연에서 들었던 국제적 법률가들과 한국 법률가들이 가진 고민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로 '국제 인권'에 대한 시각이었다.

 

"아시아를 제외한 각 대륙에는 인권법원이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개별국가의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이 인권법원에 가면 깨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인권법원이 없어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부족하고, 인권을 우선시하는 국제 기준을 재판에 적용하는 일도 아직 생소합니다. 판결할 때 이러한 부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하게 다뤄질 겁니다. 또 이러한 고민이 국제적인 시각과의 차이를 좁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한국법률가들의 활약 기대

 

국제재판관 출신으로는 최초로 한국 법원에 복귀한 백 부장판사는 캄보디아에서 경험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한국 재판 실무에도 반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 '앞으로 한국 법률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더욱 활약할 것'이라는 확신 아래 후배 법조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혼자서 힘들면  

의지하고 연대할 사람 찾아 봐야” 


"제가 송 소장님의 강의를 듣고 깨달았던 것처럼 세계에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인류 전체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려는 생각을 가진 법률가들이 많습니다. 뜻이 있다면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어 능력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 외국 대학에서의 관련 학위 취득, 각종 국제회의 참석 및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 이른바 국제용 스펙을 쌓는 노력을 국내 법률가로서의 일과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준비한다면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 찾아올 겁니다. 또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늘 자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사랑이나 의미를 논하기엔 현재 처한 상황이 열악하다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단어를 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초 ECCC 설립 때부터 관여하던 국제 NGO들이 ECCC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떠나가고 예산 부족으로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는 비관적 상황에서, 저는 팀원들에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전했습니다. 인간의 회복탄력성은 놀랍습니다. 혼자서 힘들다면 의지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찾아보십시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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