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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사기범죄에 ‘부패재산몰수법’ 유명무실

유죄 판결前 몰수 가능한 ‘독립 몰수제’ 도입 필요

다단계 판매 사기, 보이스 피싱 등 서민을 울리는 사기범죄가 급증하자, 범죄재산을 신속히 몰수·추징해 피해자에게 되돌려주는 개정 부패재산몰수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민다중피해자들의 실질적 피해회복에 중점을 둔 법"이라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지만, 실제로 법원에서 몰수·추징 명령이 나오는 사례는 적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피해회복을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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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질적 피해회복'에 중점 두고 개정 =
범죄 피해를 당하면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범죄수익을 탕진하거나 은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시간도 오래걸려 현실적으로 서민들이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 회복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다단계 판매 사기나 보이스 피싱 등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기범죄가 잇따르자, 국회는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을 2019년 8월 개정해 보이스피싱이나 유사수신, 다단계판매사기 등 조직적인 사기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범죄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범죄자가 빼돌린 재산을 국가가 찾아내 돌려주도록 했다. 횡령·배임죄 등으로 국한됐던 부패재산몰수법의 적용대상을 △범죄단체를 조직해 범행한 경우와 △유사수신행위수법·다단계판매 방법으로 기망한 경우 △보이스피싱 등 특정 사기범죄를 추가해 확대한 것이다. 서민다중범죄피해자들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중점을 둔 개정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가 보이스 피싱 등 관련 사건 수사 중 범죄피해재산을 발견하면 이를 신속하게 몰수·추징한 뒤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됐다. 사기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나 강제집행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검사 등 수사기관의 몰수·추징보전 청구와 법원의 명령만 있으면 피해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돼 개정법은 법조계 안팎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액도 심리하면 

재판 너무 지연돼


◇ 실제 환부 사례는 드물어 입법 취지 무색 = 하지만 실효성은 기대밖으로 저조하다. 개정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불법 다단계나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이 제도를 이용, 피해재산을 회복한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2019년 1000억원대 다단계 사기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MBG 사건'은 당시 개정 부패재산몰수법이 적용된 1호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임동표 MBG 그룹 회장의 범죄수익을 추징보전하고, 재판에서 부패재산몰수법 제5조에 따라 임 회장으로부터 상습사기 범행으로 취득한 범죄수익을 추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에게 돈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귀속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피고인으로부터 추징할 범죄수익을 산정할 수 없어 추징을 명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또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공모해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편취한 사건에서 "부패재산몰수법상 범죄피해재산에 관한 몰수·추징은 범죄피해자에 의한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그 요건이나 범위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검사의 추징 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에서 

실제 추징·몰수 명령 나오는 사례도 드물어

 

법원이 이처럼 몰수·추징 명령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보니 개정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피해금을 되돌려 받으려면 결국 민사소송을 별도로 제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민사소송을 하려면 적지 않은 소송비용이 별도로 들기 때문에 피해 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소송을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많다"며 "법 개정 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법원도 형사재판 구조상 몰수·추징을 명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은 유·무죄 등 범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실체적 사실관계 판단이 핵심"이라며 "범죄자가 사기 등으로 취한 이익이 얼마인지,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민사재판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형사재판에서 피해액에 대한 심리를 하게 되면 오히려 민사재판에 따른 회복보다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대부분의 사기 사건이 범죄수익을 산정하기가 굉장히 복잡해 피해액을 별도로 심리할 재판부를 함께 두지 않는 이상 법원이 현재 형사재판 구조상 몰수·추징 명령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형사재판에서 이를 계산하겠다고 재판이 몇 년 이상 길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민사소송으로…

사실상 피해회복 어려워 

 

◇ '독립몰수제' 대안으로 떠올라 =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립몰수제란 최종 유죄 판결 없이 재산만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몰수·추징은 부가형이라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범죄자의 해외 도피, 사망 등의 이유로 재판 진행이 불가한 사건 또는 최종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일부 외국에서는 독립몰수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 제75조의a에 '기소나 유죄판결이 없어도 몰수 요건을 갖추면 몰수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명문으로 두고 있다. 독립몰수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도 형사소송법에 따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민사몰수'라는 이름으로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 등 여부에 관계없이 불법 또는 범죄와 개연성이 있는 재산을 몰수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가 아닌 '우월한 증거에 의한 범죄 개연성 입증'으로 입증책임도 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범방지 및 범죄수익 박탈,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몰수를 청구할 수 있는 한국형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유경(37·사법연수원 44기) 인천지검 검사는 지난해 대검찰청과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범죄수익 환수 쟁점과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현행법상 몰수 제도 하에서는 범인의 사망, 소재불명, 공소시효 도과 등으로 범인을 기소할 수 없는 경우 몰수가 불가능하다"며 "범죄수익의 철저한 환수를 위해 독립몰수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검사는 다만 "유죄판결 없이 재산을 몰수하는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몰수재판에 대한 불복방법을 마련 및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부합하도록 국외도주·기소유예 처분 등 적용사유를 열거해 검사에게 일반 형사소송절차와 같은 정도의 입증책임 부여 등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도 '유죄판결 없는 몰수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독립몰수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민사몰수제도는 영미법상 독특한 제도로서, 우리 법체계상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 등 여러 헌법적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독일식의 독립몰수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상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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