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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중견법관 포함 판사 70~80명 대거 사표

법원장급 6명·고등 부장급 8명 등 잇따라 제출

2월 법관 정기 인사를 앞두고 판사들의 '사직 러시(rush)'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법관 사직 규모가 예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70~80명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법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고위직은 물론 고법판사(법관인사규칙 제10조에 따른 판사라고 해서 이른바 '10조 판사'라고도 불린다)와 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중견 법관들도 사직 행렬에 앞장서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장급에서는 김주현(60·사법연수원 14기) 수원고법원장과 이강원(61·15기) 부산고법원장, 민중기(62·14기)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문용선(63·15기)·김필곤(58·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용대(61·17기) 서울가정법원장, 김형천(63·17기) 창원지법원장, 양현주(60·18기) 인천지법원장, 구남수(60·18기) 울산지법원장 등이 사의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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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부장판사급 가운데에는 김환수(54·21기)·이범균(57·21기)·이동근(55·22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김승표(56·20기)·손지호(57·20기)·강경구(55·24기) 수원고법 부장판사 등이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걸(60·17기)·임성근(57·17기) 부장판사도 법관 연임을 포기해 다음 달 퇴임한다. 이렇게 많은 고위법관들이 한꺼번에 법원을 떠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에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을 거치며 법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중견급 법관들도 대거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공보관·재판연구관 등 

역임 10명도 사의

 

대법원 공보관을 지낸 김선일(56·26기) 부장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이원(51·26기)·김동국(50·28기)·김문성(49·30기) 부장판사, 하태헌(51·33기) 고법판사,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과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이인석(52·27기) 고법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을 지낸 최형표(49·28기)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첫 여성 형사 공보관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조원경(45·31기)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정다주(45·31기)·김민수(45·32기) 부장판사 등이다.

 

특히 '법관 인사 이원화 제도'의 핵심으로 불리는 고법판사 10여명이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법원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법원은 지난달 18일까지를 기한으로 판사들의 사직서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판사들의 사직서 제출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직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법관들의 이 같은 '사직 러시'는 전관 변호사 수임제한 강화 움직임, 경제적 이유 등 개인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법관들의 사기 저하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이후 지속되고 있는 법관 사회 내부 갈등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근무환경 등 처우 문제,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법원 안팎의 공격에 대한 무력감 등으로 법관들이 직에 대한 사명감과 애정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 이원화제도’ 핵심 10명

 동반 사직 이례적

 

한 고법부장판사는 "전관 변호사의 수임 제한을 3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 때문에 서울고법의 경우 예년보다 많은 법관들의 사직이 예상되기는 했었다"면서도 "다만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변호사업계 사정이 좋지 않아 단순히 수임제한 강화 때문에 법관들이 대거 법원을 떠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는 법관 사회 내부 갈등과 현 사법부 상황에 대한 실망, 좌절 등이 계속되면서 법관 직에 대한 회의가 겹쳐 떠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며 "여러 내·외부 상황에 위축되고 사기가 저하된 법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과거에는 고법부장판사들이 순서에 따라 법원장으로 나가 역량을 펼치거나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최근 법원장 추천제가 확대되면서 이런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법원장으로도 못 나가고, 대등재판부 확대 기조에 배석판사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주심을 맡아 재판도 해야 하니 근무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여기에 전관 변호사 수임제한을 강화하는 법안까지 입법예고돼 고위급 법관들의 사직 러시에 촉매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재산공개 대상자인 고법부장판사와 검사장 이상 전관 변호사 등은 퇴직 전 3년 동안 근무한 기관의 사건을 퇴직 후 3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 변호사법은 공직 퇴임 변호사가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 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차관급 예우를 받던 고법부장판사에게 제공되던 관용차량도 폐지되고, 법원장 보직도 줄어들고 있는데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를 겪으며 이른바 법원이 두갈래로 나뉘는 등 여러가지로 더이상 법원에 있기가 어려워졌다"며 "법관 사회 내부에서조차 서로에 대한 예우는커녕 존중도 사라져가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법관 직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 수임제한 강화·경제 사정 등 

사유는 많지만

 

한때 인기보직으로 꼽혔던 고법판사들이 대거 법원을 이탈하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 고법판사들은 대도시에 있는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는 데다 항소심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건의 질도 고른 편이다. 평판사들이 고법판사에 지원하는 경쟁률은 높은데, 정작 그 자리에 있는 고법판사들은 떠나고 있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관 관료화의 주범이라며 고법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했는데, 사실상 선발성 인사인 고법판사도 점점 같은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창 법원에서 일할 연차에 고법판사들이 법원을 떠나고, 고법판사 재직 이력이 대형로펌으로 가는 스펙 가운데 하나로 변질된다면 사법부나 재판을 받는 국민에게나 모두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한 고법판사는 "사직을 하는 데에는 각자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16호봉 이상의 법관이 명예퇴직을 할 때에는 명예퇴직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15호봉에서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고법판사들이 딱 그 때"라며 "검사장도 관용차가 폐지되면서 명예퇴직 수당을 받게 됐는데, 법원은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없었다. 판사들을 붙잡을 수 있는 당근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주요 원인은 법원 내 

갈등·법관 자부심 상실인 듯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의 사직 러시가 이어지면 평생법관제 정착을 통해 달성하려는 '질 높은 재판' 실현도 불가능한 만큼 대법원이 법관들을 붙잡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처우와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법관들의 사명감과 사기를 진작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 한 판사는 "평생법관제가 정착되려면 인적·물적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처우와 근무환경이 열악해지는 면이 있다"며 "미국처럼 우수한 로클럭들이 탄탄하게 지원되는 재판보조인력 확충 등을 통해 법관들이 법원에 계속 남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법관 사직 러시가 폭등한 전세값의 여파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폭등한 전세값, 집값 영향도 있다"며 "경제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법관이라는 지위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이 있었을 텐데 그 경중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한 판사는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급등한 전세값 뿐"이라며 "급여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전세값이 올랐는데도 계속 판사일을 하기 위해 이사를 간다거나 생활비를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판사 전원에게 관사가 배정되는 일본과 비교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박미영·이용경 기자   mypark·yklee@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