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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 71년 만에 폐지

국회 법원조직법 개정안 가결… 기존 부장은 그대로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정식으로 폐지된다. 1949년 법원조직법 제정 이후 71년 만이다. 법조계에서는 고법부장판사 직무대리 발령 등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하는 한편, 판사들이 승진에 얽매이지 않게 돼 진정한 법관 독립 구현이 가능한 단초가 마련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고법부장 승진제도는 판사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든 주요 동인(動因) 가운데 하나였던 터라, 판사들의 업무 열의를 높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는 5일 본회의를 열고 고법 재판부(部)에 부장판사를 두도록 한 법원조직법 제27조 2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시행일은 내년 2월 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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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에 따르면, 고등법원과 고법급 전문법원인 특허법원 재판부에 부장판사를 두지 않게 된다. 대신 지방법원이나 지원, 1심 전문법원인 가정법원과 가정법원 지원, 행정법원, 회생법원 재판부에는 부장판사를 둘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했다. 

 

기존 고법부장판사들은 직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개정안은 부칙에서 '법 시행 전에 종전 규정에 따라 고법부장판사급 이상의 법관에 보임된 법관의 직위는 종전 규정에 따른다'는 경과조치를 뒀다. 

 

개정안이 가결되자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환영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은 내년 2월 정기인사부터 고법부장판사 직위 폐지 및 윤리감사관 개방직화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김 대법원장은 "법률 개정으로 헌법에 규정된 사법부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국민이 대등한 지위를 가진 법관들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충실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며 "윤리감사관의 개방직화는 외부로부터 임용된 정무직 윤리감사관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독립하여 성역 없이 전문적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으로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시스템의 구축이자 법관의 관료화와 더불어 사법부의 문제로 지적되었던 폐쇄성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승진에 매이지 않아

진정한 법관독립 구현 단초로“

 

법조계는 환영의 목소리와 함께 풀어야할 숙제도 제시했다. 판사들의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한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부장판사는 "기존 고법부장판사 제도는 위에서 아래를 평가하는 수직적인 구조였지만, 이제는 비슷한 연차나 대등한 지위의 판사들이 서로를 평가하게 되는 수평적 구조로 변화할 것"이라며 "고법부장판사 승진제 아래에서는 판사들이 관료적인 기준으로 평가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평판이 쌓이고, 법원이 지향하는 문화적인 기준에서 평가 받을 것 같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승진제가 있을 때에는 관료화 뿐만 아니라 승진 여부에 따라 법복을 벗는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차관급인 고법부장판사가 없어지면서 법관의 사회적인 지위를 전체적으로 저하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판사들의 업무 열의 높일

대책 마련 필요” 지적도

 

한 고법부장판사는 "승진은 공무원을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중 하나인 만큼 제도 폐지 이후에도 판사들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법원에도 이른바 웰빙족이 늘어나게 되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미칠 것이고 사법부나 사법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폭증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문 공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사건 처리율, 대법원에서의 파기율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들로부터 실질적으로 검증을 받도록 해 판사 개개인이 신뢰 받을 수 있는 법원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업무에 투입되는 단위시간이 적어지면 당연히 품질 저하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며 "워라밸이나 웰빙도 좋지만 판사의 샐러리맨화를 막기 위한 어떤 대안책도 없이 막연히 '좋은 재판'만을 강조한다면 일선 판사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우려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법부장판사 제도는 단점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폐지된 만큼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법원이 정치화되면서 법원과 판사들 스스로 자존감이 사라지고 있는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판결하는 성실한 판사들이 영향력을 갖고 대접받는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손현수·박미영 기자   boysoo·mypark@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