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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충무공 전도사’ 김종대 前 헌법재판관

이순신은 공직자의 사표(師表)… '국민에 대한 봉사' 본받아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삶에 매료돼 40년 넘게 이순신을 연구해 온 법조인이 있다. '충무공 전도사' 김종대(68·사법연수원 7기) 전 헌법재판관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이순신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재판관 퇴임 후에도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 1월에는 충무공 정신을 기리기 위한 ㈔부산여해재단 설립에 참여해 고문을 맡았다. 오는 28일은 충무공 탄신 4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 전 재판관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만 충무공을 찾지 말고 미리 그 정신을 찾아 배우고 생활에서 실천해 2016년 바로 오늘 충무공을 다시 살려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재판관을 지난달 23일 부산 동구 협성타워 부산여해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종대(68·사법연수원 7기) 전 헌법재판관은 1975년 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만났다. 공군본부에서 군법무관으로 복무할 때였다. 서울 대방동의 한 서점에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훈교육 교재를 찾던 중 고(故) 이은상 선생의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이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때부터 이순신의 삶에 빨려 들어 40여년을 이순신 연구에 매진해왔다. "충무공을 만난 것은 우연이면서도 운명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길을 바꿨죠. 그 많은 책 중에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을 접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군법무관 때 '충무공의 생애' 읽고
그의 삶에 빠져

 
김 전 재판관은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10월 '이순신 평전'을 낸 것을 시작으로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 있습니다' 등 이순신 관련 서적 4권을 펴냈다. 그는 이순신에 대해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서 꿋꿋하게 국민 사랑, 국토 사랑,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분"이라며 "모든 국민이 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순신에 대한 공부는 3단계로 나눠진다"고 소개했다. 첫 단계는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 등을 통해 12척의 배로 수백척의 왜적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보며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나라가 어렵고 국민들이 답답할 때마다 가장 먼저 그리운 사람이 이순신 장군 아닙니까? 그래서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이 사회가 참담한 상황에 놓였을 때도 전 국민이 영화 '명량'을 보고 위로받으려 했던 건 아닐까요?" 그는 누적 관객수 1761만명을 기록하며 국내 모든 영화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영화제작 전 만나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당시 김 감독은 김 전 재판관이 지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헌시(獻詩)'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제작에 임할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재판관은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 몇 차례나 전율을 느낀다"는 기자의 말에 "충무공의 생애가 워낙 감동적이기 때문에 전율을 느끼게 되며, 그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감동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나라가 어려워질 때마다
가장 먼저 그리운 인물"

 
이순신 공부의 다음 단계는 이순신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조합해 지도자로서의 정신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선공후사(先公後私), 유비무환(有備無患), 솔선수범(率先垂範), 책임완수(責任完遂), 나라사랑 등 가지각색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같은 리더십이 어떤 뿌리에서 나왔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지극한 나라사랑(愛)과 맡은 일에 대한 지극한 정성(誠), 바른 길로 나아가는 정의(正義), 스스로 이뤄내는 자력(自力), 이 4가지가 이순신의 근본가치"라며 "이 가치들이 한 번의 오작동도 없이 이순신의 정신체계를 지배해 전승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을 위해서는 일이 있기 전 철저히 준비하고, 일이 일어났을 때는 목숨을 걸고 매진해야 하며, 일이 끝났을 때는 결과에 담담해야 합니다. 이순신은 첫 전투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신이 헤아릴 바 아닙니다'라는 글을 임금에게 올립니다. 자신은 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전쟁의 승리나 공은 알 바 아니라는 것이지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웃음)"

40여년 간 이순신 연구 매진…
관련 책도 4권 펴내

경남 창녕 출신인 김 전 재판관은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관의 길에 들어섰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관생활을 부산과 경남에서 보내 대표적인 향판(지역법관)으로 꼽힌다. 2006년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향판 중 처음으로 헌법재판관에 올랐다. 그는 "부산은 공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 강, 온천도 있어 살기 좋아 계속 머물러 왔을 뿐"이라며 "경인지역과 지방을 구분해 나눈 뒤 서울을 항상 우대시하는 사회풍조는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순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란 뒤 함경도를 지키다 전라도에서 임진왜란을 맞아 경상도를 구원해 결국 나라를 구하지 않았느냐"며 "이 좁은 국토를 놓고 온갖 구분을 지어 반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과 관련해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부작위에 해당한다"는 위헌 결정을 주도했을 때를 헌법재판관 재임 중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재판을 할 때도 이순신 정신이 많은 부분을 일깨워줬다"고 했다. 당시 헌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 국가의 부작위로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받았다"며 낸 헌법소원사건(2006헌마788)에서 재판관 6(위헌)대 3(각하)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 때 위안부 피해자 사건이 헌재에서 5~6년간이나 처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 됐지만, 일제시대에 나라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해 어린 소녀들의 생명과 정조를 빼앗긴 참담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정부가 나서야지, 사건을 기각하거나 각하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죠." 그는 새로운 재판관이 올 때마다 자신의 신념을 호소해 위헌 결정을 이끌었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을 치유할 약은 '이순신 정신'
서울·부산 등에 이순신아카데미 설립, 강사 양성
20대 총선에서는 반드시 '작은 이순신' 뽑아야
 
 김 전 재판관의 좌우명은 '상생(相生)'이다. 재판할 때나 생활할 때나 유념하는 단어다. 그는 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때 판사 시절 배석판사였던 나경원(53·24기) 새누리당 의원 등 후배 33명으로부터 퇴임기념문집을 헌정받았다. 문집 편집대표를 맡았던 변희찬(58·16기) 변호사와 논의 끝에 책 제목을 '상생의 길 위에 서서'로 정했다. 그는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이웃과 자연, 법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며 "내가 좀 더 강하다면 나부터 먼저 나눠야 하고 내가 먼저 베풀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했다.

법관생활 거의 부산서…
향판 중 첫 헌법재판관에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사회는 상생이 아닌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며 "특히 빈부와 이념의 양극화는 심각한 정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의 역량을 모아 하나로 집중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불치병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부정의 병을 치유해 낼 확실한 약재는 이순신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순신 정신을 설파할 강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이순신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또 전 국민이 이순신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서울과 부산, 여수 등에 '이순신 학교'를 세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순신의 자(字)인 '여해(汝諧)'를 딴 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 아카데미를 모태로 이순신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됐다.

좌우명은 '상생'…
재판 때나 생활할 때 항상 유념

지난해 1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된 김 전 재판관은 "이순신의 내면적 가치를 오늘날 되살려 제일 먼저 본받아야 할 사람들은 공직자"라며 "공직자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지, 지배자나 권력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법조인들은 공무원이거나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나라의 발전과 국민 전체의 행복이라는 가치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참 법조인'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법시험 존치 여부나 상고심 개선 문제를 둘러싼 법조계 대립과 갈등에 대해서도 "개인이나 조직이 아닌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13일 치러지는 제20대 총선과 관련해서는 "국민의 봉사자를 뽑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사랑과 정성, 정의, 자력 등 이순신 정신에 바탕을 둔 '작은 이순신'을 뽑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부터 나누고
내가 먼저 베풀며 더불어 살아야

"이순신은 봉건권력사회에 살면서도 국민을 사랑해 백성을 하늘처럼 생각한 봉사자였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란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백성을 위해 싸웠지 자신을 위해 권력을 휘둘러 한 사람의 목숨이나 재산도 헛되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충무공은 모든 공직자의 사표(師表)입니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사심으로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는 참 공직자의 길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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