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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유엔형사법원 재판관에 선출…‘국제무대 개척’ 박선기 변호사


 

22년간 군법무관 생활을 하고 육군 소장까지 지낸 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하는 법조인이 있다. 박선기(62·군법3회·사진) 변호사다. 그는 국제재판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이 많지 않던 2003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ICTR) 재판관으로 선출돼 우리 법조계에 새로운 길을 보여준 개척자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로 일하는 전형적인 법조인의 길과는 달리 개척자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박 변호사를 27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대동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병역 명문가가 낳은 육군소장, 국제형사재판관 되다
 
박선기(62·군법3회·사진) 변호사가 처음 국제형사재판소에 진출한 것은 12년 전이다. 1994년 아프리카 중동부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다수 종족인 후투(Hutu)족 출신 대통령이 피살되자 후투족이 보복을 위해 소수민족인 투치(Tutsi)족 80만 명을 3개월 동안 살해한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 사건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탄자니아 아루샤에 국제형사법원인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ICTR)를 설립했다. ICTR은 당초 재판관 3명으로 출발했으나 재판이 더디게 진행하자 UN은 ICTR을 6개 재판부로 확대하고 재판관도 18명으로 늘리기로 결정한 뒤 2003년 추가로 재판관들을 추천받았다. 당시 우리 외무부도 UN총회에 ICTR 재판관 후보로 낼 인물을 물색했다. 그러다 국방부에서 군법무관으로 오랫동안 복무한 경험을 가진데다 미국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박 변호사가 낙점됐다.

22년간 군법무관으로… 한미연합사에도 근무
변호사 개업 4년 때 ICTR 재판관으로 진출
안보리결의문에 이름 가장 많이 오른 기록도

그는 "국제형사재판관이 된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막연히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경력에 비춰보면 그는 국제형사재판관에 적격이다. 22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해 군사행정법과 군사작전법 등 군법에 정통할뿐만 아니라 한·미연합사에 근무해 국내외 각종 협약 체결에 참여한 경험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 변호사의 집안은 '병역명문가'다. 병무청은 한 집안에서 3대가 현역 군인으로 근무하면 '병역명문가'로 선정해 시상한다. 박 변호사 자신이 육군 소장으로 제대한데다 선친과 박 변호사의 형제들, 그리고 아들과 조카를 포함해 모두 9명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박 변호사는 군복무중 대통령표창과 보훈훈장인 천수장도 받았다. 이 때문에 군인 특유의 책임감과 국가관을 갖고 있으며, 직업윤리도 철저하다.

박 변호사가 ICTR 재판관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필연 같은 우연도 작용했다. 변호사 개업 4년차이던 2003년 사무실 직원이 "변호사님 이것 좀 보세요"하며 내민 ICTR 재판관 후보 채용 공고가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으로 UN총회에서 많은 표를 얻어 ICTR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50개 가까운 나라가 연대해 1명의 후보를 밀고 있었고, 유럽연합과 이슬람국가들도 각각 연대해 재판관 후보를 추천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시아 차원의 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UN에서 재판관으로 선출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우리 정부와 외교부 관계자들의 숨은 노력 덕분에 많은 표를 얻어 재판관에 선출됐습니다." 그는 2004년 ICTR 법원이 있는 탄자니아로 향했다. 임기는 3년이었지만 계속 새로운 사건이 밀려들면서 UN 총회 결의를 통해 1년씩 임기가 연장되더니 무려 8년간을 재판관으로 일하게 됐다. 덕분에 박 변호사는 한국인 가운데 UN 결의문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제형사재판관에 2번째 임명되다

2012년 ICTR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 있기도 잠시, 박 변호사는 같은 해 7월 ICTR과 ICTY(유고국제전범재판소)의 항소심 격인 유엔형사법원(UN Mechanism of International Criminal Trials, UNMICT) 재판관 25명 가운데 1명으로 또 다시 임명됐다. 박 변호사는 "지난 8년간 ICTR 재판관으로 활동하면서 전문성이나 성실성을 좋게 평가 받은 것 같아 기쁘고 또 그에 따른 큰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이메일로 기록을 전달받아 공판 전 심리(Pretrial)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공판 전 심리를 마치는 올해 연말께에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건너가 2~3년간 재판업무를 하게 된다.

뛰어난 청년변호사들 국내서 경쟁 안타까워
국제기구 가운데 법률수요 없는 조직 없어
유엔에 일자리 많아… 로스쿨이 디딤돌 돼야

UNMICT는 2012년 7월 1일 이후 항소된 ICTR 사건과 2013년 7월 1일 이후 항소한 ICTY 사건의 항소심을 맡고 있다. ICTY나 ICTR에서 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들의 가석방 문제나 앞서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됐지만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재심을 청구한 사건 등을 다룬다. 국제형사절차의 특징은 절차가 복잡하고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증거목록도 방대하다. ICTR에서는 심리만 6년을 진행한 사건도 있다.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와 달리, 국제형사법원에서는 영미법과 대륙법이 혼합돼 있는 경우가 많고 증거법절차는 주로 영미법계 절차를 따른다.

#아프리카 사람과 문화에 매료

아프리카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열악한 업무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박 변호사는 아프리카에 완전히 매료됐다. "헤이그와 아프리카 중 어느 곳이 더 좋냐"고 물으면 곧바로 "아프리카"라고 답할 정도다. 사무실 벽에 걸린 나비로 수 놓듯 그린 그림도 아프리카 출신 동료 재판관에게 선물받은 것이라고 했다. "저도 처음 ICTR에 갈 때는 기아와 질병, 내전 등을 떠올리고 열악한 환경일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지만 UN이 설립한 국제재판소이고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있는 국제기구가 밀집한 도시라 살기 좋았습니다. 새로운 대륙에서의 경험과 100여국에서 모인 800여명의 직원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생각도 많이 접했지요. 저는 아프리카의 사람과 문화, 역사 등에 매료됐습니다. 무엇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배웠습니다."

#청년 법조인들, 국제무대로 나가야

우리나라 출신 국제재판관은 고(故) 박춘호 국제해양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해 2002년 ICTY 재판관으로 선출된 권오곤(62·사법연수원 9기) 재판관과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초대 재판관에 선출돼 소장까지 오른 송상현(75·고시16회) 전 ICC 소장, 2011년 크메르루즈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을 지내고 2014년 ICC 재판관에 선출된 정창호(49·사법연수원 22기) 재판관, 백강진(47·23기) 캄보디아 특별재판소 재판관 등이 있다.

임기 마친 2012년 유엔형사법원 재판관으로
ICTR 재판관 8년… 전문성 등 높이 평가받아
올 연말께 헤이그로… 2~3년 동안 재판업무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 청년 법조인들이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하기를 바랐다. "제가 8년간 국제재판소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그 곳에 온 다른나라 법조인들보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능력이나 자질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기구에 실제로 진출하고자 하는 청년 법조인들은 아직 소수여서 안타까워요. 우리나라의 젊은 법률가들이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청년 법조인들이 갖고 있는 뛰어난 외국어 구사능력을 강점으로 꼽았다. "1970~1980년대에는 언어가 제약요소였지만 젊은 세대들은 외국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문을 쉽게 두드릴 수 있어요. UN에도 일자리가 많은데 인턴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인턴은 내부 사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정규직원으로 지원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뛰어난 우리 청년 법조인들이 국내에서만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국내 로펌에서 인턴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방법은 많습니다. 꼭 국제재판소가 아니더라도 국제기구 가운데 법률가를 필요로 하는 조직은 많습니다."
박 변호사는 특히 로스쿨 차원에서 국제기구 인턴 지원 시스템과 같은 디딤돌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소수 법률가의 시대,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무사안일로 지낼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국내 법률시장은 계속 어려워지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봅니다. 로스쿨은 변호사시험에 우선 합격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로스쿨 차원에서 지원자들을 선발해 법률가의 수요가 있는 국제기구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면 한국의 청년 법조인들이 각종 국제기구와 조직에서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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