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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청 전 변협회장 ⑤ 변협회장 중임하며 구속적부심 되찾아

김태청 전 변협회장 -제3141호-

나의 변협회장 첫 임기가 만료되던 80년5월. 차기회장 선거에 입후보할 두 회원이 잇따라 기치를 올렸다.
그러나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수법으로 보아 머지 않아 펼쳐질 험악한 시국을 예상했던지 두 출마 예정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입후보를 사퇴해 버렸다.
그때 누구보다 난처해진 것은 바로 나였다. 당시 협회장이던 내가 회칙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임기가 만료되는 5월중으로 그 자리를 다음 회장에게 인계하고 물러나야 하는데 협회장 하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대의원 정기 총회일인 5월31일. 협회장선출권이 있는 총회라 할지라도 후보가 없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왈가왈부 난상토론 끝에 "새 집행부가 나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현 집행부가 계속 회무를 맡아 보라"고 한 총회의 결의를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달이 가깝도록 험난할 것만 같은 '차기'를 맡겠다는 뱃심있는 새집행부는 목을 빼고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범의 꼬리를 잡고 놓지 못하는 나의 그 딱한 사정을 듣고도 달리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원로선배들과 앞으로 회를 짊어질 후배들은 마치 말을 맞추기라고 한 듯, 실로 어처구니없이 한 목소리를 냈다.
"현 회장이 다시 한 번 십자가를…"
"험난할 것이 예상돼 모두들 입후보를 철회한 협회장직을 날더러 또 맡으라고? 세상에 나만 죽으란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선후배들의 진지한 설득에는 이런 명분도 있었다.
"정치군인인 전두환 장군이 군의 대선배 장군인 김 협회장을 몰라 볼 리야 있겠는가, 위난에 처한 변협의 방패가 되어 안전하게 끌고 갈 다음 회장의 십자가는 아무래도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군 장성출신의 현 협회장'이 다시 한 번 질 수밖에…"그해 7월26일 부랴부랴 소집된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나는 도망도 못가고 맡을 수도 없어 멍청하게 있다가 긴급동의를 가결하는 만장일치의 박수소리와 함께 그렇게도 인기 없던 차기회장 자리를 꼼짝없이 떠맡게 되었다.
한편 그 무렵 유신헌법에서 삭제된 구속적부심사제를 부활시킨 헌법 개정안이 마련돼 있었다. 주로 서울변호사회에서 기초하고 변협 명의로 제출한 개정안이었다.
헌법개정위원회를 무난히 통과한 개정안은 5·17 비상계엄을 고비로 위기를 맞았다.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정치군인들에 의해 반민주적으로 선회할 것을 강요당한 것이다.
당시 정치군인의 참모역을 맡고 있던 법조계 후배가 헌법개정안 수정 공작의 사명을 띄고 재야 법조계 대표로서 입법회의 의원으로 동원(?)된 나를 변협회장 집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를 중임없는 6년제로 하고(초안에는 중임 가능한 4년제) 구속적부심제를 다시 삭제했으면 하는데 협회장님께서 협조해 주십시오"그것은 유신시대로 되돌아 가는 것과 다름 없었다.
나는 심사숙고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 임기에 대하여는 정치하는 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바라며, 그 대신 재야 법조계를 대표한 나로서는 구속적부심사제의 삭제만은 양보할 수 없소.""재고하시어 꼭 협조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안됩니다. 내가 변협회장으로 있는 한 그것만은 절대로…"물러설 수 없는 나의 단호한 거절에 그는 물러갔다.
그때 만일 그가 당시의 사회적 공포분위기를 배경으로 위협적 채찍이나 집권후의 혜택 등 매수성 당근을 내비춰, 변협회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면 나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입법회의 의원직과 변협회장직을 모두 사임하는 성명을 발표할 각오로 장고 끝에 단호히 그런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명했다. 꺾을 수 없는 나의 단호한 결의를 알아차린 그는 시종일관 나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고 물러가면서 5공헌법에 구속적부심제를 살아남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구속적부심제가 빈사지경에서 기사회생하여 인권옹호를 위해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협회장이 그렇게 버틸 수 있도록 내 뒤를 밀어 준 전국 변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