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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청 전 변협회장 ③ 김창룡 중장 저격사건

김태청 전 변협회장 -3139호-

1956년 1월30일,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로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특무부대장 김창룡 소장(당시)이 출근길에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범행 28일만에 검거된 주범이 뜻밖에도 옛날 부하였던 허태영 육군대령이며 그의 부하 이유회, 민간인 신모, 송모씨가 그 하수인인 사실이 밝혀졌다.
나중에 범행의 배후가 계급상 상관인 강문봉 중장으로 밝혀진 다음에도 허태영은 법정에서는 물론 총살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애국가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끝내 입을 다물고 책임을 상관에게 돌리지 않았다.
안타깝기만 하던 그의 부인 황운하 여사가 참다못해 드디어 남편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배후에 고위 장성급이 있다고 폭로한 탄원서를 경무대에 제출한 것이다.
재수사 결과 강문봉 중장이 그 배후인물로 밝혀졌고 강 중장은 구속기소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군법회의 심판관의 계급은 규정상 피고인과 동등 또는 그 이상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피고인이 3성장군인 이 사건에는 재판장에 4성장군 백선엽 대장을 비롯해 배석 심판관으로 이종찬, 최영희, 장도영, 양국진, 강영훈 등 5명의 3성장군이 문자 그대로 '기라성' 같이 심판관석에 앉았다.
그들 양어깨에 달려있는 별의 수를 모두 합하면 간단한 계산으로 38개가 되는데 거기에다 3성장군인 피고인까지 별을 달았으니 단상단하(壇上壇下)의 별을 모두 합치면 그 법정은 44개의 별이 빛나는 신기록과 '별들의 전쟁터'라는 별명을 함께 얻은 전대미문의 법정풍경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은 복잡하게 계산해야 할 기록도 있었다. 일반법원과 같이 2주 내지 3주에 한 번씩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하는 군법회의를 5개월 동안 끌었으니 만일 일반 법원처럼 격주나 재격주로 진행했더라면 족히 3년 내지 8년은 걸렸을 최장기 군법회의 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은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강문봉 중장 외 공국진 준장, 강홍모 대령 등 수명도 공동피고인으로 기소된 그 매머드 군법회의에 나는 수석검찰관으로, 이용석 중령과 김두현 중령은 보(補)검찰관으로 각각 임명됐다.
그리고 세 명의 검찰관들이 한 때 법무감으로 모셨던 손성겸 예비역 준장과 그 때 심사과장이던 태윤기 및 안기영 예비역 대령 등이 변호인석에 포진했으니 재야 법조원로이신 한격만 선배와 김춘봉 두 변호인을 제외하면 옛날 법무감실을 축소하여 옮겨 놓은 것 같았다.
44개의 별이 빛나는 심판관석에서 현역 장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날의 직속상관 손성겸 예비역 장군과 한격만 선배를 변호인석에 모시고 보니 별하나 없는 검찰관석은 비오는 날의 밤하늘 같이 캄캄하고 초라하기만 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때 피고인 김윤근 준장이 별을 뗀 작업복 차림으로 재판받던 선례와는 달리 피고인 강문봉 중장은 3성장군의 계급장을 그대로 달고 법정에 섰다.
아마도 강 장군의 명예를 존중한 참모총장 이형근 대장 등의 특별예우였을 것이다.
그 특별예우 덕분에 부산 정치파동 때 반역한 죄(?)로 법무감실에서 쫓겨나 만년 대령신세를 면치 못했던 나는 5개월동안 계속된 그 군법회의의 검찰관으로서 이따금 복도 등 법정밖에서 헌병의 호송을 받으며 지나가는 강문봉 피고인과 마주칠 때면 깍듯이 거수경례를 해야만 했다. 법정안에서는 나의 訴追를 받는 피고인이지만 법정밖에서는 법률상 무죄의 추정을 받는 미결수로서 군복에는 별이 세 개나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계급적 권위와 선후배 질서가 엄연했던 강문봉 중장 사건의 공판에서 초라하기만 했던 검찰관의 위상은 법정의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았다.
허태영 대령이 김창룡 중장 살해의 책임을 그 하수인인 이유회 등 자기 부하에게 돌리거나 공동모의를 한 상관 강문봉에게 미루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단독 범행이라고 버틴 것과는 대조적으로 강문봉 피고인은 김창룡 중장을 직접 저격하거나 살해를 교사한 바 없다면서 그 책임을 회피하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검찰관인 나는 형법학의 共謀共同正犯이론을 원용하여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검찰관으로서 유죄임을 입증해야 할 직무상의 책임이 있으므로 그저 냉철하게 '법을 적용하는 기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하는 피고인측에게는 아마 '나'라는 사람이 융통성이라고는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동물로 비춰졌을 것이다.
변호인들은 공동모의가 아니라고 끈덕지게 물고늘어졌지만 판결은 검찰관의 입증과 법이론을 받아들여 검찰관의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됐다.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장군을 살해한 공모공동정범으로 인정되는 이상, 사형의 구형과 판결은 육군 수뇌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 강 중장은 6·25 때 戰功이 참작돼 무기징역형으로 형량이 낮춰졌고 4·19 이후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법무감 재임 중 정치적으로 사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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