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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청 전 변협회장 ① 국민방위군 사건

김태청 전 변협회장 -제3137호-

1951년 겨울. 중공군의 불법개입으로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할 무렵 중부전선 모사단 법무참모로 근무하던 나는 육군본부 법무감실로 전속명령을 받고 대구에 내려왔다.
대구에 와 보니 국민방위군 사령부의 부패상으로 온 세상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북한과 중공 연합군의 인해전술 공격을 막기위해 청년단체를 급히 개편해 만든 국민방위군, 그 사령관 이하 일부 참모장교들이 거액의 국방예산을 횡령·착복하고 막대한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한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사건 내용인즉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 준장과 부사령관 윤익헌 대령 등이 군량미 2천가마와 공금 24억원을 횡령, 밤마다 대구 금호정이라는 요정에 들락거리며 돈을 뿌렸는데 돈을 짚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가서는 손에 잡히는 대로 끄집어내 마구 뿌렸다는 것이다. 병사들을 위해 쓰여질 돈이며 쌀이 이렇게 빼돌려지니 병사들은 엄동설한에 굶어 죽고, 얼어죽고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던 것.
결국 국민방위군이 해체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병사들이 아사직전 거지꼴로 간신히 대구에 나와 시장을 헤매며 구걸을 하자 피난민들 사이에서는 "중공 오랑캐를 무찌를 우리 대한의 아들을 이꼴로 만든 자 누구냐? 그 자를 잡아 처단하라!" "대한민국은 법도 없느냐?"며 방위군 간부에 대한 아우성이 극에 달했다.
매스컴은 연일 정부를 공격했으며 국회에서도 대정부규탄안이 제출되고,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과 정일권 참모총장이 전격 해임됐다.
법무감실 검찰과장으로 있던 나는 새로 취임한 이종찬 참모총장이 불러 법무감 李澔 장군(전 법무장관)과 함께 갔더니 국민방위군 사건을 군재에 회부키로 했다며 나에게 그 사건의 검찰관이 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이 총장과 이기붕 장관에게 군복을 벗을 각오로 "법관의 양심을 걸고 법과 정의에 따라 소신껏 처리할 것"을 다짐했다.
피의자를 신문하는 첫날, 김윤근 사령관은 별로 건방진 태도는 아니였지만 "애송이 검찰관이 나를 조사하느라 고생이 막심하지만, 누가 감히 나를 죽일 것인가"하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검찰관에게 주어진 20일간의 조사기간을 엄수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는데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정치적으로 쓱싹해 버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런 세간의 루머에도 불구하고 군법회의 공판에 회부되자 이번엔 "검찰관이 사형을 구형하지는 못할 것이고, 설사 사형을 구형한다고 하더라도 사형선고는 절대 못할 것"이라고 수근거리고 있었다.
1951년7월5일 오전 10시. 대구 특유의 무더위 속에 드디어 제1차 공판이 시작됐다. 공판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방위군사령부가 징발을 위해 사용하던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으로 정해졌다. 방청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강당을 꽉 메우고 학교운동장과 골목길까지 이어졌으며 이들을 위해 옥외 마이크까지 가설, 공판진행 상황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재판장은 심언봉 준장, 법무사 계철순 소령(현 변호사) 등 5명의 심판관이 맡았으며 15일동안 공판이 진행됐다. 변호인으로는 전봉덕씨(전 변협회장) 외 저명한 변호사 9명이 포진해 이 사건에 비상조치령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이론으로 물고 늘어졌다.
6·25 직후 공포, 시행된 비상조치령에 의하면 비상사태에 편승해 막대한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한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
사령관은 "나는 모른다"로 일관했고 부사령관은 부인 또는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변명을 거듭했다. 사실심리가 끝나고 구형공판에서 피고인 사령관 김윤근과 부사령관 윤익헌 등 5명에게 사형을 구형하자 방청석이 잠시 술렁이더니 논고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향해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신문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손을 바삐 움직였으며 나는 서론, 사실론, 증거론, 법률론, 정상론 순으로 논고를 진행했다.
"조국을 구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이들 장정들의 부모형제, 처자친척 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 모두가 간접적인 피해자"라며 "피고인들을 처벌해 달라는 민족의 아우성을 들어달라"고 심판관에게 말하고 이어 춘향전의 이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해 학정으로 악명높은 변사또에게 준 그 유명한 시를 변조한 한시를 바쳤다.
판결 선고일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도 고위층의 압력으로 사형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피고인 한명이 무죄가 된 것 외에는 전부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되자 이번에는 또 이들을 외국으로 빼돌릴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이들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총살해야 한다는 등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결국 공개적으로 사형집행을 하게 됐다.
8월13일 대구근교. 나를 대신한 다른 검찰관이 입회한 가운데 몇발의 총소리와 함께 그들의 굵고 짧은 인생은 막을 내렸다. 사형을 구형한 내가 끝까지 입회해야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가슴아픈 생각이 들었으며 그 시간 나는 조용히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악명 높았던 국민방위군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대한민국에는 법도 없느냐고 개탄하던 국민들도 그때서야 "그래도 법과 정의가 살아있구나!"라며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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