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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⑤ 사법시설조성법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제3134호-

필자는 1966년 11월부터 1971년 8월까지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장관은 1966년 9월부터 1968년 5월까지 권오병·權五柄씨였고 1968년 5월부터 1970년 12월까지는 이호·李澔씨였으며, 1970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는 배영호·裴泳鎬씨였고 1971년 6월부터 1973년 12월까지는 신직수·申稙秀씨였다.
권오병·權五柄씨는 문교부장관을 두 번이나 하신 분인데 그 성격이 매우 과격(?)하여 부하직원 다루기를 몹시 엄하게 하셨다. 문교부의 모 국장은 혼비백산하여 장관실 출입문을 나간다고 하는 것이 서류가 들어 있는 케비넷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성격은 법무부장관시에도 동일하여 실국장회의는 주로 퇴근시간 후에 하는데 얼마나 심하게 다루는지 당시의 실국장 중 두 분이 그후 법관으로 전관하여 후일 대법관이 되셨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실국장회의장에서 면박과 질책이 연발하는데 해당 실국장 또는 그 보조하는 과장이 실제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일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령 좋은 김일두·金一斗 검찰국장은 웬만한 일도 즉답으로 처리하였고 필자 역시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당시 법무부 산하의 여러 시설물 즉 각급 검찰본청 및 지청 청사와 출입국관리사무소 건물 및 각 교도소·소년원의 청사를 전부 합하면 1백개소 이상이었다. 이것을 수리 또는 신축할 때 일반적인 법무부 예산에서 처리하자면 경제기획원의 예산심사에서 삭감되고 그 일부가 인정되어도 국회에서의 예산통과시에 또 삭감되기 쉬웠다.
결국 사법부인 법원의 청사와 법무부 소관 청사 등 사법시설을 신축 또는 수리하는 예산은 일반예산에서 분리하여 특별회계예산으로 하고, 그 자금은 법원에서 선고하고 검찰에서 집행·징수하는 벌과금 등의 총액중 반액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구상하게 되었다.
권 장관은 필자에게 즉각 법률안을 기초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으며 필자는 곧 여러 가지로 구상해보아도 뾰족한 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법령집을 펴놓고 문교부 관계를 세밀히 검토하다가, 문교부가 국가예산의 일부를 교부금으로 할당받고 문교부 산하 국민학교가 그 자금으로 의무교육에 필요한 시설물을 건축하거나 기타 경비에 쓰도록 하는 법률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토대로 모방하는 법률안을 작성하여 권 장관에게 보고하였더니 만족해 하시면서 즉각 청와대와 국무총리에게 보고하고 그 표지에 두 분이 보셨다는 정도의 결재가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오셨다. 그러면서 이것을 가지고 특별회계관계법률 제정에 필수요건인 감사원장, 대법원장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다. 필자는 조진만·趙鎭滿 대법원장(법원은 공돈이 생기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음), 이주일 감사원장(대통령의 재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임)을 각각 찾아가서 대통령의 싸인이 있는 표지가 붙어 있는 여백에 두 분의 동의를 받아 형식적 요건을 구비하였다.
국회법사위원장 김장섭씨에게도 미리 보고하였으며 공화당 중진과 정부 장관의 당·정 연석회의에서도 필자가 간단히 보고하여 이 법안이 5년간의 한시법으로 사법시설조성법 및 사법시설특별회계법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안은 그후 여러번 시한을 연장하여 1994년 폐지되었는데, 이법 덕분에 사법시설은 전국적으로 어느 국가기관의 시설물보다 번듯하게 신축되었다. 후일 각급 경찰관서, 주로 지방의 경찰서 및 지서에도 이 자금이 지급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한편 그 법안의 처음 명칭은 문교부관계법률인 의무교육에관한교부금법에 맞추어 사법시설에관한교부금법으로 하였는데 심사과정에서 사법시설조성법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정리=최성영 기자 choisy@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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