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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세종대왕 22세손… 법조계 '우리말 지킴이'

"법전은 우리사회의 거울… 일본 말투의 표현 걷어내야" 법무법인 세종 이홍철 변호사


'우천 시'보다는 '비올 때', 이벤트는 '일회행사'로, 페이지가 아니라 '쪽'…. 한글 지킴이 이홍철(56·사법연수원 13기·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의식적으로 외래어를 배제하고 우리말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22세손인 그는 사소한 데에서부터 우리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2014년 3월부터 1년 동안 법률신문의 '우리말 칼럼'을 썼다. 장기 연재가 힘들었을 법 한데도 "외래어로부터 홀대당하는 우리말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또 지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오히려 고맙워했다. 우리말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인지 피부로 와 닿았다.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는 이 변호사를 서울 중구 회현동 스테이트 타워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홍철(56·사법연수원 13기·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1976년 고등학생 시절 국어 수업을 듣다가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이 '아내'를 높여부르는 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답을 찾으려 생각을 거듭했지만 선뜻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다. "'내자(內子)'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이 내놓은 답은 우리말이 아닌 한자말이었습니다. 부인을 '아내'라고 부르면 품격이 없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순간 왜 한자말을 쓰면 높임말, 품격있는 말이 되고 우리말을 쓰면 낮춤말, 품격없는 말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날 국어 수업을 계기로 우리말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에 나섰다. 우리말에 대한 그의 관심은 우리말 교육에 평생을 바친 고(故) 이오덕 선생을 만나며 신념으로 바뀌었다. 이 선생은 우리의 언어습관에서 일본말투의 잔재를 걸러내고 우리말을 다듬은 '우리말 바로쓰기'의 저자로 유명하다. "제가 세종대왕 못지 않게 존경하는 분이 계신데 바로 이오덕 선생입니다. 어린시절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시는 선생의 모습을 봤고 선생께서 쓴 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94년 판사로 재직할 때 '서울지방법원 한글위원회'가 그분을 초청해 강연을 연 적 있습니다. 그때 선생을 만나 생각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존경하게 됐죠. 제가 지금 우리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에는 그분의 철학이 많이 반영됐습니다."
 
"한자어 쓰면 높임말, 우리말 쓰면 낮춤말"
고교시절 국어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에 회의
그날 계기로 우리말에 대한 본격적 탐구나서

이 선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우리말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진 이 변호사는 한글이 천대받는 현실이 아쉽고 화가 났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써야만 품격있는 단어를 쓴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가 어린시절 즐겨 사용한 우리말들은 오늘날 짐승의 신체를 사람의 신체와 비교해 낮춰부르는 말로 쓰이거나 심지어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요즘 음식점에 가면 '염통 주세요'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염통은 심장의 우리말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하더라도 사람한테 심장이라는 말 대신 염통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 염통은 돼지, 소의 심장을 가리키는 말이 돼버렸습니다. 콩팥, 염통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왜 굳이 신장, 심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아쉬움을 토로하던 이 변호사는 결국 이런 언어습관이 우리말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얼개라는 말을 아십니까. 얼개는 제가 어릴 때만하더라도 교과서에도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얼개는 사라지고 '구조'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얼개가 사라진 것처럼 우리말이 점점 사라질까봐 두렵습니다. 아껴쓰면 쓸수록 살아숨쉬고 후손에게까지 남겨지는 법입니다. 제 시대에는 한자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었지만 다음 세대에는 영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1978년 이 변호사의 눈에 비친 법학 서적들도 문제 투성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굳이 일본어나 한자로 쓰지 않아도 될 표현들이 곳곳에 넘쳐났다. 한번 읽어서는 좀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법조인이 되면 법률용어의 우리말 순화에 앞장서겠다'고 결심했다. "법대에 진학해 전공서적들과 법전을 보고 놀라움이 앞섰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이 일본말을 그대로 직역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일반서적도 외국의 법제나 책을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말로 제대로 한 번역이 필요한데 법서는 그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말로 얼마든지 번역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데 일본말을 직역해서 그대로 쓰다보니 국민들이 느끼기에 생소할 수밖에 없죠. 예를들면 과거 법전에는 '없지못할'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말이죠. 이런 말은 '없어서는 안될'이라고 쓰면 되는 것입니다."
 
법전 등에 아직도 일본어·한자로 된 표현 많아
민법·형법 순화 작업은 진작에 했어야 할 일
판결문도 알기 쉽게 우리말로 다듬어 나가야

1983년 수원지방법원에서 새내기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학생시절 품었던 결심을 실천하는 데 나섰다. 주업무인 판결문 작성에서부터였다. 그가 처음 시도한 작업은 우리말로 쓸 수 있는 한자어나 일본어를 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긴 문장들로 가득찬 판결문을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적게는 1쪽, 많게는 10쪽이 넘어가도록 한 문장으로 연결된 판결 문장을 짧게 끊어쓰기 시작했다.

"판결문을 보면 '돈'을 나타낼 때 '금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금원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말입니다. '돈 몇 원'이라고 쓰거나 아예 돈을 빼고 '몇 원'이라고 쓰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르죠. 또 영국이나 미국의 판결문을 보면 평균적으로 한 문장이 세줄 이상 넘어가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만큼 문장을 짧게 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판결문을 보면 한 문장이 10쪽을 넘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쓰인 단어조차도 어려운 한자말이 많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장이나 단어는 알기 쉽게 잘라쓰거나 우리말로 고쳐야 합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증거와 사실들을 나열해서 쓰기보다 하나씩 끊어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증거 ㄱ이 있고 ㄴ이 있고 ㄷ이 있고…'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1.증거ㄱ', '2.증거ㄴ' 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보기에 훨씬 이해가 쉽죠."


이 변호사는 최근 법무부가 발표한 민법과 형법 순화 작업에 대해 진작했어야 할 일이라며 반겼다. 그는 국민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을 법전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세계적 유산인 나폴레옹 법전으로 글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법전이 세계적인 대문호를 탄생시킨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문학가가 우리 법전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절대 문학가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쓰지도 않고 문법에도 어긋나는 말들을 쓴다며 핀잔을 받겠죠. 법전은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나타내는 거울입니다. 그런데도 문법에 맞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쓰레기말'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법전에 있는 쓰레기말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공직생활을 하며 우리말 사용에 앞장선 그는 2006년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우리말 살리기' 사업이라는 꿈을 펼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류 등 외국에 전파되고 있는 우리 문화의 첨병역할을 우리말이 맡길 바랐다. "변호사의 준비서면은 판사때 썼던 판결문보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판사보다 활동이 자유롭습니다. 제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쓸 수도 있죠. 법률신문에 기고한 '우리말 칼럼'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저는 우리 문화를 세계 속에 전파하는 일이 자동차,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 중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은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우리말입니다. 그래서 제 꿈은 '우리말 살리기'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왈츠를 가르쳐주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처럼 우리도 외국 관광객들에 우리말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한글은 우리문화 중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
관광객에게 왈츠 가르쳐주는 비엔나 시민처럼
우리도 외국 관광객에게 우리말 가르쳐 주어야

 
그는 후손에게 우리말을 고이 물려주기 위해 정부와 언론, 한류스타, 그리고 국민 모두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우리말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부나 언론, 그리고 한류스타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공식석상에서 그들이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이 솔선수범해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야 합니다. 또 산업화, 민주화, 인권 대통령 등 많은 대통령이 나왔지만 '문화 대통령'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문화와 우리말이야말로 우리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남대문을 복원하는 것처럼 우리말도 훌륭한 모습으로 보존하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제 넘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국민들도 한글날에만 한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웃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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