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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④ 전주 삼성제사소(製絲所) 사건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제3133호-

1951년 8월경으로 기억하는데 대구고검 검사 직무대리의 발령이 났다. 이와 함께 대구고검 검사 김치열씨가 맡게된 '전주소재 삼성製絲所' 특명사건의 수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서상환 검찰총장으로부터의 특명사건이라 치안국에서 보내준 지프차에 김치열 검사와 필자 및 입회서기 남상배가 동승, 비포장 국도를 타고 대전을 경유해 전주로 가서 삼성제사소 회사에 직행하였다. 광주고검이 있기 전이었으므로 대구고검의 관할구역은 경남북과 전남북 및 제주도였다.
삼성제사소는 양잠업을 하는 농가에서 수집한 고치를 작은 냄비에서 삶으면서 명주실인 생사를 뽑아내는 공장인데 그 방법은 당시 시골 농촌에서 부녀자들이 하는 방법과 차이가 없이 동일하기는 하여도 대량으로 생산하도록 시설되어 있었다. 그 회사는 전주에서 제일 크고 알찬 적산(敵産)기업체였다. 사람 손으로 돌리는 물레를 전기모타로 돌리고, 시골 농촌에서는 냄비 하나에 물레 하나 뿐인데, 냄비가 수천개 있고 여직공은 여러 개의 냄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적산공장치고는 자가발전기까지 해방후에 설치한 것이 관리인의 능력을 엿보이게 하였다.
이 제사소 공장에 대한 특명수사사건의 동기는 이 공장이 해방 전 일본인 소유이었던 관계로 적산에 해당하고 그 적산관리인을 누군가가 하고 싶어서 현 관리인을 해임할 수 있는 비행을 찾아내어서 그를 처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검찰권을 발동시킨다는 것은, 사회정의를 위하는 것도 아니니 잘못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김치열 검사는 총장으로부터 동래온천장 요정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시면서 전국에서 어느 누구든지 보조검사를 골라 쓰라는 말과 함께 간곡한 특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치열 검사는 보조검사로 하필이면 대구지검의 초임검사인 필자를 지명했다. 필자로서는 최소한 서로의 체면이 유지되는 범위의 비위사실을 찾아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필자 말고는 치안국에서 총경, 경감, 경위 각 1인씩이 수사에 착수하고 김치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입회서기와 단 둘이(김치열 검사와 치안국 직원은 외부조사한다고 공장에 나오지 않았었음) 그 회사의 별실에서 매일 열심히 그 회사의 사장과 경리직원을 상대로 경리관계자료를 따지고 있었는데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아무런 하자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사장인 관리인의 비위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액수의 다과는 고사하고 업무상 횡령으로 단죄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하여야 하겠는데 경리장부와 그 증빙서류는 한치의 오차없이 깨끗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적산관리는 관재국의 감시하에 있었기 때문에 표면상의 장부관리는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1주일이 지나도 별 소득이 없어서 필자도 초조하게 되었는데 최후로 정밀검사 방식으로 조사해 보기로 했다. 즉 경리장부는 보통 무엇 때문에 얼마를 지출하고 얼마가 수입이 되었다는 내용이고 그 집계가 최하단에 기록되고 월별로 누계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페이지의 합계가 과연 정확한 것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으로 필자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적어도 명절에는 시내 기관장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였을 것인데 판공비, 기밀비의 항목이 없고 그런 지출 기재도 일체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불러주고 경리직원이 주판을 놓도록 하여 몇 페이지 진행하여 보니 오차가 나오는데, 예컨데 100만원이 되어야 할 것이 95만원으로 합계가 기재되어 있는 것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며, 필자의 예측대로 명절을 전후하여 빈도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 합계 100만원(구화로 표시된 장부가액 약 1억원) 전후의 업무상횡령 사실을 적발하고 사장인 관리인으로부터 명절 때의 선물 및 기관장과의 회식비에 사용하였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것으로 삼성제사소의 출장조사는 끝마치게 되었다.
그 내용을 김치열 검사는 출장을 마친후 총장에게 보고하게 되었고 본인이 착복한 것이 없으니 형법학적으로는 업무상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대하여 총장은 노발대발하고 즉시 대구고검 허만호 검사로 하여금 재수사를 하도록 하고, 허 검사는 여러날 재조사하여도 새로운 사실을 더 발견하지 못하고 필자의 것만을 기소하였으니 후일 무죄선고되었다고 한다. 또 얼마 후 이 사건으로 인하여 허 검사는 제주지검 검사장으로 영전되고 김치열 검사는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좌천되는 인사이동이 있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