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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성공보수약정 무효, '법조개혁'의 신호탄 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3일 '형사사건 변호인의 성공보수약정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법조계에 메가톤급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사법시스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전관예우 논란 등을 종식시키기 위한 대법원의 고육지책으로 '사법부발(發) 법조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형사사건의 성공보수약정을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변호사업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변호사업계가 그동안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관행을 이어온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으로 구성되던 기존 형사사건 수임 관행을 모두 버리고 지금부터 곧바로 의뢰인과 새로운 형태의 수임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변호사업계의 격앙된 분위기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업계 '부글부글'= 변호사업계는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 등으로 변호사 수가 폭증하면서 사건 수임이 줄고 있는데 형사사건 성공보수까지 못 받게 돼 버티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개인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중견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변호사 시장의 사막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성공보수로 큰 돈을 받아왔던 것도 아니고 몇 백만원을 받곤 하는데 이제는 이것도 받지 못하는 것이냐"며 한탄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도 "형사팀 변호사들은 성공보수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 판결은 충격적"이라며 "성공보수 지급은 다양한 약정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인데 이를 대법원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이 법률서비스 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반박도 나온다. 착수금을 적게 받는 대신 성공보수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형사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의뢰인들이 손쉽게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왔다는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성공보수를 내지 않아도 되니 의뢰인들에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얘기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대법원이 '교각살우(矯角殺牛,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의 우(愚)'를 범했다는 날선 비판을 내놨다. 대한변협은 "고위직 전관 변호사들의 과도한 성공보수 문제에서 초래된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공보수를 아예 철폐하는 것은 형사 사건수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의 얼마 되지 않는 수입마저 빼앗는 것"이라며 "의뢰인 입장에서도 당장은 성공보수를 주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차후 형사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들이 사건의 승패와 관계없이 성공보수를 착수금에 미리 산정해 받을 우려가 있어 결과적으로 의뢰인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도 "부당한 성공보수를 약정하는 잘못된 관행은 대법관 출신을 비롯한 전관들이 초래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적정한 보수를 받고 성실하게 변론활동을 해 온 다수의 변호사들과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판단하면서 대법원이 그 흔한 공개변론 절차 한번 거치지 않은 것은 굉장히 유감"이라며 "법률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이나 수요자인 의뢰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할 일임에도 비밀 작전하듯 전격적으로 최종 판단을 내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업계 수임료 체계 변화 불가피= 어찌됐든 이번 판결로 형사사건의 수임료 등 사건 수임 관행과 질서의 개편은 불가피해졌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시간제 보수(Time charge)' 방식이 보편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국민들의 이해도가 낮아 비관적인 분석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타임 차지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변호사가 시간을 지연시켜 보수만 많이 챙기려 한다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며 "대한변협 차원에서 타임 차지와 관련한 규칙 등을 명확히 정해두지 않으면 업계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법률서비스 비용이 급격히 올라가거나 반대로 덤핑 계약이 춤출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성공보수가 착수금에 반영돼 전체적인 수임료가 올라갈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서민들이 법률서비스에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한 대형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처음부터 목돈이 없는 사람들은 성공보수금을 나눠내는 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며 "돈 많은 사람들은 착수금과 상관없이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서민들은 무조건 낮은 가격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구조가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회는 이날 국민들이 납득하면서도 변호사가 노력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타임 차지 기준이나 새로운 표준사건위임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공보수 관련 줄소송 이어질수도= 문제는 또 있다. 성공보수금을 둘러싼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앞으로 체결되는 형사사건 수임계약에만 적용될 뿐 기존에 체결됐던 성공보수 약정은 기존과 같이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와 학계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존에도 성공보수금 떼이는 일 많았는데 이번 판결로 아예 못받게 될 것"이라며 "법원이 불법이라고 천명한 일에 대해 어느 의뢰인이 선뜻 약속한 돈을 내놓겠느냐"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형사사건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민사사건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문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의뢰인들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형근(58·24기)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이 성공보수약정을 무효라고 천명하면서 이미 체결한 약정을 유효하다고 판시한 것은 법적 안정성을 고려한 것"이라며 "법리판단보다 정책법원으로서 기능했다고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사법부발 법조개혁 성공할까= 변호사업계는 격앙된 분위기이지만 이번 판결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금을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거의 유일하고,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변호사의 공공성을 강조해 성공보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성공보수 금지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도 19세기 이래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민사사건의 성공보수금은 인정하지만 형사나 가사사건, 입법로비 영역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공보수금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됐다. 1999년 대통령 자문기구로 설치된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도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를 금지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의 거센 반발이 부딪혀 무산됐다.

한상규(47·사법연수원 24기)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나 석방을 조건으로 성공보수 지급을 약정한 경우 마땅한 석방 사유가 있었다면 변호사는 당연한 석방을 이유로 추가 수임료를 받는 것이므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되고, 만약 석방될 수 없는 피고인이 변호사의 노력으로 석방된 것이라면 이는 사회적 위험성이 있는 피고인을 부당하게 석방한 것이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로펌의 한 변호사도 "이번 판결로 사건 담당 판·검사와의 연고를 과시하거나 전관 출신임을 내세워 재판부나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의뢰인들을 현혹하는 악습이 사라질 수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으면서도 합리적이고도 적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모색된다면 형사사법제도의 운용과 변호사의 공적 역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와 만족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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