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知足安分하는 삶으로…" 임희동 구미시법원 판사

"시골 판사로 정년퇴임… 내 인생에 있어 최고 행운"

미국변호사
임희동(65·사법연수원 6기) 대구지법 김천지원 구미시법원 판사는 다음 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판사 정년이 65세로 연장되고 나서 최초로 정년퇴임을 하는 판사다. 그를 인터뷰하게 된 계기는 같은 법원에서 근무하는 김대수 계장의 제보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장문의 메일에서 "임 판사님은 사법부 최일선의 법원에서 근무하며 법원 발전을 위해 충언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나라의 숨어있는 진정한 어른"이라며 "판사님 개인사를 알리는 것 이상으로, 존경받는 인생 선배의 말씀을 들어보는 것도 우리 사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선 법원의 판사를 함께 일한 직원이 직접 추천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를 지척에서 본 사람이 정성스런 추천을 했다는 사연만으로도 구미시법원으로 향할 이유가 충분했다.


임희동(65·사법연수원 6기) 판사는 시군법원 판사로 일하며 정년퇴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등기소와 함께 건물을 쓰고 있는 2층 남짓의 시군법원이 접수하는 사건은 법원 규모 만큼이나 작은 사건이 대부분이다. 임 판사는 자신이야말로 서민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고 법원에 오는 가장 중요한 분쟁을 처리하고 있다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소가 2000만원 미만의 소액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는 민사본안사건의 15%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이 법원에 오는 분쟁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 판사가 보고 있는 기록들에는 연필로 꼼꼼하게 적은 메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시군법원의 소액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홀로 소송'을 하는 당사자를 많이 만나게 된다. 주장하려는 바를 서면으로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정에서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당사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판사가 당사자의 뜻을 놓치게 되면 당사자는 판사가 재판에 소홀하게 임한다고 생각하고 결국 그것이 법원에 대한 불만이 됩니다. 소액사건이라고 해서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대법원에 상고되는 상당수의 사건이 소액사건인 것을 생각해 보면 소액사건이 법원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다름없습니다."

집안·자녀에 대한 책임 끝내고 다시 판사로 복귀
"시군법원 판사는 승진대상 안 돼 재판에 더 몰두"

주로 소액사건 처리… 서민위한 법조인으로 자부심
 

판사로서 대도시 법원에서 큰 사건을 맡으며 승진에도 욕심을 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는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단칼에 잘라 말했다.

임 판사는 인터뷰 내내 '지족안분(知足安分)'의 삶을 강조했다. 사람이 제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면 무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판·검사가 승진에 연연하거나 변호사가 돈만 좇다 보면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직위나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정, 사회, 국가의 흥망성쇠가 모두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위치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그의 생각은 남다른 유년시절에서 비롯됐다. '서민을 위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것도 학창 시절의 영향을 받았다.

"공부가 정말 하고 싶은데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농사일을 도와야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 집에 간다고 하고 공부하러 몰래 도망가곤 했었지요."


임 판사는 전북 정읍 농사꾼의 집안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우연히 읽은 사법시험 합격기때문에 "남자라면 가장 어려운 시험에 도전해 합격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 때문에 공부에만 매달리기는 힘들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도 경제적 사정 때문이었다. 상고가 제안한 장학금과 기숙사 혜택을 받으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그는 한 번의 좌절을 겪었다.

"아버님은 농사 몇 마지기 지으시는 게 전부이고, 동생들은 커가는데 저 혼자 대학 간다고 고집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차라리 얼른 취직해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릴테니 동생들도 공부를 시켜달라고 했지요. 대학 갈 팔자가 아닌데 내 분수에 맞지 않게 무리한 게 아닌가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농사꾼 집안의 장남… 司試 합격기 읽고 도전 결심
상고 졸업 후 은행취업, 야간대학 다니며 꿈 키워
사시 합격 이후 판사로 6년, 변호사로 17년 보내
 

임 판사는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외환은행에 취직했지만 사법시험 도전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은행에 다니며 국제대학교(현 서경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야간 수업을 들었다. 이후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2년 동안 사법시험 공부에만 매달려 마침내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60명만 사법시험에 합격하던 시절에 야간 대학에 다니며 경제활동과 공부를 병행하자니 힘들었을 과거가 생각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다"며 자신이 보낸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데는 말을 아꼈다. 대신 목표를 놓지 않았던 긍정의 힘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임 판사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6년 동안 판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판사 월급만 가지고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책임지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결국 그는 고향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17년 동안 활동한 후 집안과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 모두 끝나고서야 다시 판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군법원 판사에 지원한 것 역시 지족안분하는 삶과 서민을 위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공직에서 일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큰 기회이고 행운입니다. 시군법원 판사는 승진 대상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욕심을 갖기도 힘들지요. 다른 말로 하면 더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눈치 볼 것 없는 그였기 때문에 눈에 띄는 소신 발언도 많이 했다. 특히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사건,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비판의 글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우리법연구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는 당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체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발언한 이후에도 "우리법연구회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판사는 이 사건으로 연임 신청을 하지 말라는 압력도 받았다. 그동안 충실하게 근무하고 재판에서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는데 연임이 안 될 수 있다니 충격을 받을만했다.

"내가 승진대상이 아니다 보니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지요. 그래도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법관 사회에서는 판결로 말 하는 게 맞기 때문에 주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제도적·구조적으로 법관이 독립되고 법관의 소신에 의해 판결하는 풍토가 법원에 정착돼야만 국민이 득을 본다는 것입니다. 법관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국민이 납득하고 승복하는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신영철 대법관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재판 개입을 했다는 것, 우리법연구회는 자칫 판사들의 조직이 세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목소리를 냈던 것뿐입니다."

'촛불재판'개입·'우리법연구회' 비판 글로 주목받아
"법관이 존경받는 사회돼야 국민이 재판에 납득"
새달 65세 정년… 시민 위한 보람있는 일 하려고 궁리
 

그는 이 밖에도 많은 글을 남겼다. 대법관을 제외한 판사들의 단일호봉제 적용, 정년보장, 대등재판부 구성, 민·형사 단독사건 전담 법관제, 이혼기간 숙려제 등 법원 제도에 대한 개선책도 내놓았다. 대법관 제청도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자문을 받도록 하는 의견도 냈다.

"후배 법관들에게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법관 사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국민들이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법원이 부정적으로 인식됐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법원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된 재판을 하려면 제도가 제대로 돼야 합니다. 제도를 개선하자고 하는 데 목소리를 아껴서는 안 됩니다."

임 판사는 퇴임 후 진로를 고민 중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보다 공익활동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포천시군법원에서 근무하며 조정위원들과 함께 자금을 출자해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을 만큼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앞으로 4~5년 정도 더 활동할 텐데, 서민을 위한 보람있는 일을 하려고 궁리 중입니다. 아직 결정은 못 했지만, 역시나 제 분수에 맞는 일을 찾아야겠지요."

글=신소영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종합법무관리솔루션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