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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DLA 파이퍼 이원조 대표

욕망·헌신·의지로 일어선 외국법자문사들의 맏형

미국변호사
부드러우면서도 쉽게 다가서기 힘든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외모,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말투,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두루 섭렵한 '알바의 신', 아침 공복에 맥주 한 캔 마시기를 즐긴다는 '애주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 서 있는 수준급 사진 촬영 실력, 한국 사내변호사들의 맏형, 세계 최대 로펌의 한국 사무소 대표. 이 모든 수식어들이 한 사람을 지칭한다. 바로 '천의 얼굴의 가진 사나이', 이원조(60) DLA파이퍼 한국사무소 대표다. 법률시장 3차 개방을 앞두고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 회장인 이 대표를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수하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훤칠한 외모, 큰 키, 냉철하면서도 선한 눈빛. '영국 신사' 같은 인상의 이원조 대표는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은 부잣집 아들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타공인 '알바의 신'이다.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할 당시 입학금을 제외한 등록금은 물론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도 모든 학비를 직접 벌었다. 덕분에 특이한 아르바이트 경험도 그의 자랑거리다. "연세대 백양로를 내려가다가 오비 맥주 광고에 캐스팅 됐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남학생과 한 여자배우와 셋이 합천 해인사에 내려가서 2박 3일간 광고를 찍었죠. 명동 근처에 호프집에서 맥주 마시는 촬영도 했는데, 맥주를 먹고 싶어도 못 먹던 때라 이때다 싶어서 마셨죠. 그 광고는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나왔는데, 퇴폐 광고라고 해서 금방 내렸어요. 제가 장발에 판타롱 바지를 입었거든요(웃음)."

이 대표는 1977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시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 경험은 이어진다. "방학 때마다 썸머잡(Summer Job)을 잡고 학비를 벌었어요. 언젠가 여름방학 때는 실험실에서 매시간마다 쥐에게 주사를 놓는 일을 했어요. 방안에 들쥐가 200마리 있었고 여름이라 냄새도 지독했죠.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는데 익숙해지니 쥐를 꺼내 제 무릎에 올려놓고 배에 주사를 놓고 있더라구요."

대학 입학금 외에는 모두 '알바'로 조달
77년 美 이민…샌프란시스코로스쿨 진학
LA로펌서 10년 근무…원하던 자리 올라

석사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이 대표는 마음을 바꿔 샌프란시스코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2학년 때, 뉴욕 할렘에서의 법률 구조(legal aid, 리걸 에이드)는 이 대표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좋은 경험이었다. "할렘의 법률구조 사무실 창문이 깨져 있었는데 총알 자국이더군요. 좀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거기서 흑인 세입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줬죠. 그들이 고마워하니 뿌듯했습니다."

이 대표는 낮에는 할렘에서 법률 상담을 하고 밤에는 트윈타워에 갔다. 그 곳에서 이 대표는 300명의 이민자들과 함께 새벽 2시까지 10개층의 화장실과 사무실을 청소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9·11 테러가 일어났죠. 너무 잘 아는 트윈 타워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창문을 여니까 그라운드제로 바로 앞이더군요. 창문을 여는 순간 서 있어야 할 빌딩이 없이 휑하니까 정말 충격이었어요."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 대표는 LA의 한 로펌에서 일하게 됐다. "높은 빌딩 숲을 바라보며 저런 빌딩의 창문이 두 개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일을 열심히 하니까 제가 거기 가 있더군요.

이 대표는 미국에서 몇 번의 이직을 거친 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 세운 목표까지 노력해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자신이 생겼고 성격도 도전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봤어요. 미국은 천국 같은 지옥, 서울은 지옥 같은 천국입니다. 미국은 미래가 보여서 재미가 없죠. 다음이 예상이 되니까요."



귀국 후 IBM코리아 법무담당 8년 근무
IHCF 창설 주도적 관여로 초대회장 맡아
3명으로 출발, 지금은 1천여명 네트워크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는 IBM코리아 법무담당(General Counsel)으로 8년간 근무하면서 인하우스카운셀포럼(In-House Counsel Forum, IHCF)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관여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사내변호사의 맏형 역할을 한 셈이다. "IHCF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어요. 소송을 하기 전에 상대 회사 변호사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소송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IT 업계의 사내변호사 넷이서 모임을 하다가 점점 커진 것이 지금은 1000명이 넘었죠. 만들 땐 이렇게 크게 될지는 몰랐지만 소중한 자산이 됐죠."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4년간 외국변호사로 근무하는 등 한국에서만 12년간 활약한 이 대표는 2008년 세계 최대 로펌인 DLA파이퍼의 일본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다. 한국의 법률시장이 개방되고 한국사무소가 문을 열게 되자 이 대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세계 최대 로펌과 한국 최대 로펌, 미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의 법률시장까지 잘 알고 있는 이 대표는 미국 로펌이 한국 로펌에 비해서는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다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파트너 변호사들이 몇시간을 일하고 있는지, 효용률, 수입 등이 전산화, 계수화돼 보여집니다. 모든 파트너의 수입이 공개되는만큼 로펌도 투명하게 운영되죠."

이 대표는 미국 로펌은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고 파트너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철저히 교육한다고 전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될 사람들은 3배수 정도 뽑아 리더십 코스에 보낸 뒤 관찰하고 숙제도 내줍니다. 파트너 시험은 분석, 재정, 위기관리 등 세가지를 봅니다. 파트너 변호사가 된 다음에도 1년에 60명씩 뽑아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보냅니다. 강의 하는 방법이 로스쿨과 같고 미리 준비를 해가서 토론을 해야하죠. 리더십, 매니지먼트 스킬 업그레이드, 경쟁로펌 분석에 중점을 두죠."

치열한 경쟁만큼 보상도 확실하다. "매년 전 세계의 파트너 1300명이 모여서 2박3일간 크루즈 여행을 하죠. 한국 로펌에서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 일이지만 미국 로펌들은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죠. 성과가 없으면 로펌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미 로펌은 치열한 경쟁만큼 보상도 확실
외국로펌은 '침략자' 아닌 '동반자' 인식을
영어는 변호사들의 업무 수단이자 도구

지난 6월 영국과 미국의 글로벌 로펌들이 대거 참여하는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가 공식 출범했고 이 대표는 회장을 맡았다. 이 대표는 외국로펌들을 '침략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인식해주길 당부했다. "9월 대한변협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개업변호사 회원이 1만 4945명이고, 준회원 2935명까지 합치면 1만 7880명입니다. 상위 5대 로펌의 변호사 숫자가 약 1430명이니까 5대 로펌에 있는 변호사는 전체 개업 변호사의 5% 수준이죠. 외국 로펌들은 한국 송무시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95%의 한국변호사들의 업무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습니다."
이 대표는 한국 로펌과 외국 로펌은 '윈윈(win-win)'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 로펌은 풀서비스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외국에서 일이 들어오면 한국 로펌에 이러한 일들을 나눠줄 수 있는 채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한국 로펌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일이 들어오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로펌들은 한국 회사들이 외국에 나갈 때 도와주기 위해 들어온 것입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로펌들은 한국 기업과도, 한국 로펌과도 윈윈할 수 있는 '친한파'로 인식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대표는 법조계 후배들에게 3D(Desire, Dedication, Determination)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망(Desire)이 있어야 하고, 그 욕망을 성취하려면 헌신(Dedication)과 노력이 있어야 하고 하겠다는 의지(Determination)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미국 로펌에서 일하는 동안 10년 동안 휴가를 안 갔습니다. 이 로펌에서 왜 날 뽑았을까 생각했고, 미국인 변호사보다 2배 이상 열심히해야 그들과 같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 각오와 희생은 있어야 합니다."

이 대표는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야를 넓히기를 당부했다. "영어는 변호사들에게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입니다.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한국에만 시야를 고정하지 말고 해외에 눈을 돌리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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