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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10년 내 10大 로펌 진입 목표" 이광범 L.K.B& 대표변호사

"세상 흐름 막을 수 없어… 때가 되면 기꺼이 다른 역할해야"

이광범 L.K.B&Patners 대표변호사는 첫인상처럼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 가지 질문을 하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답했다. 답변을 하는 데 주저함도 없었다. 현상에 대한 분석과 대응,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논리정연했다. 바쁜 변론 일정 중 점심시간을 줄여가며 겨우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에, 혹시나 인터뷰가 부실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날아가 버렸다. 이 대표가 판사시절 법원의 요직을 두루 맡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10년 후 10대 로펌에 진입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는 그의 자신감 있는 발언은 목표가 아닌 기정사실인 것처럼 들렸다.



"도전이 있으면 응전하는 것이 저의 본능입니다. 도전에 따라 살아보는 것, 재미있잖아요?"

법대를 진학한 것도, 판사가 된 것도, 변호사로 개업한 것도 모두 큰 뜻을 품고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1980년대 군사 정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법조인이 됐다던가 하는 거창한 꿈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인생이라는 흐름에 크게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기다 보니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그렇다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이광범(56·사법연수원 13기) 법무법인 L.K.B & Partners 대표변호사의 인생이라는 큰 물줄기에는 나름의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기자가 만난 인간 이광범은 인생의 물줄기가 방향을 바꿔야 할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여 최선의 판단과 최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뚝심 있는 사람이다. 장애물을 피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도전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감당하는 것이 그의 뚝심이었다.

그가 왜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학창시절 시골에서 공부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습니다. 1등을 다투는 정도였고, 형인 이상훈 대법관은 아무도 범접할 수 있는 압도적인 1등이었어요. 그때는 공부 잘하면 다들 서울대 법대 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줄서기 비슷하게 법대에 진학했죠. 그렇다 보니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사법시험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80년 '서울의 봄' 휴교 때 할 일 없어 司試 도전
한 때는 '연수원 13기 선두 주자' 평가도 받아
친형이 대법관에 오르자 미련 없이 법원 떠나

1980년 '서울의 봄'이 지나고 나서 학교가 문을 닫자 '할 일이 없어서'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법률가가 돼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지만, 세상이 암담하고 법대생이 할 일이라고는 사법시험을 보는 것 뿐인 시절이었다. 법관이 적성에 맞겠다고 생각해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의 좋은 평가를 받아 법원행정처 건설국장·송무국장, 인사실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사법정책실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사법연수원 13기 중 대법관 후보의 선두주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친형인 이상훈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법관 자리에 오르자 2011년 2월 그는 미련 없이 법원을 떠났다.

"법원에 얼마나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요. 제가 선두주자였다고 하면 듣는 분들이 서운해하실 것 같네요. 동기와 선후배들이 많이 챙겨줬던 것뿐입니다. 대법관이 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에요. 형제가 같이 판사를 하는 순간, 기회가 우리 두 명에게 같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숙명이 돼 버린 것이지요. 법원에서 사회인으로서 경력 대부분을 보냈는데 사직하면서 아쉬움과 회한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인생관은 사직을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였다. "흘러가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사람은 어느 때가 되면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개업 후 서초동에서 나름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관 시절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유로움도 누렸다. 하지만 곧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의혹 수사에 대한 특별검사로 임명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검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검은 '국민에게 징발되는 것'이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한참 왕성하게 변호사 활동을 했을 때라 특검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은 특검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나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는데, 사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특검은 만능이 아닙니다. 법에서 정한 수사의 범위와 기한이 정해져 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질타를 받게 되지요."



그는 현직에 있을 때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10년 서울고법 형사7부 부장판사 시절 용산참사의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했을 때다. 사법연수원 교수와 법원행정처 실·국장을 거쳐 7년 만에 재판을 하게 됐는데 하필 그 용사참사 사건을 맞닥뜨리게 됐다.

"제 인생에서 피하고 싶었던 일을 꼽자면 용산참사 사건입니다.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 사건을 맡는 순간 '판사로서 마지막 숙명적인 사건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사실 판결 결과가 제 성향과는 상관없는데도 재판 후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前대통령 사저의혹 특별검사'로 언론서 주목
용산참사 사건 재판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
 우리법연구회 창립회원… 사법불신 해소는 큰 숙제

 
이 대표는 용산참사 사건의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하고 난 뒤 우리법연구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한 점이 부각돼 '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판결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정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고, 헌법재판소도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거부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는 우리법연구회와 자신의 성향에 대한 논란, 우리나라 최고의 사법기관에서 내놓은 판결마저도 수긍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에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사법불신의 문제를 우리나라가 포용해야 하는 큰 숙제라고 말했다.

"사법시스템이라는 용광로에서 분쟁이 해소됐을 때, 그건 누가 판결했든지 궁극적인 판단을 최고법원에서 했다면 그 판결을 수용하고 끝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선진 사회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같은 결론을 내놔도 반발이 심합니다. 그럼 누가 사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파가 합니까? 좌파가 하겠어요? 이 원칙이 정착되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가 아직 법치국가로서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판사가 그 논란 속에서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구조가 안타깝습니다."

이런 고민도 이제 옛일이 됐다. 현재는 로펌 대표로 활동하면서 로펌을 키우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법인은 규모만 키워서 덩치로 경쟁해서는 안 됩니다. 내실 있게 키워야지요. 변호사 충원과 합병 등을 통해 로펌이 성장하다 보면 10년 후 10대 로펌에 진입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무법인은 몸만 키워 규모로 경쟁해서는 안 돼
의뢰인에 신뢰 주는게 가장 중요… 그것이 전략
로스쿨 출신들 다른 관료 직역에도 진출해야

 
이전에는 없었던 사업가 정신도 갖추고 탄탄한 영업 전략도 세웠다. "아직 대형로펌과 경쟁할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블루오션을 찾을 생각입니다. 대형로펌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의뢰인, 가기 싫은 의뢰인, 돈을 많이 쓸 수 없는 의뢰인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대 경쟁력은 대표변호사가 모든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0년 차 부장판사급의 변호사들이 직접 의뢰인을 만나고 서면 작업을 합니다. 어쏘 변호사들은 그야말로 보조만 하지요. 중견 변호사가 작은 역할까지 직접 챙긴다는 점이 의뢰인에게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남는 전략이지요. 요즘은 변호사 업계도 계층화가 많이 진행됐어요. 그나마 저는 판사 일을 오래 한 자산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젊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판사경력 25년 경력으로 개업한 소위 '귀족 변호사'인 이 대표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이제 갓 업계에 발을 내디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처지가 어떤지 이해가 갈 듯하다. 최근 기성 변호사들이 변호사 배출 인원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변호사 배출 인원 축소에 반대했다. 문제는 로스쿨 출신을 포함한 인재의 재배치와 국가 구조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지 로스쿨 도입이나 변호사 수 증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변호사의 특권의식을 없애기 위해 노동자 계층까지 로스쿨 도입에 찬성했고, 국가가 이를 수용한 것은 그야말로 결단이었습니다. 그것을 지금에 와서 돌이킬 수는 없지요. 문제는 법조일원화와 로스쿨 도입으로 사법개혁만 해놓고 국가적 차원의 다른 논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스쿨이 배출한 인재들이 외무고시나 행정고시 등 다른 관료 직역에도 진출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로스쿨이 변호사 시험을 보는 학원이 돼서는 안됩니다. 로스쿨 측과 기존 법조인이 서로 대폭 양보하는 제2차 대타협도 필요할 것입니다."

<글=신소영 기자, 사진=백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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