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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Lawketer다

[나는 Lawketer다] 막막한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사의 자세

조우성 변호사(법무법인 한중)

얼마 전 중요한 지방회의가 있어 예약해 둔 09:00 KTX를 타러 서울역에 가야했다. 서류 준비 때문에 08:25쯤 서초동에서 택시를 탔다. 불안한 마음에 실시간 내비게이션을 조회해봤더니 서울역 도착시간이 09:10. 맙소사. 기차를 놓칠 판이었다.

"기사님. 큰일입니다. 9시 기차를 타야하는데, 내비게이션을 보니 늦을 것 같아요. 어쩌죠?" 당황한 내 질문에 기사분은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내비게이션에 그렇게 나온다면 방법이 없죠 뭐"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는 달리는 택시 뒷좌석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기사님,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기차 놓치면 큰일입니다. 중요한 회의라…"

"중요한 회의라면 미리 미리 나오셨어야죠. 지금 출근시간이잖아요."

그 때 기사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친구와 웃으며 통화를 했다. 그 와중에 신호가 바뀌는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해 안 걸려도 될 신호등에 걸리기까지 했다.

"기사님. 신호 바뀔 때 좀 빨리 가주시면 좋겠는데…"

"노란 불일 때 무리하게 건너가면 사고 납니다. 딱지 끊으면 손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휴…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실시간 내비게이션 검색을 계속했다.

"기사님, 터널 지나지 마시고 옆길로 가는 게 더 빠르다고 나오는데요?"

"알겠습니다. 손님 시키는 대로 하긴 하겠습니다만 막혀도 책임 못 집니다."

터널을 지나지 않은 것이 내겐 '신(神)의 한 수'였다. 서울역 광장에 도착한 시간이 08:54.

기사분은 "어이쿠, 잘 하면 기차 타시겠습니다. 허허"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는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승강장으로 달렸고, 출발 1분 전에 가까스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분께 고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사분 때문에 들었던 불쾌한 느낌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앞이 캄캄해서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에게 나 역시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던가?

"계약서를 잘못 써서 그렇게 된 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애초에 잘 하셨어아죠?"

"빨리 재판 진행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됩니까? 어차피 법원에서 진행하는 건데요. 재촉하지 마세요."

"정 그러시면 딴 방법을 강구해보시던지요."

그러다 나중에 승소한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의뢰인은 항상 초조하고 황망한 마음이다. 변호사가 그러한 의뢰인의 상황을 십분 이해하고 같이 마음을 써준다면 의뢰인은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준 그 기사분께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