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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사상 첫 여성 검사장 조희진

“여성은 내면의 유리천장을 먼저 깨는 것이 중요”

미국변호사
흔들림 없는 강인한 눈매, 화장기 없는 얼굴, 절제된 말투…. 서울고검 차장으로 재직 중인 조희진(52·사법연수원 19기) 검사장의 모습은 한눈에 그가 검사임을 짐작케 한다. 지난 1월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검사장이 되기까지 25년을 야전에서 묵묵히 검사로 일해왔다. 그에게는 항상 '검찰내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검사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모든 여성 검사들의 표상인 맏언니 역할도 해야했다. 어깨가 무거웠지만 조 검사장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여성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조 검사장은 최근 발을 다쳤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이동하며 사진 촬영에 임했지만, 여러 차례 거듭되는 사진기자의 요청에도 지친 기색 없이 "잘 나온다면 이 정도도 못하겠어요?" 라며 웃었다. 검사장이라는 무게 뒤에 가려져있던 부드러움이 묻어나왔다. 장소를 옮기며 '여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옷은 세탁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 모습이 영락없는 '미세스(Mrs.)'다. 지난달 27일 서울고검 집무실에서 조 검사장을 만났다.



조희진(52·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검 차장이 가는 길에는 줄곧 '법무·검찰내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난 1998년 법무부에 신설된 여성정책담당관에 임명되면서 첫 여성 법무부 과장을 맡았다. 2004년에는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첫 여성 부장검사가 됐다. 2005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로 발탁돼 첫 여성 검찰교수로 기록됐으며, 2008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으로 발령받아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부서를 지휘하는 첫 여성 부장검사가 됐다. 2009년에는 고양지청 차장검사로 국내 제1호 여성 차장검사가 됐고, 이듬해에는 천안지청장으로 발령받아 첫 여성 지청장이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검찰 일선 기관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건국 이래 사상 첫 여성 검사장에 올랐다. 여성 국무총리와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법조계에서도 2003년 여성 법무부장관과 2004년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지만 검찰에서는 10년이나 늦게 '여성 검사장'이 나왔다. 매일 범죄자를 맞닥뜨려야 하는 힘든 검사 업무에 남성들조차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와 아내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여성 검사들은 조건이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첫 여성 과장, 첫 여성 부장, 첫 여성 검찰 교수…
그의 길에는 항상 '검찰 여성 1호' 수식어가
"가급적 성별 떠나 직분에만 충실하려 노력"

 
조 검사장도 여러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았다. 능력을 발휘해 성별과 무관하게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드라마 속에서는 종종 여성 검사들이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이 연출되지만 조 검사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피의자를 대할 때 법집행자로서 멋부리지 않는 것이 '검사의 품격'이라고 생각했기에, 초임 시절부터 무채색 옷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에 검사로 임관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성 검찰 수사관이나 경찰과 함께 일할 때도 많았지만 그는 '검사'로서의 원칙과 당당함으로 승부했다.

검찰청 내에서도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집안일은 거의 내색하지 않았다. 출산휴가를 제외하고는 '아이' 이야기도 자제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내, 여성으로서의 삶도 있었기에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다행이 사회생활하는 딸을 대견하게 생각한 친정어머니가 조 검사장의 아들을 청소년기까지 돌봐주었고, 남편이 아들의 운동과 과외활동을 도맡으며 열심히 '외조(外助)'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여성 검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여서 움직이기만 해도 눈에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남성 위주의 검찰 조직 문화에 동화되며 조직사회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던 면도 있었지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술 자리에서도 빼지 않았다. "회식을 하면 폭탄주 대여섯잔은 기본으로 마셨어요. 다행히 술을 잘 마셔서 묘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렇게 마시고 난 다음날도 흐트러짐 없이 정상근무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일과 가정의 양립, 그리고 남성 중심 조직문화에 한계를 느낀 많은 여성 검사들이 검찰을 떠났다. 지난 상반기를 기준으로 검찰 내 여성 검사 수는 532명이다. 전체 검사 가운데 27%에 육박하지만,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500명 중 여성은 조 검사장을 포함해 18명 뿐이다.


 
조 검사장은 여성 검사 후배들에게 '자기 내면의 유리천장'을 먼저 깨라고 충고했다.

"예전에는 성별에 연연할 필요없이 검사로서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을 하면서 '여성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말을 빌리면, 여성은 사회적 걸림돌뿐만 아니라 내면의 장애물에 걸려서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자신이 달성할 수 있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 낮추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녀와 배우자가 들어설 여지를 마련하느라 직업상 목표를 수정하고 직장에서 중역이 되려는 열망도 접는 것이죠. 내면의 유리천장을 먼저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산·육아 등은 중요하고도 불가피한 영역
직장어린이집 활성화·탄력근무 등 대책 필요
여성 이해하고 보듬는 검찰 내 문화 정착돼야
 
그리고 출산과 육아 등 여성 검사만의 특유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문화가 검찰 내에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산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성은 육아휴직을 한 동안 성과가 없으니 직장에서는 경력 단절이 없는 남성 인력을 선호하는 '외적 유리천장'에 직면합니다. 최근 여성 검사와 수사관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직장 어린이집을 활성화하고 탄력근무제와 대체인력제 등 묘안을 짜내야 합니다."

조 검사장은 검찰 내 여성 인력이 증가함에 따라 각종 여성정책을 추진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5년에는 14명의 여성검사들과 함께 여성폭력에 관한 국내외 판례를 연구한 '여성과 법'을 발간했고, 최근에는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에서 실시하는 '검찰 릴레이포럼'에서 '여성검사의 현황과 리더십' 강연을 통해 여성 검사들에게 전문성을 쌓고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검사 커뮤니티 '여성리더십과 젠더법' 좌장으로서 전국 각 검찰청에 소속된 100여명의 검사들과 연구 및 교류활동도 펼치고 있다.

최근 서울고검에서 항고사건의 평정을 종래의 '감점' 위주의 방식에서 '가점'을 권장하는 방식으로 바꿔 평가지표로 사용하고 있는데, 주로 형사부에 배치된 여성 검사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직 생활 하느라 가정 소홀에 미안함 많아
성당 새벽미사 반주 하려고 피아노 학원 등록
취미도 생활도 의욕보다 꾸준한 노력이 중요

  
하지만 직장에서 동분서주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가정에는 소홀했다. 가정사를 묻는 질문을 받자 조 검사장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묻어났다.

"사실 자녀양육 문제는 신경을 쓸수록 필요한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때로는 다른 부모들을 보며 '내가 아들에게 너무 못해주는 거 아닌가'하는 자괴감도 들어요." 한번은 대화 도중 아들의 말을 잘랐다가 혼쭐이 난적도 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하는 타입인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했지만 듣고 있던 조 검사장은 그 사이 다른 질문을 까먹을까봐 말을 끊고 '참! 그거 있잖아' 하고 아들의 말을 자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들은 "엄마 바쁘세요? 그럼 다음에 이야기해요"하고 일어나버렸다.

"아들은 중간에 말을 끊고 조급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섭섭했던 모양이에요. 평소에 직원들에게 생각난 것을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습관이 나온 것인데, 끝까지 온전히 들어주는 일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동네 청소년들을 보면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훈계를 하기도 했다. 영락없는 겁없는 검사의 모습이다. "'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분위기가 이렇겠구나'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한번은 자전거를 훔치는 아이를 잡아서 훈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경륜 있는 고참이지만 일상에서는 아직도 서툰 구석도 많다. 그는 1년 전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여가시간을 보낸다. "새벽미사에 반주가 없는 것을 보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집에 피아노는 있는데 정작 치지 않으니 옷만 걸어두게 되더라구요. 선생님이 실력향상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서 얼마 전에는 꼬마들과 함께 발표회도 했어요. 하지만 연습을 제대로 못해서 성당 반주 봉사의 꿈은 요원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일도 그렇지만 취미생활도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되고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열정'이 중요하다"며 웃었다.

<글=박지연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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