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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

"나는 공부하는 사람… 책 읽고 글 쓸 때가 가장 행복"

미국변호사
 깐깐함의 대명사. 양창수(62·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인터뷰 전에 대법정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촬영장소를 물색하고 구도를 구상해 놓은 사진기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진기자의 촬영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는 난생처음이다. 순간 '인터뷰가 순조롭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어정쩡하면서 냉랭한 기운을 감지한 대법원 관계자는 "설득해봐야 소용없다"고 귀띔했다. 할 수 없이 대법정 촬영은 포기했다. 사진기자가 양 대법관 집무실에서 촬영 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쌓여있는 책과 소파를 분주하게 옮기는 부산한 가운데 인터뷰가 시작됐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양 대법관 특유의 깐깐함은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규정과 철저한 노력, 학문적 성과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그 깐깐함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27일, 퇴임을 앞둔 양창수(62·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을 인터뷰하는 1시간 30분 내내 그의 단호한 태도는 다른 법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였다. 기자의 질문에 양 대법관은 어조의 기복이 없이 시종일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천천히 정확하게 답했다. 약간 몸을 앞으로 기대고 앉은 자세와 근엄한 말투, 상대방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모습은 상대방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외양만으로도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아주 엄한 교수로 정평이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법관은 질문에 원칙론적인 입장을 얘기하거나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이 몸에 배어있지만 양 대법관은 질문을 하면 모호하게 답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호오(好惡)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책 읽고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역사 공부 희망했지만 집안 뜻따라 판사로
부산지법 근무중 대통령비서실로 파견 발령
은사 세배 갔다가 뜻밖에 교수직 제의받아

양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부터 수재로 손꼽혔다. 그는 고교 시절 '대학에 진학하면 법률이 아니라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법률가였고 집안 어른들의 희망에 따라 법대에 진학해 판사가 됐다. "판사 시절 1982년 독일 정부 장학금을 받고 독일 유학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주 열심히 공부했는데, 역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렇더라도 직장을 쉽게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기회가 왔다. 독일 유학 후 1984년 6월 부산지법에서 근무할 당시 대통령 비서실로 파견 발령이 났다. 청와대 파견이 싫어 판사를 그만두느냐를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대통령 비서실 파견 명령이 나고, 그 다음 해 정초에 곽윤직 교수님께 세배를 갔다가 뜻밖에도 교수직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판사가 하는 일이 재미가 없었어요.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와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때 '사람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있고, 기계 부속도 아닌데 남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필요가 뭐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70~80년대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이 많지도 않았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현직 판사가 사직하고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파격이었다. 실무가와 연구가의 교류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양 대법관은 학자로서 실무에 체계적인 이론을 공급하고, 외국법 이론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분쟁을 중심으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 앞선 세대들은 대개 교과서를 썼습니다. 심지어 남의 나라 교과서를 베껴 쓰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가 볼 때 교과서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개별법 문제에 대한 연구가 쌓여 있고, 그 결과로 교과서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중요한 업적은 '민법연구'라고 하는 9권짜리 총서를 낸 것입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 역시, 법원이 총서 몇백 질을 구입해 각급 법원에 배포한 때입니다. 우리나라 학자가 실무를 처리하는 데 받아들여지는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실무가들이 그것을 인정한 것이지요."

학자로서 실무에 체계적인 이론 공급이 목표
학계·실무계서 '민법 대가'로, 대학에선'전설'로
중요한 업적은 민법연구 9권짜리 총서 발간

그는 학계와 실무계에서 '민법의 대가'로 유명하지만 대학에서는 '양창수 교수의 전설'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학생들에게는 엄했다. 성실함과 자기발전이야 말로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경우는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교수로서 교육하는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했을 뿐인데, 제가 말하는 방법이나 논조에 서투른 점이 있어 엄격하게 느껴졌을 수 있지요. 우주가 137만억 년 전에 생겼다고 합니다. 이 우주 안에는 지구와 같은 은하계가 수십억 개가 있다고 하지요. 이 우주의 시공간에서 인간은 100년 남짓 살다가 가는데, 아주 조그마한 가능성이 있다면 최대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노력했다면, 실패와는 상관없이 본인 마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지요."

그의 노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집무실에는 책장에 꽂히지 못한 책 수백 권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대법관 접견실은 서고로 변한지 오래다. 접견실의 네 벽면은 물론이고, 가운데 공간도 80cm 폭 책장이 앞 뒤 6행 3열로 도열해 있다. 대법관이 개인적인 휴식처로 사용하도록 샤워실이 마련된 '사실(私室)'에도 특별히 마련한 이중책장이 들어서 있다. "퇴임을 앞두고 많이 정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창고에 70~80박스 분량의 책이 더 있어요." 독일 유학 시절 책이 귀해 도서관에서 복사하고 제본해 소장해온 각종 원서를 소개하는 그의 얼굴엔 행복감이 배어있다. 그가 섭렵한 책은 법학 서적부터 수사학, 과학, 문학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언어도 다양해 괴테와 카프카의 독일어 원서는 물론이고 영어, 일어, 프랑스어 등 '본인이 공부해 습득한 언어로 된' 갖가지 원서를 소장하고 있다.

교수 시절 본인이 시간관리를 하며 강의하고 연구하던 때와 비교하면 1년에 300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관 생활은 답답했을 것 같았다. "판사는 배당되는 사건을 의무적으로 처리해야 해요. 그리고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시간의 자유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법원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사건 처리가 판사의 직무상 의무이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교수는 그렇지 않아요. 강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긴 하지만 그것은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하면 그만이니까요."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판사가 교수와 다른 점이다. "저는 교수 시절 공동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대법관이 되고 나니 재판연구관과 함께 일하고 서로 피드백을 해야 했습니다. 또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내면 끝인 반면, 대법관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대법관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집단 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지요."

'시간의 자유' 관점에서 법원은 '창살 없는 감옥'
대법관 다양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
학자로서 아직 할 일 많아 그래서 바로 학교로

그는 "대법관이 격무에 시달리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교수 출신 대법관으로서 대법관 다양화에 대한 생각을 묻자 "나는 그런 표현을 싫어한다"며 단칼에 잘라 말했다. "저는 재임 중에도 학계 출신 인사가 대법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구성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해서 대법관으로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와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성별, 출신 학교, 출신 지역이 다양한 사람이 대법관이 되는 것은 대법원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관 다양화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다양한 인사 중 구체적으로 누가 대법관이 돼야 하느냐는 것은 차원이 다른 논의이니까요."

그는 오는 7일 임기 만료로 퇴임한 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6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중노동한 것을 생각하면 휴식이 필요해 보였지만, 양 대법관은 한 달 동안 재충전한 후 곧바로 강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자로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고, 그것을 하기 위해 학교로 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판사의 일이나 학자의 일, 매력으로 따지자면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가장 좋고 행복합니다. 결국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그 일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글=신소영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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