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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보헤미안 랩소디'

정재민 판사(대구가정법원)

십사 년 전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했다. 투병생활 중 마지막 생명을 태우며 쓴 글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작가를 선망하던 어머니를 작가로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나의 조악한 문장들을 보태어 어머니와 공동저자명으로 제1회 세계문학상에 응모했으나, 별로 놀랍지 않게도, 낙방했다.

몇 년 전 가족이 사기진료로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 사기꾼 의사가 거짓말과 인맥으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적잖은 충격과 직업에 대한 회의를 겪었다. 원래 심리학에 관심이 많기도 했던 차에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한동안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다. 타인에 대한 원망에 앞서 내 속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었고 내면의 렌즈에 왜곡과 굴절이 없어야 재판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과 내면에 유전된 해로운 잔재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소각하기 위해서 십년을 묵힌 옛 소설을 꺼내 사기진료와 정신분석 이야기를 보태어 개작하기 시작했다. 문장이 쓰여질 때마다 가슴속 상처에 앉은 딱지들이 손톱처럼 잘려나가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을 경험하면서 '보헤미안랩소디'가 완성되었다.

판사가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면에서 재판과 소설은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이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텍스트와 기교를 압도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대개의 작가들에게 글을 쓰는 가장 깊은 이유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고 한 조지오웰의 말은 내 경우에도 틀리지 않아서, 솔직히 내가 글을 쓰는 내밀한 이유를 나도 온전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나는 인간의 위대성을 믿지 않는 쪽이지만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소극적 긍정을 아직은 품고 있다. 아울러 인간 가치의 핵심은 타인의 잣대로 우열을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한 개개인의 고유성이고, 자신의 고유성을 심화하고 타인의 고유성을 폄하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파괴적 경쟁 사회에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내가 별 재능이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굳이 글을 써 온 미스테리 뒤에도 나의 고유성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문학을 한다고 하면 선뜻 지지해준 사람이 없었다. 가까운 사람은 말렸고 먼 사람은 비웃었다. 그럴 때는 문학을 떠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는 것에 대한 비전 자체가 흔들리고 우스워졌다.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이 올해 제10회 세계문학상을 받으니 작가에게는 울컥하는 위로가 되었다. 한없이 초라한 문에 큰 문패를 달아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왠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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