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장애 극복한 원칙주의자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

“다른 상임위와 소통할 수 있도록 조정 역할에 최선”

미국변호사
사람들은 변호사 출신의 3선 의원인 이상민(56·사법연수원 24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두고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일어선 오뚝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2007년 사법개혁안을 통과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007년 개혁안은 사법제도를 대폭 손질해 국민의 인권 보호와 공판 절차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그는 법원·검찰 간, 여야 간 갈등으로 논의가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법사위의 열린우리당 간사를 맡아 한나라당 의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안건마다 대립하던 법원과 검찰마저 설득해 탁월한 협상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위원장으로 법사위에 돌아왔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이 위원장을 여의도 국회 법사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이상민(56·사법연수원 24기) 법제사법위원장은 생후 6개월 때 소아마비에 걸려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선거운동을 할 때도 앉아 있다가 얼른 일어나서 인사하지 못해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장애인이라 의기소침하고 소극적일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태생이 유쾌한 성격이라 그런지 한번도 다리가 불편하다고 위축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학창 시절 목소리 크고 친구가 많은 전형적인 장난꾸러기였다. 음악을 좋아한 그는 충남고에 입학해 '목요음악회'라는 연합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에 학업은 뒷전이었다. 시험을 보면 꼴찌를 거의 도맡았다. 1학년이 끝날 무렵 그의 아버지가 대학 진학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음대 성악과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씁쓸하다고 해야 하나, 기가 차다고 해야 하나, 복잡미묘한 표정이었지요." 그때 아버지의 표정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했다. 장애인이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취업은 더더욱 제한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바로 목요음악회를 끊고 학업에 매진했다.

충남대 1학년 때 교내 음악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고 호프집,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갔는데 아버지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는 줄 알고 격려까지 해주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우연히 다방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보고 '상민이가 생각보다 노래 잘하더라'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고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 장애로 위축된 적 없어
한때 음대 지망생… 음악다방서 아르바이트도
8전9기로 사시합격 후 대전에서 변호사 개업


8전9기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대전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지방대 출신에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시민단체를 돌아다니며 무료 법률상담도 해주고, 조세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한 실무지식을 배우기 위해 세무서에 들어가 과세적부심사를 맡기도 했다. "의뢰인에게 궁금증이 없도록 설명을 잘 해줬습니다. 의뢰인들이 가장 많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설명을 잘 해주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승소율도 높아지고, 패소해도 의뢰인의 불만이 적었다.

그는 사건 수임도 많이 하고 납세자주권운동 등 시민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국회의원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정치 비리 사건들로 인해 오히려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러던 그에게 2004년 3월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손을 뻗었다. 그는 "인재가 없다 보니 기회가 온 것"이라며 멋쩍어했다.

그가 전략공천된 대전 유성구는 당시 자민련이 특별관리하던 곳이라 무명인물이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선거자금 한도가 1억 6500만원이었는데 '변호사 하면서 2~3년 열심히 벌면 되니까 그 돈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절대로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고 깨끗한 정치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한 거죠."



그러던 중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 결정을 내리면서 갑자기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급상승했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다른 후보들이 국가와 민족을 얘기할 때 그는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데 진짜 당선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다. 당선이 확정된 이후에도 국회의원이 됐다고 들뜬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소신을 밀어붙일 때 누구보다도 뚝심있는 강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4월 발의한 '학교용지 부담금 전원 환급을 위한 특별법'은 그의 신념이 담긴 대표법안이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분양대금의 0.8%를 학교용지부담금으로 내도록 규정했던 구 '학교용지확보에 관한 특례법'이 2005년 3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자 그는 이미 납부한 30만명 전원에게 소급효를 인정해 환급해 줘야 한다는 '학교용지부담금 환급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낼 때만 해도 다들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법안을 발의하고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3년여 동안 전국을 다니며 학교용지부담금 피해자들을 만났고, 토론회와 간담회를 수십차례 열어 부당함을 알렸다. 마침내 2008년 2월 당시 한나라당을 설득해 법안을 통과시켜 학교용지부담금 약 4000억원에 대해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았다. 전국 26만여명이 1인당 적게는 100만원부터 많게는 600만원까지 환급받았다.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 일화도 있다. 2005년 9월 국정감사차 대구를 방문한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피감기관과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져 문제가 생겼다. 당시 여야 지도부는 제소가능한 법정기간 7일이 지날 때까지 덮어두려 했지만, 윤리위 간사를 맡고 있던 그는 소속 의원 5명과 함께 제소했다. 당시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철회를 압박했고, 그를 제외한 5명은 철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실무 배우려 세무서 과세적부심사 맡아
열린우리당 지지업고 '준비 없이' 국회 진출
변리사법 개정안 발의… 변호사들 항의도 받아

 
그는 17대와 18대 국회에서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을 삭제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같은 변호사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러느냐"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는 "변리사 업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변호사도 시간을 투자해 변리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고 전문성을 쌓아 진정한 변리업무 능력을 갖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업무 영역의 칸막이를 높여서 지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고품질의 법률서비스를 원하는 의뢰인들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능력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제도로 로스쿨을 활용해야 합니다." 로스쿨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실무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직업인이 되기 위해 로스쿨을 선택했으면 최소한 5년에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며 "조급증을 버리고 스스로 세계적인 법률가로서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조계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방안'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고충은 이해하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인위적으로 막을 것이 아니라 1·2심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얘기를 경청해 억울함이 없도록 하급심을 충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념과 소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청년변호사들 전문성 확보, 블루오션 창출해야
로스쿨 출신 조급증 버리고 5~10년 더 투자를
소수 의견 반영 위해 대법관 구성 다양화 필요


그는 후반기 법사위를 위원들의 입장을 자유롭게 피력할 기회는 보장하되 사회적 쟁점이 된 사안을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는 등 여야 위원 간의 충돌은 없도록 운용할 계획이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넘어서 '월권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른 상임위와 소통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데 더 정성을 쏟겠다"고 했다. "국가 재정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상임위·소관 부처의 이해관계나 요구가 반영된 법안이 법사위로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법안은 어디선가 걸러줘야 합니다. 상임위끼리 부딪치는 법안도 법사위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청년 변호사들이 겪는 어려움과 법률시장 개방 등 법조계가 대변혁 시기를 맞고 있는 데 대해서는 "맞바람이 있으면 더 뜨기 쉽다"며 "자신의 능력을 높이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률가로서 진입하는 청년 변호사들은 들판에 홀로 서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뿐만 아니라 입법, 행정 분야 등 법률가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스스로 블루오션을 창출해야 합니다."

<글=이승윤 기자, 사진= 백성현 기자>

종합법무관리솔루션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