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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판사유감'

문유석 부장판사(인천지법)

먼저 제목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 할 듯하다. '판사유감'이라니 문 판사 어디 유감 있어? 하고 묻는 분이 있을 것 같지만, 법조를 바라보는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생각해 보면 감히 유감 운운할 수 있는 법조인이 있을까 싶다. 첫 번째 의미는 '判事有感'. 판사로서 재판을 하면서 느낀 것들이 있다, 판사에게도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는 '判事遺憾'. 이 사회의 많은 분들이 판사에 대하여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잘 알기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뜻, 즉 판사에 대한 유감의 의미다. 그래도 글이란 무겁지 않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지라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에 '이 판사 느낌 있네?'라는 의미의 '판사유감(判事有感)'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넉살 좋은 욕심을 품고 있다.

전부터 법원 내부 게시판에 '파산이 뭐길래', '서울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등 각종 재판이나 연수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올리곤 했었다. 재작년에는 조직문화의 관점에서 법원의 문화를 풍자적으로 스스로 돌아보자는 취지의 '초임부장일기' 시리즈를 올렸었는데, 이것이 언론에 기사화된 후 여러 출판사에서 지속적인 출간 제의를 받았다. 현직 법관으로서의 부담감 때문에 고사하다가 결국 올해 초에 결심했다. 무슨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그저 한 개인으로서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누군가 읽기를 바라고 하는 행위인데 법원게시판에 쓰나 책을 내나 본질은 마찬가지다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격'에 대한 고민을 놓기는 힘들었다. 결국 비록 실력도 인품도 부끄러울 만큼 부족하고 미숙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법조인들의 언어와 법조 바깥 넓은 세상의 언어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면 무서울 정도다. 이 책의 편집자조차 초고를 읽고는 '배석판사'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니 설명을 달자고 하더라. 우리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언어로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쓰고, 논문을 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슬픈 외국어'다. 모든 이가 쓰는 모국어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법정에도 당신들과 다르지 않은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고교 후배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뮤지션이자 K팝스타 심사위원 유희열 군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더니 '문유석 선배의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우습게도 할리우드 영화다. 치열한 공방전을 다룬 법정 영화들을 보면서 때론 감탄하고, 분노하고, 박수를 치던 기억들이 났다.'라고 써 주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와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두 분도 과분한 추천사를 써 주셨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 분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지금 심정은 오랫동안 얼어붙은 채 굳게 닫힌 언니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보는 꼬마 안나 같다.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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