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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조계 대표 논객 황정근 변호사

"글쓰기는 법률가의 문화적 사명… 선비정신의 핵심"

리걸에듀
황정근(54·사법연수원 15기) 김앤장 변호사는 판사 시절부터 일간지 칼럼 기고와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해온 법조계의 대표적인 논객이다. 법조인만의 틀에 갇힌 것이 아니라 논객으로서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영장실질심사제 도입에 앞장섰다. 신군부의 강압으로 빼앗긴 제주MBC 주식을 반환하라고 판결하는 강직함도 보였다. 정치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러 정치인들을 구사일생으로 살려내 '정치전문변호사'라는 이름도 얻었다. 지난해부터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북한이탈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누구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그는 "이 시대 지도층은 '최고행복책임자(Chief Happyness Officer)'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걷는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새조위 사무실과 인근 종묘 공원에서 만났다.



소년 시절부터 황정근은 법관을 꿈꾸었다. 경북 예천 시골 면서기로 근무하면서 자식만큼은 '고등문관' 같은 고위 공직자가 되길 바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소년 황정근은 꿈을 이루기 위해 중학생 때 고향 예천을 떠나 혼자 서울로 전학해 연희중을 거쳐 대성고에 입학했다. 고2 때 친구 집에 놀러간 그는 난생처음 법관을 만났다. 바로 윤관 전 대법원장이다. "그때 그 분은 부장판사셨는데, 아들 친구인 저에게 용돈까지 주시더라고요. 나도 커서 반드시 판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는 1989년 서울민사지법 판사가 돼 마침내 꿈을 이뤘다.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지 꼭 15년 만이다. 그 사이 대입에 실패해 재수의 아픔도 겪었고, 서울법대 4학년 때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영광도 누렸으며, 해군법무관으로 군복무도 마쳤다. "'꿈꿀 수 있다면 실현할 수도 있다(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는 월트 디즈니의 말을 믿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가진 꿈이 미래에 나의 현실로 나타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중학생 때 상경… 15년 만에 법관 꿈 이뤄
판사 시절 송무심의관으로 근무하며 두각
영장 실질심사제의 실질적 산파역할 맡아

 
황 변호사가 판사 시절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6~1998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다. 1997년 1월은 시행된 구속영장실질심사제는 불구속재판의 도화선이 됐고, 결국 사법절차에서의 주도권이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당시 법원과 검찰은 이 제도 시행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명칭도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제'를, 검찰은 '구속전 피의자심문제'를 고집했다. 실무자 중 법원 측은 황 판사, 검찰 측은 최교일(전 서울중앙지검장) 검사가 선봉에 섰다.

영장실질심사제 시행을 앞두고 규칙이나 예규 제정 등 관련 업무는 고스란히 황 판사를 포함한 송무심의관들의 몫이었다. 며칠씩 밤을 새우다시피 하는 일이 흔했다. 구속영장실질심사제가 시행돼 구속영장 기각률은 치솟자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그해 겨울 대선 정국의 와중에 피의자 측의 신청이 있을 때만 심문을 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영장실질심사제는 후퇴했다. 하지만 이후 법이 재개정돼 2008년부터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들이 법관 대면권을 보장받고 있다. 1996년 1년에 14만여명이던 구속자는 이제 5만명 이내로 줄어들었다. 황 변호사는 그때를 회상하면 감회가 새롭다. "국민의 인권에 직결되는 사법권을 국민으로부터 수임받은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투철한 인권의식과 굳건한 용기와 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인신구속제도, 나아가 형사사법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황 판사는 일선에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판결을 남겼다. 1991년 엄혹하던 노태우 정권 시절 서울남부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그는 신군부 보안사의 강압으로 빼앗긴 제주MBC 주식을 반환하라고 판결해 파문을 일으켰다. 2001년 진주지원 부장판사 때에는 거창민간민학살사건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명예회복 등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해 "국가는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상급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로서는 그만큼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전례 없는 판결이었다. 그는 판사로서 는 좌절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혜안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9년 동안 지리산 일대에서 강도·강간 등의 범죄를 일삼은 '지리산 다람쥐'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고, 진주장애인학교 교사들의 장애 제자를 상대로 한 성폭행 사건인 '진주판 도가니 사건'에서 중형을 선고했다. 황 판사는 진주 근무를 마치고 대법원 부장재판연구관으로 2년 동안 근무하다 돌연 2004년 법복을 벗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갔다. '판사 황정근'을 기억하는 법조 관계자는 "황 판사는 선비처럼 기개가 있고 성품은 꼿꼿했으며 현상을 꿰뚫는 통찰력이 뛰어났다"고 말한다.

2004년 법복 벗고 본격적으로 기고 활동
일간지·법률신문·변협신문 등 '종횡무진'
여의도 政街서는 '정치전문 변호사'로 명성

 
판사 시절에도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을 깨고 일간지에 '불체포특권 유감'이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인신구속과 인권' '선거부정방지법' 등 두 권의 책을 펴낸 그는 자유의 몸이 되자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선다. "법조인으로서 입은 혜택을 국가와 사회에 되돌려주는 제 나름의 재능기부 방식이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쓰는 일입니다.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의 지배와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사회 현안을 바라봅니다." 현재 법률신문 편집위원과 논설위원으로 10여년 동안 칼럼, 시론, 사설을 써오고 있다. 대한변협신문과 매일경제에도 사설과 칼럼을 실었다. 지금은 중앙일보 자매지인 중앙SUNDAY에 고정칼럼 '황정근의 시대공감'을 기고하고 있다. 그가 쓴 100여 편의 글은 주로 법률가 시각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고민하며 쓴 글들이다. 모순이나 문제점들을 단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혜안이 있는 대안과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20여년 동안 쓴 글들 가운데 일부를 묶어 '정의의 수레바퀴는 잠들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글쓰기를 '법률가의 문화적 사명'이라 여기는 그는 이제 법조계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평가받는다. 황 변호사는 "사실 글로써 자기 생각과 입장을 외부에 알린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죠. 그러나 글쓰기를 위해 항상 사회 현안과 중요 이슈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독서와 사색을 하고 쓴 글을 실천하는 것이 선비정신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황 변호사는 '정치전문변호사'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시절 선거전담 재판부에서 근무해 선거범죄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하다. 그는 국내 최초로 선거법 해설서인 '선거부정방지법'을 펴냈다. 판사 시절 틈틈이 저술한 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선거법 재판에서 재판부가 법정에서 제시한 그 책이고, 그 내용이 대법원 판례가 되었다. 중앙선관위 자문위원과 행정심판위원도 겸하면서 쌓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당선무효의 위기에 처한 정치인들이 최종적으로 의탁하는 '정치 전문 변호사'로 정가에 알려져 있다. 그는 변론을 하기 위해 선거와 정치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을 사양했다. 하지만 보도 등을 통해 '청목회 사건'이나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변호인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수십명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조합장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책과 변론을 통해 정치관계법에 대한 판례가 쌓이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보람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판례를 이끌어내는 변호사로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탈북주민 지원' 시민단체 공동대표에 취임
"탈북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통일 예행연습"
이 시대 지도층은 모두 '행복 책임자' 돼야

 
황 변호사는 지난해 4월 사단법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의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새조위(www.saejowi.org)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취업알선, 의료지원 사업, 장학사업, 민간 통일운동을 하는 순수 비영리 시민단체로 올해로 설립 26주년을 맞았다. "북한이탈주민 2만6000명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 서로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힘들게 도착한 이 땅에 잘 정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들이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면서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는 바로 통일의 시금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 변호사는 "탈북주민을 위한 무료법률상담과 법률구조 서비스 제공을 구상하고 있지만 인원과 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탈북주민 지원과 통일준비사업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며 법조인들의 지원을 당부했다. 그는 "우리가 탈북자와 소통하는 것은 '통일 예행 연습'과 같다"고 강조했다.

<글=정성윤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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