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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 그리고 역사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은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다. 브루클린 다저스는 최초로 흑인 야구선수를 경기에 출전시켰다. 그리고 그 선수는 단순히 흑인 최초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야구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재키 로빈슨은 통산 타율 3할1푼1리, 1518안타, 138홈런, 734타점, 197도루를 기록했으며, 1947년 27세의 나이로 데뷔한 이후 신인상을 비롯해서 6회나 올스타에 뽑힌 선수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알 것이다. 일만 개의 작은  용기 있는 행동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용기 있는 행동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이 위대한 야구선수를 다룬 영화 '42'는 장기간의 비행시간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까지 보았다. 사실 그 어떤 영화나 소설도 현실을 사는 한 인간의 삶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다. '42'는 온갖 편견과 불평등을 이겨내고, '흑인' 야구선수가 아니라 위대한 야구선수가 된 한 인간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42'는 그의 영구결번된 번호이다.
영화 속에서 재키 로빈슨은 경기 중에 자신을 끊임없이 야유하는 관중과 상대방, 그리고 같은 팀 내에서도 자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동료들 속에서도 야구를 통해서 진정으로 팀의 다른 구성원들과 동료가 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재키의 삶처럼 우리의 삶은 평등하지 않고 차별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차별이 이유를 알 수 없어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한 인간에게 시련은 그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시련은 돌을 다이아몬드로 만든다. 그리고 그 빛은 세상을 바꾼다. 다저스와의 경기를 거부하는 다른 팀들을 설득하면서 재키를 출전시킨 다저스의 용기가 프로야구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2013년의 류현진의 LA 다저스는 이런 역사를 기록한 팀이다. 

1907

서울지방변호사의 역사는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9월 한성변호사회가 창립되어 최초의 변호사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48년 7월 조선변호사회 서울분회가 서울변호사회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1952년 8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던 중 1960년 10월 서울 제1변호사회가 설립되고, 1966년 10월에는 서울 제2변호사회가 설립되었다. 1969년 2월에는 수도변호사회가 설립되었다. 이중 마지막의 수도변호사회는 용태영 변호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었는데, 용 변호사님은 법조계에 여러 일화를 남기신 분이다. 1956년 고등고시 사법과 8회에 합격하고, 수도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69년 서울에는 4개의 변호사가 존재하는 혼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는 원로변호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서로 신규 회원을 자신이 속한 변호사회로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준회원 제도를 만들어서 아직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변호사로 개업할 판사나 검사를 미리 회원으로 선점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대개 평소의 인연으로 가입하는 변호사회가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분열의 시대는 1974년 6월 법정회원수 미달로 서울 제2변호사회와 수도변호사회가 해산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1980년 7월 서울변호사회와 서울제1변호사회가 통합을 하여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탄생시키면서 마침내 해소되었다. 이때의 통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신 원로변호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선배변호사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회장의 선출을 비롯하여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여전히 분열된 복수의 동경변호사회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선배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통합된 하나의 단일한 변호사회를 가지고 있다. 삶은 이어져 역사가 되고, 선배들의 용기는 후배들의 오늘을 만든다. 

2014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는 미래가 없다. 역사를 모르는 변호사들만 있는 변호사회에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으며, 오늘이 없는 내일도 없다. 현재 전국에는 1만6000명의 변호사가 있고, 이중 실제로 활동을 하는 변호사는 1만4000명이다. 그 중에서 1만 명의 변호사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회원이다. 그리고 그 1만 명의 변호사의 다수가 개업한지 10년 미만의 변호사들이다. 현재 서초동의 변호사회관으로 변호사회를 옮긴 것이 1996년 5월이다. 종래 종로구 당주동에 있던 변호사회는 서초동에 회관을 건립하여 서초동 시대를 열었다. 그 때 선배님들의 선견지명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훌륭한 회관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변호사의 다수는 서초동 이전 시대를 기억조차 못하는 변호사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변호사회의 역사는 미래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후배들을 위한 선배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변해도 변호사들의 삶은 이어져 역사가 되고, 선배 변호사들의 용기는 후배들의 오늘을 만든다.  
 

 지난해 4월부터 연재해오던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은 지면사정상 이번 4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변호사뎐'은 조만간 책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못 다한 시리즈는 새롭게 출간되는 책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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