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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영원한 '인권변호사' 한승헌

"시대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법 살인'의 위험은 여전…"

미국변호사
한승헌(80·고시8회) 변호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다. 동백림간첩단사건·통일혁명당사건·민청학련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변론을 맡아 그의 이름 앞에는 산민(山民)이라는 그의 호(號)보다 '시국변호사'나 '인권변호사'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여든의 나이에 접어든 이 노(老) 변호사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나 간첩 증거 조작사건 등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나 있을 법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인권변호사의 출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때 감사원장을 지내고 현재는 서울시 시정고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를 지난달 24일 서울시 청사에서 만났다.



"시국사건 변호사라고 부르는 것 까지는 감내를 하겠는데, 빵집처럼 1호, 2호 번호를 붙이는 건 민망합니다. 제가 그 당시 비교적 시국사건을 많이 맡은 건 사실이지만 나보다 먼저 시국사건을 맡은 법조계 선배들이 계시는데 감히 1호를 붙이다니요. 인권변호사도 마찬가지이지요. 변호사라면 당연히 인권을 수호하는 직역인데 앞에 굳이 인권이라는 것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한승헌 변호사는 서슬퍼런 독재정권 아래에서 정치적 양심수를 변호하다 두 번이나 옥고를 치러야했다. 생명의 위협은 물론 변호사 생명까지 걸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잘라말했다.

"정치적으로 특수한 상황이었어요. 여러가지 위험이나 불이익을 무릅쓰고 변호를 한 것은 사실이지요. 요즘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독재정권이 미워하는 사람을 옹호하면 옹호하는 사람도 미워하거든요. 그때는 저 말고도 참 많은 사람들이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어릴 때 넉넉지않은 형편서 각종 '알바' 섭렵
대학 4학년때 고시합격 하고 법조인의 길로
검사생활 행동제약 많아 5년만에 변호사로

그가 처음부터 정의감으로 변호사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한학자였던 그의 부친은 생계를 위해 시골로 내려온 뒤 '아마추어 농부' 생활을 했다. 넉넉치 않은 형편 속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다시피 했다.

"중학교 때 신문배달이 시작이었지요. 잡지나 책을 지고 다니면서 방문판매도 했어요. 전주역에서 좌판을 열고 오징어나 과자를 팔기도 했고요. 도장집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진로를 정할 때도 '취직이 잘되는 직업'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전북대 정치학과를 나온 그는 '지방대생이 취업 잘하려면 고시라도 붙어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뒤늦게 고시공부에 뛰어들어 4학년때 합격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검찰로 가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4.19가 일어난 해였는데, 나라가 불안정하니 사람들이 신분이 보장되는 판사나 검사 자리를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자리가 부족했죠. 새내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어요. 법원보다 검찰에서 먼저 통지가 왔길래, 그 길로 검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안정된 생활을 위해 검사가 됐지만 5년을 근무한 뒤 변호사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그가 사직 의사를 밝히자 친척들과 동료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말단 지청부터 법무부와 서울지검까지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고, 또 그 시절 검사의 위세가 엄청나 사직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그에게 행동의 제약이 많은 검사생활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주변 사람들이야 나를 걱정해서 만류했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날 잘 아는 집사람은 오히려 반대하지 않았어요. 변호사로서 내 기량을 더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뢰했던 것이지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생계유지가 가능하니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발현된 그의 적성으로 인해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받지는 못했다. 한 건으로 시작한 정치사범 변호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시국사건 변호의 선두주자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기기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변호를 맡았던 피고인이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끌려가는 것을 여러차례 감내해야했다. 그는 "그래도 '내가 변호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다 풀려나지 않았느냐'고 큰 소리 치고 다녔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아이 4명 중 법 공부 한 아이 한 명도 없고
문학하는 2세가 안 나온 것도 좀 아쉬워
모아 둔 장서 대부분 모교의 도서관에 기증

 
"변호사로서 기대하는 풍족한 삶이나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 4명 중 법공부를 한 아이가 한 명도 없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법조인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봅니다. 그래도 내게 맞지 않는 일을 하느니 자유롭게 살자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았어요.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사건이 그의 마음에 여전히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름아닌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경북대 학생회장 여정남씨다.

"압제정권 아래에서 구속되고 실직하고 불이익을 입는 것도 물론 마음 아픈 일이고 역사의 큰 상처이지만, 그건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의 비극이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은 다릅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다고 이미 죽은 사람이 눈을 뜨고 내 앞으로 걸어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사법살인은 독재자 한 명을 탓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지요. 사법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사법살인의 위험은 여전하다고 경고했다.

"정권의 압제 수위가 높아지면 국민의 저항도 강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고가 터지기 쉽지요. 최근에 문제가 된 간첩증거 조작사건의 경우 국가기관이 나서서 외국의 공문서까지 조작한 사건인데, 간첩은 법정 최대형이 사형이지요. 사법살인이 충분히 재현될 우려가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사사건건 법과 원칙을 지키라고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법치주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권력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지요. 세월호 문제에 대해 내각이나 공무원을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자로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책임자들을 엄벌하겠다며 살인죄 적용을 언급했던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물론 국민들이 참담해하고 예민한 시기에 민심을 위해 정치적인 표현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판단은 법원의 몫이지요. 누구나 자신의 영역이 있습니다. 대학교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초등학교 교사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세월호 참사' 문제의 본질 어디 있는지 알아야
법원이 종종 정치싸움의 무대가 되는 것도 걱정
법조인은 법원 밖 외풍보다 내풍 더 주의 해야
 
그는 최근들어 법원이 종종 정치 싸움의 무대가 되는 것도 걱정하고 있었다.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주요 사건과 첨예하게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들이 사법부 흠집내기로 이어지다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이 흔들린다'거나 '권력에 영합한다'는 말들이 나오더라도 눈치 볼 필요가 없어요. 이럴 때 일수록 법조인다운 기개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사법관료 시스템에 익숙해져서는 안 되지요. 스스로 권력의 눈치에 영합하는 법조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외풍보다 내풍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일본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초 작업이 전무한 실정이라 갈 길이 멀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던 만큼 어떤 것에도 낙담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이겨내는 성품이 그의 큰 장점이다.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어 벌써 여러권의 책을 발간한 그는 문단에도 친한 사람들이 많다. 과거 법률신문 논설위원을 지내면서 연재기사까지 써 언론인이나 다름 없는 그는 관훈클럽이나 기자협회 고문변호사를 맡을 만큼 언론과도 친밀하게 지낸다. 작가나 언론인 중에서도 자유로운 성품을 타고나 반골기질이 있다고 소문난 무리들과 친하다. 깊게 패인 주름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개구지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 문학하는 사람이 안 나온 건 참 섭섭해요. 모아둔 책이 많은데 물려줄 사람이 없네요. 우리 아버지가 마을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지를 읽어주는 일종의 '재능기부'를 많이 하셨는데, 책 대부분을 모교 도서관에 기증할까 합니다."

<글=홍세미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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