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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사법연수원생도 "스펙 업"… 다양한 역량 쌓기 '붐'

로스쿨 출신과 경쟁 필연적… 자신만의 분야 개척 활발
ICTY·주UN한국대표부·세계저작권협 등 해외 실무수습
외국어 능력 개발에 매진·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우리 법조인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다. 살인적인 공부량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새내기 연수생들은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혀를 내두른다. 탄탄한 법률소양과 실무로 무장해 연수원을 나서기 때문에 일부 로펌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보다 채용이나 보수에서 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성적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부 외에 일은 신경 쓰기 어렵다. 다양한 스펙(Spec)을 지닌 로스쿨생에 비하면 출신 학부나 사회경험이 단조롭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에는 외국 로펌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변호사에게 더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로펌에서 근무하는 중견변호사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우리나라 대형로펌도 글로벌 로펌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다"며 "새내기 변호사들이 이런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성적 경쟁에만 힘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최근 1~2년 사이 연수생만의 장점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노력을 하는 연수생들이 눈에 띈다. 일종의 스펙업(Spec-up)에 나선 셈이다.

사법연수원 44기 연수생들이 지난해 8월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마련한 '법문화축제'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보호관찰 소년들과 함께 꾸린 이 무대는 지역주민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해외 실무수습 증가… 스스로 개척하는 사례 많아= 사법연수원 2학년생인 정재영(28·44기)씨는 오는 10월 시작하는 변호사 실무수습 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저작권협회(CISAC)로 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원래대로라면 국내 변호사사무실에서 2개월 수습을 거쳐야 하지만, 연수원에 허가를 얻어 프랑스에서 대체실무수습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연수원에 입소하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과를 다니다 휴학했다. 정씨는 "영상물을 직접 창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저작권을 지키는 일에 관심이 많아져 지원했다"며 "대체실무수습 선례가 없어 조사부터 지원까지 모든 준비를 직접 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씨처럼 국제기구 대체실무수습을 선택하는 연수생이 크게 늘고 있다. 사법연수원 자체 조사에 따르면 44기 연수생 510여명 중 10%가 넘는 56명이 해외대체실무수습을 허가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연수생들이 국내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습기간을 보낸 2~3년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해외대체실무수습 주요 기관은 구 유고전범재판소(ICTY), 주블라디보스톡 한국총영사관, 주UN 한국대표부,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등으로 국가나 업무가 매우 다양하다. 이 연수생들은 대부분이 연수원 도움 없이 직접 연수기관을 선택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광호(42·사법연수원 31기) 사법연수원 교수는 "국제기구와 글로벌 법률시장에 진출하려는 연수생들의 의욕이 반영된 결과"라며 "예전에는 연수생이 로스쿨생에 비해 덜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요즘 연수생들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외국어 능력 개발에도 집중= 연세대 국제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수원에 입소한 심용아(25·44기)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영어공부에 신경을 썼다. 정창호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UNAKRT) 재판관을 롤 모델로 삼고 국제기구 근무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꾸준한 준비 끝에 UN 인턴 선발절차에 지원한 심씨는 오는 6월부터 캄보디아에 있는 UNAKRT에서 대체실무수습을 한다. 심씨는 "연수 기간에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수원에서 오전 수업 전에 개설하는 일반 영어 수업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결석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한 연수생은 "억지로 듣는 수업이 아니라 선택 과정이어서 수업 분위기가 좋다"며 "법률시장이 개방돼 법조인에게 영어 능력이 필수가 된 만큼 우수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예전에는 연수생들을 면접할 때 영어실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영어 등 외국어를 잘하는 연수생들을 눈여겨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봉사에도 적극= 사회봉사 모임을 만들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연수생도 눈에 띄게 늘었다. 기수 별로 소수만 참가하던 봉사활동 공동체 '나눔'의 경우 44기 연수생 때부터 참가율이 급증했다. 매월 정기적인 후원을 하면서 일 년에 4~5 차례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나눔 집행부에서 활동하는 유은이(27·44기)씨는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못찾는 연수생들이 많은데, 함께 일정을 잡고 기회를 마련했더니 다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서벽지 등 무변촌을 찾아 무료법률상담활동을 벌이는 연수생도 있다. 전용우(28)씨 등 44기 11명은 지난해 12월 울릉도 등을 찾아 법률상담을 했다. 모두 연수생들의 자발적인 기획으로 마련된 행사였다.

연수생이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지속적 근로봉사'도 눈에 띈다. 사회적 관심 소홀로 문제아 취급을 받던 아이들을 연수생들이 매주 만나 형·누나 노릇을 해준다. 지난해에는 이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도 펼쳤다.

서울에 있는 한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아무리 연수원 성적이 좋아도 연수원 수료 과정 내내 활동 이력이 없는 연수생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한 연수생을 채용하고 싶다"며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조인에게 다양한 경험은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연수생들의 다양한 능력개발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간 안정적인 엘리트 직업군으로 비춰지던 변호사업계가 위기의식을 발판 삼아 우수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이계정(42·사법연수원 31기) 사법연수원 교수는 "향후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며 고민하는 연수생들이 많지만, 연수원 과정을 충실히 하면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한다면 법조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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