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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流水不爭先의 마음으로 산다' 최송화 사법정책연구원장

"사법부 기능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사법적 치유와 사회적 통합"

미국변호사
 오는 10일 개원하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초대 원장에 임명된 최송화(73) 원장의 얼굴에는 70년 세월의 경륜과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온화한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품어주는 동시에, 사법부의 미래와 사법정책연구원의 막중한 책임을 말할 때는 법치주의 원칙에 대한 단호한 신념이 느껴졌다. 법학도의 길에서 행정법 대가로 불리는 학자의 길, 서울대 부총장 등 수많은 기관장을 역임한 그의 삶의 궤적에는 '흐르는 물처럼 앞다투지 않는 삶은 결국 상대방과의 승부를 넘어선 화국(和局)의 길로 귀결된다'는 인생철학이 관통하고 있었다.

바둑 두다보면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和局'
재미로 시작한 바둑에서 인생의 묘미 깨달아
해방과 전쟁의 유년시절이 법학의 길로 인도

바둑은 자신의 인생에 한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최 원장은 소동파의 시 '관기(觀棋)'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승고흔연(勝固欣然), 패역가희(敗亦可喜)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이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지더라도 그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는 뜻이지요. 지고도 기쁠 수 있는 것이 바로 바둑의 매력입니다."

바둑에서 배운 가르침이 하나 더 있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는 말이다.

"유년시절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바둑을 가르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때부터 바둑을 두었지요. 처음에 포석하고,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상대방을 죽이고 잡는 사활을 건 다툼 끝에 끝내기에 접어드는 일련의 과정이 바둑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유수부쟁선이라는 말이 바둑의 묘미를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닌가 합니다. 그 가르침을 따라 바둑을 두다 보면 도달하는 지점은 '화국(和局)'입니다. 승부가 나지 않고 비긴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삶도 유수부쟁선의 마음으로 살다 보면 종착점은 화국이 아닐까요?"

◇포석- 혼란 위에 놓인 법학도의 길

학창시절 최송화(73·사진) 원장은 좋아하던 미술을 진로로 결정할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광복과 한국전쟁이 법학도로 이끌었다.

"미술을 좋아하고 공부하다 보니 작품 안에 나타난 균형과 조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우리 자연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제가 유년기를 보낸 대한민국은 해방과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와 사회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그 기본은 법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법학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가르침이 됐다. 법학이야말로 사람의 고귀한 가치를 실현해 내고 사람을 배려하고, 균등하게 존중하는 데 기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과 달랐다.

전쟁의 화마가 지나간 뒤에는 독재와 군사정권, 민주화의 열망이 뒤엉킨 또 다른 혼란이 차지했다. 최 원장은 고교와 대학 시절을 거치며 3·15 부정선거, 4·19 민주항쟁, 5·16 군사 쿠데타를 지켜봤다.

"제가 꿈꾸던 이상,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인생관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부딪히면서 상당히 어려운 갈등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옳은 것을 견지하다 보면 모든 것은 원칙으로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우리 헌정사에 많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것을 잘 거쳤기 때문에 희망이 보이는 오늘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활- 애제자 백태웅 교수에서 신영철 대법관 사태까지

최 원장은 많은 제자들 중 현재 하와이대 교수로 있는 백태웅씨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서울대 법대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이다. 최 원장은 부산에 있는 그의 가정을 방문한 일화를 떠올렸다.

"물지게를 지고 달동네에 있는 집으로 물을 나르던 백 군의 모습을 보게 됐지요. 부모님의 모습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백 군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한 육군 소대장 출신이셨죠. 당시에는 친구의 공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대단한 애국심, 그리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내게 그랬듯이, 백 군 부모님에게서 말할 수 없는 깊은 자식 사랑을 느꼈습니다. 제가 서울로 떠나가는 역까지 나오셔서 백군의 장래를 맡긴다고 부탁한 말씀이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내내 생각이 나더군요."

서울대 부총장 등 역임… 학자로서도 성공
제자인 백태웅 교수와의 인연은 애잔한 추억
공직자윤리위원장 등 다양한 기관장도 거쳐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최 원장은 백 교수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의 총책으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9년 사면될 때 고 김수환 추기경과 이수성 전 총리와 함께 탄원하기도 했다.

"백 군이 결혼할 때 역경을 넘어 원만한 가정을 이뤄 시작하는 행복한 삶을 축복해 주고 싶어 주례를 서기도 했습니다. 백 군이 학문의 길로 나가는 것을 바라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지요."

최 원장은 학자로서 성공한 인생을 걸어왔다. 교수로서 많은 제자를 키워낸 것은 물론, 1996년 서울대학교 부총장, 1999~2000년 한국공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다양한 기관장도 역임했다. 2003~2005년 인문사회연구회 회장, 2005~2006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2006~2010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2008년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약력에는 다양한 직함이 올라있다.

많은 역할만큼이나 다양한 사건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시절 불거진 '신영철 대법관 사태' 였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11월 '광우병 촛불집회 사건'을 맡은 형사부 단독판사들에게 "헌법재판소가 근거 조항인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심리를 끝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관련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라"며 이메일과 전화로 독려했다. 또 상당수의 촛불재판 사건이 특정 단독판사에게 임의로 배당돼 재판권 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제가 고민했던 것은 사법의 독립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 한 가지를 두고 사법부 내외부의 너무나 다른 입장 차이가 있었고, 다양한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인가가 저와 윤리위원들이 처한 상황이었죠."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결국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으로 결론짓고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에 주의나 경고조치를 권고했다.

◇끝내기- 사법정책연구원 출항의 선장으로

남들은 은퇴 후 삶을 즐길 때지만, 최 원장의 끝내기 한 수는 저 멀리 남아있다. 오는 10일 개원하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지난 1월 임명됐다. 최 원장은 사법부 기능이 더는 분쟁 해결 중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계층 갈등,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법의 치유적 기능과 사회 통합 기능을 갖추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갈등과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법부 기능이 분쟁해결에만 머물면 안 돼
사법정책연구원 기초 닦는데 마지막 역량을

사법정책연구원은 5개 센터로 나뉘어 미래 재판 제도에 대한 연구(미래사법센터), 통일에 대비하는 사법(통일사법센터), 외국에 대한 연구와 교류·전파·사법의 세계화(해외사법센터), 갈등을 치유하고 해소하기 위한 인접 학문과의 통섭적인 연구(통합사법센터), 사법신뢰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국민 법 교육(법교육센터)을 연구할 계획이다. 현재 사법부 내부 공모와 외부 공모를 통해 150여개의 연구과제를 수집한 상태이고, 본격적인 과제 선정을 거쳐 순위를 정해 진행할 예정이다.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고, 제도 개선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사법정책연구원이 설립됐죠. 저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은 첫 출항을 하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출범 멤버입니다. 저도 한 명의 연구원으로서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첫 기초를 잘 닦아 놓았다는 평가를 듣는 것입니다."

<글=신소영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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