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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의 일과 가정, 그리고 양립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체험하였다. 우선 옷차림이 삼성 시절에 비하여 캐주얼했다. 특히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고, 한편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음료와 냉장고가 있는 캔틴(canteen)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굴뚝 회사로 불리는 회사지만, 하드웨어 회사인 삼성과는 문화가 달랐다. 필자는 두 회사의 경험을 접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때 경험한 이런 여러 가지 흥미로운 변화나 새로운 것 중의 하나가 'Work and Life Balance'라는 단어다. 우리말로 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나 '일과 가정의 균형'이런 식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에서 일하면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 중의 하나다. 삼성맨으로서 일 외에 가정에 대한 강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던 터라 특이한 용례였다. 지금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률의 명칭에까지 사용되는 용례이지만 필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 법은 원래 1988년에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8차례의 개정을 거쳐 2007년 지금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로 개정된 것이다. 이 법은 여성근로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로서 출발하여 모집과 채용단계에서의 평등한 기회 부여, 교육·배치·승진에서의 차별금지 등 여성에 대한 차별처우를 광범위하게 금지하는 법이다.
그런데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성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하는 동안 본사 법무팀(LCA)의 팀장급 변호사가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회사를 사직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가정이 중요한 것은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것이 없다.

지방근무 아빠, 그리고 변호사

대구에서 교수로 일하던 시절, 솔직히 초등학교 다니는 필자의 아이들에게 아빠는 없었다. 주말 서울에 와있을 때도 다른 약속들이 있었고, 연구를 한다고 밖에 있기가 다반사였다. 어쩌다 집에 있어도 장거리 여행으로 지친 몸은 침대로 향했다. 세종시로 이전하며 가족들과 생이별하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공무원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남의 일 같지 않는 것은 경험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경험하지 않고 공감(共感)하기는 어렵다.
몸이 힘드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가정은 내게 늘 주는 존재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아이들 마음속에 그들만의 공간이 생기는 어느 순간, 주말에 서울 집에 와 있어도 외톨이가 된 듯 어색한 상황을 느끼는 위기감이 들었다. 가정은 일만큼이나 내가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절 들었던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내가 만일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가정에서 나의 자리는 없을 수도 있겠다. 성장하는 아이들과 같이 공유한 시간이 없으면 나는 아이들과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지려면 모두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거저 가지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삶은 공평하다.

변호사의 일과 가정

변호사는 힘든 직업이다. 머리 쓰는 직업이지만, 몸을 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학기에 한 번씩 장시간 강의를 했다. 솔직히 강의하는 필자가 더 힘들었지만(교수는 쉴 수가 없지 않은가) 내 학생들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늦은 밤에 졸리는 눈을 부비면서 하는 강의를 하면서 필자는 초년생 변호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사실 체력이라고 말했었다. 변호사는 보람 있는 직업이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직업이다.
스스로 피곤하면 주변을 돌아보기 어려워진다.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정은 가장 먼 공간에 자리 잡을 수 있다. 사실 집에서도 고민할 거리는 많고 해야 될 일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힘드니 나를 더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기 쉽다. 가정이 전체적인 삶의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러면 가족들은 점차 나와의 대화를 줄이게 되고, 나는 가족들 속에 속해있지만 사실 가족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어져 간다. 이 경우 도대체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은 그 자체로 존재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 이상(以上)이다. 가족은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기뻐하고, 아파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場)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가족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변호사가 힘든 일이라는 것과 가족에게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내 시간의 순위 밖으로 밀리면 안 된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은 일이 주는 보람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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