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와 법관법(Judge made Law)

판사가 법을 만든다

법은 국회가 만든다. 그래서 국회를 입법부라고 한다. 과거에는 행정부가 행정입법을 하면 국회가 이를 승인하는 기관으로서만 기능한다고 국회는 통법부(通法府)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2013년을 기준으로 국회는 법안의 수(數)에 있어서는 행정입법을 확실히 능가하고 있다. 국회입법은 행정부가 제안하는 법안과 달리 규제개혁심사나 차관회의 등과 같은 절차를 거쳐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행정입법과 구별된다. 이러한 차이는 국회가 본연의 임무가 입법이라는 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차이다.
그런데 사법부(司法府)가 법을 만든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법원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관이지 법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전혀 이상하거나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법해석기관이다. 그런데 축적되고 정립되는 판례는 법형성 기능을 한다. 이를 영미법 전통에서는 법관법이라고 불러왔다.

법관법(Judge made Law)

판사가 법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영국법에서는 이미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 1723-178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법철학자 블랙스톤은 입법은 대표자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데, 법관이 법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1766년 그는 '영국법 주해'(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를 발간한다. 이 책은 미국의 법률가인 존 아담스(John Adams), 존 제이(John Jay), 존 마샬(John Marshall),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등에게 영향을 미쳤고,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에서도 언급되는 보통법(common law) 전통을 가진 영미법 국가들에서의 중요저서다.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개정작업이 이루어진 이 책에서 블랙스톤은 영국에서의 법관법 형성, 다시 말해 판례법 형성이 입법부의 입법과 함께 진행되는 것을 관찰하고 이를 중요한 법원으로 인정하였다. 영국에 존재하는 많은 법들이 입법부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입법되는 것이지만, 영국이 판례법 국가라는 것은 법원이 법의 해석과 보충작용을 통해서 판례라는 이름으로 법을 형성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미국도 판례법국가라고 부른다. 미국 대법관이며, 법철학자인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 Homes)는 법관이 만드는 법(judge made law)을 입법작용에서 가장 회색(灰色)지대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규정된 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법을 선언하고,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입법부의 구성원이 아닌 법관이 만드는 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그 이후 미국에서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논의가 진행되었고, 사법부는 정치에 말려들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소극주의 경향을 취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 논쟁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항상 재해석되고 논의를 통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사실 판례법국가라는 것은 그 용어자체로 제대로 된 설명범주가 아니다. 판례가 법형성기능을 한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성문법국가라고 대학시절 배우고 그렇게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서 법원이 미국과 달리 법형성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역시 타당하지 않다. 선례구속의 강도라는 면에서 미국 대법원에서도 늘 논란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법관에 따라서 선례구속의 정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성문법 국가라고 불린다고 선례가 법으로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우리 법의 작동 메카니즘(mechanism)도 판례를 통한 법형성을 수행한다.

법관과 변호사의 하모니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더 울버린'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다. 주인공 울버린이 식사를 하면서 젓가락을 음식에 꽂아서 세워두자 같이 식사하던 일본여인이 한 말이다. 법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도 의미가 있다. 법정은 판사와 변호사가 대화를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민사소송법과 같은 소송법은 대화의 규칙을 정한 법이다. 입증책임을 어떻게 분배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사실은 대화에서 결론을 내리는 법칙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대화에서는 답을 모르겠다고 할 수 있지만, 법관에게 판단불능이라는 답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한 규칙이다.
훌륭한 법관법은 훌륭한 변호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요리의 재료와 새로운 요리법을 제공하면 법관이 변호사와의 대화과정에서 이를 채택함으로써 우리 사회 규칙의 일부로 편입한다. 이것이 법원에서의 법제정과정이다. 법관법은 사실 법관과 변호사의 하모니의 결과이다. 미국이나 독일 법정에서 토론이라고 볼 수 있는 수준으로 변호사와 법관이 지속적으로 질문과 응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법을 발견하는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은 이런 법관법 형성과정을 잘 보여준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