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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

철인정치

민주주의는 과정(過程)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집결하고, 그 의사결집의 과정에서 토론을 하고, 다양한 의사와 관점을 통일적으로 귀일시켜서 공동체 전체의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과정에 핵심이 있는 민주주의는 어떤 면에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많은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철인(哲人)이나 현자(賢者)에 의한 의사결정체제보다 고비용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논의절차와 참여, 타협과 조율을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므로 이러한 과정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과정에 대한 강조는 시스템 자체의 본질적인 핵심요소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과정을 통해서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는 "현대철학은 플라돈의 주석에 불과하다(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고 말했다. 플라톤(Plato)은 그의 '국가론(The Republic)'에서 철인통치론(哲人統治論)을 내세운다. 이는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우민정치(愚民政治)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민주주의란 제도는 소수가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잘못된 다수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되면 사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위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플라톤은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지배자가 사회를 통치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사회가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을 갖춘 철인(哲人)에 의해서 통제될 때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절차혁명

우리는 민주주의를 택했고, 철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정(過程)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위험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변호사는 이러한 절차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가지고 있다. 변호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적법절차가 사회 내에서 담보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에서 워렌 대법원장 재임기인 워렌코트(Warren Court)가 달성한 절차혁명(Procedural Revolution)은 바로 이런 민주주의에서의 변호사의 역할과 법원의 역할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드레드 스코트(Dred Scott) 사건(1857년)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북위 36도 30분 이북의 준주(準州)에서 노예제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미주리협정(Missouri Compromise)은 위헌이라고 판결하고, 미국헌법은 흑인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노예는 시민권을 가질 수 없으며, 흑인 노예는 비록 자유주에 거주하였더라도 자유를 인정받을 수 없으므로 노예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남북전쟁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판결은 1867년 수정헌법 제14조로 사실상 무효가 되었다. 이 판결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선고한 최악의 판결 10선에 꼽힌다.

반면 미란다(Miranda) 판결은 절차혁명의 대표적인 사례다. 연방대법원은 피의자가 진술거부권,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告知)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미란다 판결은 보수적인 미국인들로부터 연방대법원이 범죄예방이나 범죄피해자의 권리보다는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이 판결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형사사법에서의 절차보장의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이러한 판결들에는 선배변호사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고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

실질적 법치주의의 달성은 민주주의에서 과정을 담보하는 적법절차보장(due process of law)과 함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이 두 개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Atlas)의 역할이 변호사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체들 간의 공존과 대화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의 세계관을 하나로 통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논쟁과 토론, 협의와 선거를 통하여 결국은 의견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승리와 패배가 아닌 이해와 양보가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이 과정과 절차를 통제하고, 이들이 합의하는 규범이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변호사다. 로마신화의 여신 미네르바(Minerva)는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에 해당하며, 지혜와 기술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올빼미는 그녀와 함께 하며, 밤에도 깨어 세상을 지켜본다. 민주주의가 고비용 저효율의 체제이지만 인간이 만든 현존하는 가장 진보된 정치체제인 이유는 체제를 제대로 움직이게 하고, 정의가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의 보장 위에 서게 하는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다. 깨어있으라, 변호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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