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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3월 퇴임하는 '말띠 대법관'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재판업무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자세 필요"

 '사법행정의 달인' 차한성(60·사법연수원 7기) 법원행정처장은 갑오년(甲午年) 올해, 인생의 전환점에 서있다. 두달 뒤면 대법관 임기 6년을 마치고 34년 동안 봉직한 법관직에서 물러난다. 또 1954년 갑오년 생으로 한 갑자(甲子, 60년)의 세월을 보낸 그는 올해 청말띠 해를 맞아 새로운 갑자를 다시 시작한다. 법원에서는 사법부 미래에 대한 혜안과 추진력, 빈틈없는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쌍둥이를 포함 네명의 손주들을 돌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평범한 할아버지이다. 서울북부지검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 호동(36·38기)씨도 1979년 1월 생이어서 보기 드문 말띠 부자(父子) 법조인이다. 법관 생활을 정리하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차 대법관을 만나 법관으로서의 삶과 철학에 대해 들었다.


차한성(60·사법연수원 7기) 법원행정처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그림 한 점이 책상 근처에 걸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린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장면이 담긴 그림이었다. 인터뷰 내내 '똘레랑스(tolerance; 상대방에 대한 이해, 관용을 뜻하는 불어)'를 강조한 그는 사법행정 뿐만 아니라 재판업무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현안을 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법행정은 견인하는 게 아니라 지원해주는 겁니다. 사법의 본질은 재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선의 의견을 듣고 절차를 밟다보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빨리 제도를 정착시키는 길입니다. 재판할 때도 마찬가지로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1980년 판사로 첫 발… 2008년 대법관으로
법관 생활 34년… 은퇴 후 계획 아직 못 세워
일처리 빈틈없지만 집에서는 평범한 할아버지

 
서울대 법대 재학중이던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0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고 2008년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법원 내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 법관'이다. 매사에 빈틈이 없는 일처리로 법원행정처에서는 '철벽수문장'으로 불린다.

"그 소리 들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여러 모로 힘들게 하고 있구나 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팀을 이뤄주면서 같이 일해준 법원 구성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기도 되니까 부담이 되는 측면도 없잖아 있지요. 하지만 다들 열심히 해주니까 큰 걱정없이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수문장'이라고 봐준 건 축구가 팀플레이인데, 그 중 한 멤버로 끼워준다는 측면도 있지 않겠습니까."

업무에 관해 꼼꼼하기로 소문난 차 처장이지만, 형사단독 판사를 하던 시절에는 아찔한 경험도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사무분담이 바뀐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전임 재판부가 이미 심리를 마치고 판결문 작성까지 끝낸 사건을 넘겨받았다. 선고기일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는 전임자에게 판결문을 넘겨받고 흔히 말하는 '선고대행'을 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피고인을 호명하다 크게 당황했다.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에 나왔는데, 판결문 주문은 징역형에 처한다고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차 처장은 선고를 잠시 미룬 채 부랴부랴 판결문을 작성한 판사를 찾아갔다.

"이 피고인 법정구속해야 되는 건가요?"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집행유예 선고를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실수로 주문에서 빠진 것이었다. "급하게 주문을 고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아찔했죠. 피고인을 엉뚱하게 법정구속할 뻔 했으니까요. 남의 일을 대신 할 때는 특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판결할 때는 판사 1명의 개개인이 중요하지만
사법행정에서는 조직이 함께 결론 내는게 중요
팀웍 통한 업무에서 재판 못지 않은 보람 느껴

 
 차 처장은 오는 3월 3일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법관생활을 마무리한다. 보통 법원행정처장을 맡으면 잠깐이라도 재판부에 복귀했다가 퇴임하는 것이 관례지만, 차 처장은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하다 퇴임할 예정이다. 업무가 바빠 은퇴 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가끔 전원합의체 변론일에는 '나도 저기 앉아서 재판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팀웍을 통한 업무에서 느끼는 보람은 재판업무 못지 않게 컸던 것 같습니다. 판결을 할 때는 판사는 한 명의 개개인이 중요하지만, 사법행정에서는 조직이 함께 결론을 내는 게 중요하지요."

지난해 차 처장은 감사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는 "대법관이 헌법상 임기 중에 행정부로 옮긴다는 게 바람직하지는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명심보감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잘 알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고. 판사들이 뭔가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능력과 적성이 맞을 때 자연스럽게 뭔가를 맡을 수 있는 것이지요."

대법관의 첫 번째 역할은 우리사회 갈등 봉합
진보·보수는 구체적 사안 따라 달라진다고 봐
판사는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절제할 줄 알아야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차 처장의 후임 대법관 천거를 마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는 게 대법관의 첫 번째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충돌만 하고 남의 것을 이해하려는 자세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사회가 발전하려면 다른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우리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다 보면 화합까지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불어를 공부했던 차 처장은 프랑스로 해외연수를 떠난 1호 법관이다. "파리에 우리로 치면 대법원에 해당하는 파기원이 있습니다. 구내식당에는 판사나 직원이나 모두 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사람마다 내는 식대가 다르더군요. 급여를 많이 받는 법관은 식대가 비싸고, 반대로 말단 직원은 저렴했습니다. 상대적인 것을 고려하면서 균형을 이뤄가는 프랑스 사회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대법관의 성향을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는 세간의 잣대에 대해서도 '상대적인 가치'를 강조했다. "밖에서는 저를 보수에 가깝다고 하는데, 진보와 보수는 사람에 따라 획일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현대자동차 파견근로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도 했고, YMCA가 여성들을 임원에서 배제한 것이 성차별이라고 해서 손해배상책임 지우기도 했어요."

차 처장의 법관 생활은 올해로 34년째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법관으로 살아온 셈이다. 법관이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법관이 되기를 바랐고,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큰 고민없이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법관이 된 이후에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법관은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경계하는 '신독(愼獨)'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긴 시간을 올바른 결론을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처신도 조심하면서 지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같이 일했던 법관이나 직원 누구든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만 만나 인복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판사생활을 보람있게 잘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배 법관들에게는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절제할 줄 아는 판사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후배 법관들이 과거에 비해 환경은 어려운데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민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법관생활을 길게 멀리 보면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돼야 해요. 재판을 할 때는 경청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요. 그런 법관으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었으면 합니다."

그는 법률신문 독자들에 대한 새해 인사도 잊지 않았다. "법조인 모두 벌판을 힘차게 달리는 말과 같이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글=좌영길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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