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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도진기 부장판사(울산지방법원)

연옥의 재판장으로 임명된 염라왕은 법을 전혀 모르는 탓에 재판을 앞두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똑똑한 소크라테스를 우연히 만나고는 옳다구나 하고 변호사로 임명한다. 한 성질 하는 욱 검사는 피고인들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소크라테스는 매번 번뜩이는 논리로 피고인들을 변호한다. 이들은 재판을 위해 패럴렐 월드로 잠입하기도 하고 시공간을 건너 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맞이하는 의외의 결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법학 개론'을 목표로 삼아 책을 썼다. 가장 고민한 부분은 전달방식의 문제였다. 컨텐츠만 가지고 보면 대학교재가 가장 풍부하겠지만 사람들이 가장 멀리 밀쳐놓는 책이기도 하다. 아무리 지식이 쓸모가 있다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는 건 고역이다. 더구나 그 대상을 법률의 기초지식이 없는 청소년으로 두었기에 더 그랬다. 처음엔 따분하고 설명적인 원고를 써놓고는 근 1년간 속수무책으로 묵혀두고 있었다. 이걸로는 안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섬광처럼 '재판이야기' 형식을 빌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히트였다. 염라왕, 소크라테스, 명계의 재판 같은 발상이 자석 퍼즐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순식간에 착착 맞아 들어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주말에 객지의 컴컴한 관사에 틀어박혀 원고를 썼다. 한 번 봇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이 생각들이 밀려왔다. 이 둑의 구멍은 네델란드 소년의 팔뚝 정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좀 쓰다가 힘들어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가 또 다시 밀려드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굶었고, 허리도 아팠다. 그 주말에만 원고지 400장을 썼고, 나머지 전부를 이 포맷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도 퇴근 후 틈틈이 써서 불과 2주 만에 끝났다. 무당도 신 내린 직후가 가장 약발이 듣는다고 한다. 집필기간은 짧았지만 소위 '그분이 오신 때'에 썼기에 더 나의 정수가 깃든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내심의 기대도 있다. 쓴 김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이런 식으로 풀어 쓴 법률교양서가 있는지 서점을 뒤져 보았는데, 없었다. 따분한 일본의 법률서적에 둘러싸여 혼자 흐뭇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으니, 그 희한한 손님이 일본에 경쟁심을 갖고 있던 한국의 한 법조인이었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알았다면 무어라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장래 법조인이 되기를 꿈꾸는 딸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원래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먹이지 않는가. 최선을 다해 썼고, 우리 딸이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읽는 모습을 보아서 무엇보다 좋았다. 한 가지 에러는 있었다. 딸은 아빠가 책에 나오는 염라왕과 비슷하다고 평했다. 응? 염라왕은 실수연발 코믹 캐릭터인데?

이왕 세상에 나왔으니, 이 책이 법 논리에 관심 있는 성인이나 청소년 모두에게 뿌려주는 가랑비가 되었으면 한다. 거부감 없이 한 두 방울 맞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젖어버리는 그런 법의 가랑비 말이다.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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