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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법조인 출신 박인환 위원장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피해 보상 어렵다고 손 놓을 수 없어"

미국변호사
박인환(60·사법연수원 16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위원회 위원장은 "일본으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는 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서울고법과 부산고법, 광주지법이 일제 때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들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린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5월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 따른 판결들이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구나 일본의 아베 정권은 일제의 침략마저 부정하려 드는 등 과거사 문제에 퇴행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전략가'이면서 '협상가'였다. "전 국민으로부터 '피해를 보상하라'는 서명을 받아 일본에 보내는 것보다, 실제 피해자의 이름 하나하나와 피해 사실을 적시해 보내는 게 보상을 받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긴 이름의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검사와 변호사, 교수의 경험을 고스란히 쏟아붓고 있다. 주일 대사관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가 발견된 직후인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박 위원장을 만났다.
 


박인환(60·사법연수원 16기·사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이 성균관대를 다니던 1970년대는 대학마다 역사연구회가 부흥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박 위원장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연구하는 '도산 연구회' 활동을 열성적으로 했다.

"부모의 기대에 맞춰서 법대에 진학하긴 했는데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을 열심히 했죠.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던 때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 민족, 역사,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죠. 그 때 학생활동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그는 2012년 1월 위원장에 취임했다. 건국대 로스쿨 교수로 있던 그가 위원장을 맡게 되자 이명박정부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전 정부와 개인적인 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법조인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시절 '도산연구회' 활동… 민족문제 등에 큰 관심
검사생활 8년 만에 규격에 맞춘 생활 싫어 변호사로
국선변호 집중하며 '흥사단 투명사회 운동'도 활발히

 
"강제 동원됐던 피해자들이 위원회에 위로금 지급을 신청하면 자료를 근거로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각이나 각하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데 준사법적인 활동이죠. 그래서 위원회 활동에 법조인의 업무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사법시험 준비를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니 전까지 100명만 뽑던 사법시험 합격생이 300명으로 늘어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회다' 싶어서 바로 고시공부를 시작해 곧 합격하고 연수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검사에 임용됐다. 그는 "변호사는 어려울 것 같았고, 판사는 너무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검사에 지원했다"며 "사실 별다른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검사 생활을 시작한지 8년이 되던 해에 규격에 맞춰야 하는 생활이 싫어 변호사 개업을 했다.

마침 국선변호사가 한창 부족하던 때였다. 국선변호만 수백건을 맡았고, 시민단체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활동에도 집중했다. 그는 "검사직을 그만두고 1년간은 그냥 좀 쉬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쉬면 다시 일하기 어렵다'고 만류해 어쩔 수 없이 한 일들"이라고 낮춰 말했지만, 이 때의 활동이 그의 중요한 이력이 됐다. 민족과 역사 안에서 개인의 인생을 깊이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2010년 설립 이후 활동 4년째에 접어든 위원회는 일제 시대에 국외로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치러야 했던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피해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지급한 위로금은 5500억원에 이른다. 법적인 배상책임은 일본에 있으므로 '보상금'이나 '배상금'이라는 용어 대신 '지원금', '위로금'이라는 표현을 쓴다.

위원회에 따르면 조선인 2000만명 중 최소 200만명이 당시 일제 강점기에 전쟁에 동원됐다. 국외로 끌려나가 전쟁기지를 건설하는 노동자가 최소 120만명, 연합군을 상대로 싸운 군인은 20만명, 포로를 감시하는 군속·군무원이 10만명이나 된다. 위안부를 포함한 노무자도 있다. 이 중 일부는 해방 후 전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23명은 사형을 당했다. 대부분 국외에서 일본군에게 잡혀온 포로를 감시하며 일본군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법적 배상책임 일본에 있어 '보상·배상금' 표현 안써
그동안 피해자에 지급한 위로금은 총 5500억원 규모
언젠가 제대로 된 사과 받게 사실조사·증거확보 계속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나라는 힘이 없었고 강점기는 오래 지속됐습니다. 대부분이 국가의 독립이나 일제에 대한 항쟁은 떠올릴 수도 없는 환경이었고요. 어쩌다가 당시 사진이나 기록이 발견되면 후손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후손들도 그런 사진을 발견하면 '내가 친일파의 자손이구나'라며 충격을 받을 수 있지요. 대일항쟁기를 거쳤던 사람들은 거대한 수레바퀴에 끼인 사람들이죠. 강제로 동원되고도 전범으로 몰렸던 사람들을 시대의 희생자로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친일파라는 오해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데도 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위원장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도 대다수의 '민초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알리는 일이었다. 해방 후 피해 현황 수립을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사례를 수집하자 강제노동자로 끌려가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의 명단이나 출근 기록표, 당시 상황을 기록한 편지나 일기, 사진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이 자료들을 엮어서 '강제동원명부 해제집(解題集)'을 두권이나 펴냈다. 향후 대일관계 변화에 따라서 배상 근거로도 사용할 수 있는 귀한 증거들이다. 그는 이렇게 모인 자료를 기반으로 사망자에게는 2000만원을, 부상자는 장애 등급별로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지급했다. 생존자에게는 의료보조비를 연간 80만원까지 지급했다.

"일본이 조선의 젊은 사람을 끌고가는 바람에, 그들의 대가 끊기고 가족들의 삶이 처참해졌어요. 위로금은 그 세월과 안타까움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에요. 그러나 피해 보상이 어렵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죠. 사실조사와 증거확보를 꾸준히 해 나가서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 세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끌려간 조선인 최소 200만명
출근기록부·명단·일기·사진 등 피해사례 대거 수집
'강제동원명부 해제집' 2권 발간… 對日배상 근거로

박 위원장은 "위원회의 활동 목표는 철저한 팩트 수집에 있다"며 "일본이 일제강점기 수탈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피해자인 우리나라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후 유대인들은 누가 언제 어디로 끌려가서 어떻게 죽었는지 등의 피해 내용과 사실관계 등을 다 수집했어요. 단순히 '피해를 봤어요'라고 말로만 주장하는 것과 자료를 마련해 주장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독일이 일본보다 유난히 더 양심적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해 국가로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요."

위원회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12월 31일로 업무가 끝난다. 그러나 최근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관동 대지진 때 한국인 피해자 명부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위원회 활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기구 운영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상설화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신고된 사건은 다 처리했어요. 그러나 아직도 신고 안 한 사람이 많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명부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문제도 청산이 되려면 멀었죠. 정부에서도 위원회 활동이 연장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명분은 충분하죠. 민족이 처한 현실을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사회 전반적인 현실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집요하게 명부를 만들 생각입니다."
 
<글=홍세미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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