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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의 힘

소멸하는 것들과 이어져야 할 것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할 때, 하루의 시작을 새벽 체조 소리로 하곤 했다. 새벽 6시가 되면 국민체조 음악이 울리면서, 학교에 재직하는 근무자분들이 새벽체조를 하였다.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농구코트 앞에 모여 체조를 하는 분들의 소리에 새벽 시간의 노곤함에서 정신을 차리곤 했다. 혼자 대구에서 살다보니, 숙소에 돌아가서 혼자서 잠을 청하는 것도 힘들고 하여 밤 시간에 혼자 연구실에서 책을 보곤 했다. 하고픈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가 있다가 듣게 되는 새벽 체조음악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게 되는 밤의 어둠과 다가오는 아침의 경계선에 있던 새벽, 그 새벽을 구별하는 소리에 잠시 혼미해져 가던 정신을 차리고, 기지개를 켜고는 눈을 뜬다. 시간은 용암으로 모든 것들이 사멸한 대지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지만, 시간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소멸시킨다. 변호사들의 삶도 현재의 삶만 남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눈을 뜨라는 국민체조 음악이 없으면 이어져야 할 것들도 사라질 수 있다.

월리엄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우리가 기억하는 명시 중에서 월리엄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이라는 명시가 있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 당신의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 이 먹빛이 마름하는 날 //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 초원의 빛이여! // 꽃의 영광이여! // 다시는 그것이 되돌려지지 않는다 해도 // 서러워 말 지어다 //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 초원의 빛이여! // 빛날 때 //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변호사의 과거가 변호사만 되면 상당한 소득수준을 확보할 수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영광의 날이라면, 그 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날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가 사실은 변호사들의 영광의 시절에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변호사는 기근은 면하면 되는 직업이고, 부자가 되는 것을 목적의 직업이 아니므로, 변호사가 되는 것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확보하지 못해도 비굴하게 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 있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게 되었다면 오히려 영예에 방점을 두고 사회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삶을 사는 쪽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니,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라는 시인의 직관을 믿고 변호사 업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그 힘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 변호사가 찾을 길이다.

변호사의 힘의 원천

변호사라는 직업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이 무엇일까. 변호사는 공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판사와 검사와 같이 공적 기관에 의지한 힘이 없다. 변호사는 대기업과 같은 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재산에 의지한 힘도 없다. 변호사는 정치인이나 행정부과 같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권력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변호사에게 보이는 변호사가 간직한 오묘한 힘은 없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익에 기여하려는 의지, 끊임없이 절차탁마하는 전문성, 스스로를 절제하는 윤리성,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변호사의 힘이 될 것이다. 검사와 같은 힘은 없지만 검사의 상대방으로 인권을 옹호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고, 행정부의 공무원은 아니지만 부당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고, 좋은 정책은 적극적으로 그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도록 하며, 부당한 권력행사를 견제하는 일련의 활동, 그리고 이를 통하여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변호사가 사회 전반의 반석으로 활동한다면 변호사야 말로 없음으로 인해서 그 가치가 있는 오묘한 힘을 가진 무관의 제왕이 되는 것이다.
삶을 사는 것이 가짐을 통해서 얻는 것만큼이나 없음이나 내려놓음으로 인해서 얻는 것이 있다. 변호사단체도, 변호사도 어려운 시절일수록 오히려 공익성을 추구하고, 윤리성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 윤리성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변호사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윤리성이나 전문성이 유지되도록 하여 변호사가 사회적 신뢰자본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이 속에서 변호사의 힘이 나올 것이다. 세상은 권력자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우리 공동체를 정신적으로 이끌고,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었던 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소멸할 운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은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고 이어진다. 좋은 기억은 직분에 충실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신의 국민체조 소리에 잠을 깨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결국 변호사의 힘의 원천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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