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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무관 최초 '女 將軍' 이은수 고등군사법원장

군인으로, 법률가로, 엄마로…혼자라서 외로웠던 순간 참 많아

미국변호사
'제1호 여성 군법무관'으로 시작해 '법무병과 최초의 여성장군'이 된 이은수(48·법무56기)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2 고등군사법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1991년 최초의 여성 군법무관으로 임관한 이후 보통군사법원장, 고등검찰부장, 법무실장을 거쳐 고등군사법원장에 임명되며 '여군 최초'라는 수식어를 경신해온 그에게 지난 순간들은 항상 도전이고 개척이었다. 이 법원장은 "처음 가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 길을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혼자여서 외로웠던 적이 참 많았다"고 말했다. 군인이자 법률가이자 '엄마'인 그는 "무엇보다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제1호 여성법무관으로 출발…'여성 최초'수식어 경신
임관 후 군사 훈련부터 우여곡절… 결국 여군학교로
운동한 적 없었지만 유격PT, 헬기레펠, 막타워까지

 
이은수(48·법무56기·사진) 고등군사법원장을 만나니 어깨 위의 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군복이 참 멋지고 잘 어울린다"고 하자 이 법원장은 "아마 처음 봐서 그럴 것"이라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온 뒤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사복을 주로 입는데 인터뷰 오신다기에 일부러 갖춰 입었어요. 군복을 입고 출근할 땐 별다른 생각을 안 해도 됐는데 사복을 입으면 매일 같은 옷은 못입으니까 오히려 더 신경을 써야 해요."(웃음)

지난 2011년 법무병과 첫 여성 준장이 된 그에게 '별'을 단 이후 달라진 점을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장군이 되면 모든 것을 얻은 듯이 생각하는데 그만큼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선배 한분은 '장군이 돼서 좋은 날은 장군 발표하는 날이랑 계급장 다는 날, 딱 이틀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등군사법원은 예하에 83개의 보통 군사법원을 두고 있는 군 내 유일의 항소심 재판기관이자 최고 군사법기관이다. "이순신 장군은 '군율은 추상같고 군령은 지엄하다'는 명언을 남기셨죠. 그만큼 군에서 준법정신은 강한 군대를 위한 근간이에요. 그런 점에서 군인과 법조인은 유사한 면이 많죠. 군법무관은 군율과 준법정신이 올바로 조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시면 돼요."

이 법원장은 "최근 군사재판 사건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며 "국방부 행정 업무에 대한 법률지원과 유권해석, 법령심사 등 부수적인 법률 업무와 작전 분야 연구 등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대 법대를 다니며 사법시험과 군법무관 시험을 동시에 준비할 때만 해도 그는 군법무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학교 선배들에게서 '군에서 법률업무를 하는 곳이 있다더라', '군에서도 재판을 따로 한다더라' 정도의 얘기만 듣고 지원했다가 한번에 합격했다. 그가 합격한 1990년 당시만 해도 군대에는 여군이 희소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군법무관은 전무했다.

"제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부 남녀공학을 나왔거든요. 그래서 남성이 많은 조직에 대해 특별히 걱정이나 편견은 없었어요.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요즘처럼 많은 시대가 아니어서 군대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남자가 많았죠. 법대 시절에도 207명 중에 여자는 7명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입대하고 나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자가 처음 들어왔으니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할지 위에서도 고민을 했겠죠. 마침 일반 여성장교 양성기관인 여군학교 훈련 시작 기간이 비슷해 그곳에 가서 따로 훈련을 받고 임관은 군법무관 동기들과 같이 했어요".

군대에서의 교육은 밥 먹기 전 구호를 외쳐야 하는 식사 시간뿐만 아니라 순간순간이 낯설고 신기했다. 군 입대 이전까지 별다른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군사 기초훈련을 받아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그런데 참, 군대라는 게 사람을 만드는 곳이더라고요. 처음부터 연병장 10바퀴 뛰라고 안 해요. 3바퀴, 5바퀴, 7바퀴 이런식으로 늘려가죠. 그러다보니 단련이 되더라고요." 그는 "하지만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피티체조부터 헬기레펠, 막타워를 할 때는 군에 들어온 제 선택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며 웃었다.

임관 이후에도 10년이나 유일한 여성 법무관으로 지냈다. 그는 업무 안팎의 문제로 같이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성이 없다는 게 참 외로웠다고 했다. "10년 동안 여자후배가 없었어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툭툭 던지고 싶은 게 있는데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더라고요. 남자 동기들이 있긴 했지만 나눌 수 없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곤 했다. "제가 조금만 반경을 넓혀서 움직이면 다들 주목하니 조심스러웠죠. 군인 아파트에서 우리집 앞에 낯선 차가 와 있으면 우리집에 온 차도 아닌데 '아무개 집에 낯선 차가 왔다 갔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보는 눈이 많다는 거죠."

군 법무관의 역할은 군율과 준법정신의 올바른 조화
전군 법무관 214명 중 67명이 여성… 격세지감 느껴
내년 연말이면 전역… 공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남자동기들과는 달리 진급을 위한 필수 보직인 법무참모에 오르는 것은 큰 난관이었다. 법무참모는 사단급 부대에서 각각의 지휘관에게 법률적인 조언을 하는, 육군 법무관이 진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다.

"당시 군 내에 여군 자체가 별로 없다보니 참모 역할을 하는 여성이 없었어요. 저도 법무참모로 가야 하는데 그쪽에선 '여군을 어떻게 받아'라는 반응이었죠. 군대에서는 운동도 같이 하고 목욕도 같이 하는 그런 시스템이다보니 여자는 껄끄럽다는 거였죠. 여자가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겠고요. 그래서 동기들이 법무참모를 나갈 때 저는 못나갔어요. 그러다가 바로 밑 후배들과 같이 나가게 됐죠. 당시 우리 사단장님은 사모님이 간호장교이였기에 여성을 보는 시야가 넓은 분이셨거든요. 지금도 사단장님께 참 고맙게 생각해요."

의무복무 기간 10년을 끝낸 뒤 전역을 진지하게 고민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군에 남는 것을 택했다. "동기들 중 6~7명을 제외하고 그때 다 전역을 했어요. '나도 같이 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여성 후배 5명이 법무관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주위에서 '후배가 들어왔으니까 더 하라'고 했죠. 제가 10년 동안 겪은 것들을 아무런 노하우 전수 없이 나 몰라라 하고 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어요. 그때 선배들이 제게 '남아라. 남으면 넌 괜찮다'고 했는데 저는 빈말인지 알았죠."(웃음)

그때 들어온 여성 법무관 후배 중 4명은 의무복무기간을 채운 뒤 전역을 했고, 한 명은 중령으로 복무 중이다. 현재 육·해·공군 법무관 214명 중 여성법무관은 67명이다. 그는 "제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군검찰·판사보다는 교육기관의 교관, 송무업무, 법제 업무가 많아요. 아마 저와 같이 동시대를 살아온 전문직 여성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여성 법무관이 많이 늘어났고, 특히 3년 사이에 30~40명이 증가한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돼요.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법무관학교장으로 있는 여성 장군을 만났을 때도 '여성 법무실장이 한국에서 먼저 나왔다'고 부러워하더라고요."

의무복부기간 지나 전역 고민 때 여성후배 5명 입대
10년의'노하우'팽개치고 나갈 수 없어 남기로 결정
가정에서도'군대 말투'튀어나와 시누이가 놀리기도

 
6년전 남편과 사별한 이 법원장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자신의 사진 대신 올해 중학교 1학년인 딸의 얼굴이 올라 있다. 그는 "일을 하며 자녀를 키우는 일이 업무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고 했다.

"전방에 가면 돈을 주고도 애를 맡길 데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로부터 도움을 참 많이 받았죠.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 말을 들어 보면 애가 정말 잘한다고 하는데 저하고 있을 땐 안 그렇거든요. 나만 보면 고집부리고…, 엄마랑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 아마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군에 온 뒤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달라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 법원장은 "어른들과 얘길 할 때 '뭐 했어요'가 아니라 '뭐 했습니까'라고 하니까 우리 시누이가 '언니 군대 말투 나온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웃었다. "제가 불만을 적극적으로 토로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모든 부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면 본인도 스트레스이고 듣는 사람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많이 삭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 직장에서 이렇게 계속 견딘 것 아니겠어요."(웃음)

내년 12월 31일이 되면 그는 고등군사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전역한다. 이 법원장은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만큼 공적인 분야에서 좀 더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되돌아보면 법무관으로 처음 왔던 것도 나중에 변호사가 돼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출발했던 것이었거든요. 앞으로 어느 자리에서든지 기회가 닿는 대로 봉사하는 게 제 소망이에요."
 
<글=장혜진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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