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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Lawketer다

[나는 Lawketer다] 소송은 100m 달리기가 아닌 총력전

조우성 변호사(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님, 이 사건은 무조건 승소해야 합니다."

P사 법무담당자 송과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승소를 강요(?)한다. 하지만 승소를 장담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사건.

"이 사건은 표현대리(表見代理)관련해서 우리에게 불리한 정황이 있다는 걸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변호사님, 하지만 회사 분위기상 패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못합니다. 어떻게든 승소해야만 합니다."

나는 송과장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저와 대표이사님의 면담시간을 한 번 잡아주세요.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텐데요.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보고를 드렸지만 대표님께서는 요지부동입니다."

"그래도 한번 자리를 마련해 주시죠."

며칠 후 나는 P사 강대표와 면담을 가졌다. 면담 전에 나는 소송의 불리한 측면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많이 고민됐다. 실무자인 송과장의 걱정을 들은 바 있기에.

그런데 내가 차분히 소송의 승패 전망에 대해 설명을 하자 강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겠습니다. 그럼 패소에 대비한 플랜 비(Plan B)를 준비해야겠군요.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면 그에 따른 대비를 하면 되죠 뭐."라고 쿨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절대 패소하면 안 된다고 나를 압박하던 실무자.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 듣더니 그에 따른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시이오(CEO).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권한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실무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최고 경영자가 실무자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면서도 CEO는 실무자에게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CEO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CEO와 직접 만나서 소송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기에 '반드시 승소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승소가 아닌 다른 방식(소송 고지를 통한 제3자의 소송참여 유도, 6개월 이상의 소송진행을 통해 시간을 벌어 줌)으로 의뢰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CEO나 임원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그런 자리에 있을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느끼게 된다. 소송은 오로지 하나의 가능성(승소)만을 보고 달려가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종합적인 상황판독과 그에 따른 적확한 액션플랜이 필요한 총력전(Total War)의 성격이 강하다.

전투(Battle)에서 지더라도 전쟁(War)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반대로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전쟁을 아우르는 사령관은 변호사가 아니라 CEO다. 변호사는 용병(傭兵)의 성격이 강하다. 사령관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변호사는 전체 전황(戰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스스로 사령관이라 생각하고 밤새워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결과를 쥐어 짜내는 변호사가 되지 말자. 이는 의뢰인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수시로 객관적인 정보를 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그의 판단을 기다리자.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업가들은 변호사보다 대안(代案) 마련에 더 뛰어났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