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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

언젠가는

'이상은'이라는 가수가 있다. 1988년 지금은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라는 곡으로 등장한 가수이다. 껑충한 키에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던 가수였다. 1970년 생으로 알고 있는데, 연배도 필자 또래여서 같이 공감하는 바가 큰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노래 중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곡으로 '언젠가는'이라는 곡이 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곡을 듣고 필자는 그녀는 이제 가수에서 철학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사람들은 자신이 그 속에 속해 있을 때에는 자신이 속한 세상을 알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렇게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소송

요즘 기획소송이 넘쳐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기획소송은 언론용어로 법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변호사가 특정한 법률쟁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수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원고로 하여 변호사의 주도하에 제기되는 소송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면 어떨까 한다. 부동산 하자소송이나 한국전력을 상대로 하는 소송,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액피해사건 등 회자되는 여러 가지 기획소송을 이런 정의로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기획소송은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기획소송은 그 자체로 선(善)도 악(惡)도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말 다수가 피해를 입고 있지만, 그 다수가 소액의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 법원의 소송절차나 기타 권리구제절차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도와서 권리구제절차로서 소송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런 경우에도 기획소송이 악(惡)인가. 반면 승소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없고, 주관적으로도 승소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 즉 착수금만을 바라보고 소송을 부추긴다면 이러한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존 그리샴의 소설 '불법행위의 제왕(The King of Tort)'을 보면, 집단소송을 하는 변호사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국선변호사로서 집단소송으로 부자가 된다. 이 소설 속 집단소송을 하는 변호사는 소송을 부추기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미국에서 집단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원고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쿠폰화해(coupon settlements)이다. 쿠폰화해를 통해 집단소송 구성원은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피고가 제공하는 상품할인권만 받는 반면에, 화해를 추진한 원고측 변호사는 거액의 보수를 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세상의 제도는 그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중립성을 그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의 행위양식에 따라서 선(善)도 악(惡)도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드는 예로, 회칼은 흔히 조직폭력배들이 사용하는 칼로 영화 등에서 등장하지만, 훌륭한 조리사의 손에 들린 회칼은 미감(味感)을 끌어올려 식사를 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한 도구가 된다.

배고픈 변호사가 증가하면

최근 집단소송입법에 대한 논의가 많다. 경제민주화 입법의 하나로 집단소송이 논의되고 있다. 기존의 증권집단소송 외에 공정거래집단소송, 민사소송법의 특칙으로서 일반집단소송 등 다양한 제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기존의 증권집단소송이 활용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한편에서는 제도 활성화를 하기 위해서 집단소송법을 개정하여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제도이니 확대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미국 집단소송법의 연혁에서 보는 것과 같이 현대형 소송에서는 다수의 소액피해자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 이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면 권리구제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권리구제를 취해서는 이들을 집단으로 묶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집단소송개념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논의는 당해 제도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전체적인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귤이 회수를 건너도 귤 맛이 난다.
어느 편이 옳은지를 논하기 전에 필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집단소송제도를 확대하거나, 그렇지 않은가와 무관하게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로스쿨 이후 배고픈 변호사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미국 격언이 있다. 로스쿨이후 변호사가 급증하고 있으므로, 향후 집단소송이라는 복수 당사자가 일거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변호사들이 당사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해서 회상할 날이 올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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