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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조우성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2012년 5월경. 2년 가까이 끌어오던 큰 사건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주 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져서는 안될 지인(知人) 사건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연이어 패소판결을 받게 되자 '과연 내가 변호사로서 자질이 있기나 하는 걸까?'라는 주기적(週期的)인 질문에 부딪혔다.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쉬엄쉬엄 글을 올리던 내 블로그(www.jowoosung.com) 에 예전에 의뢰인과 의기투합해서 신승(辛勝)을 했던 사건을 간단히 적어서 올렸다. 그런데 며칠 후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리더스북'이었다.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여러편을 묶어서 책을 펴내면 어떻겠냐고.

리더스북이라... 낯이 익은 출판사였다. 그랬다. 몇 년 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께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던 바로 그 출판사. 그 책을 읽으면서 '변호사로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기에 나는 무조건 '좋습니다! 해봅시다!'라고 했다.

17년차 변호사로서 다소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에게 있어 책의 집필은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다. 그러나 웬걸. 나름대로 신나게 써서 한편씩 보내면 여지없이 돌아오는 까칠한 평가.

"변호사님, 글이 너무 '변호사 문체'입니다. 이건 에세이입니다. 좀 더 감정선을 살려서 눌러 써 주세요. 눌러..."

지난 세월 소장이나 준비서면, 의견서등 군더더기를 뺀 요점지향적인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진 나로서는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에세이 문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 때부터 다시 번뇌가 시작되었다. '아, 내가 왜 책을 낸다고 약속을 했을까?' 계약에 따른 책임보다 더 무서운 게 '말 빚'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작년 하반기 내내 끙끙거리며 35개의 에피소드를 정리했다.

글을 쓰면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경험했던 여러 사건들을 다시 정리하다보니 그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 의뢰인과 같이 울고 웃었던 내 모습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아, 이 때는 참 열심히 살았었네. 열정이 있었구나. 그래, 이런 시절이 있었지.'

원고 집필을 마치고 보니 거의 방전 직전이었던 내 몸 속의 '변호사로서의 에너지'가 충전됨을 느꼈다.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경청(傾聽)과 공감(共感)이어야 한다는 내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제목을 찾으려 출판사와 몇 주를 고민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제목이 바로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이다. 난 이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든다.

열린 귀와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의뢰인들을 맞이하고 그들과 같이 동행하는 따뜻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변호사로서의 업(業)에 대한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이 책은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고 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