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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서초동0.917 (빙산을 부수다, 사법개혁)

정승환 교수(고려대 로스쿨)

김희균(서울시립대), 노명선(성균관대), 오경식(강릉원주대) 교수와 함께 이 책을 공동집필하게 된 건 사법개혁 시도가 지금껏 50년 넘게 이뤄져왔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기존의 이슈 중심의 그렇고 그런 사법개혁 논의를 하기보다는 법원과 검찰, 경찰 등 개혁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자는 취지였다.

제목에 들어간 0.917은 전체 빙산에서 물속에 잠겨 있는 얼음의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빙산의 대부분을 의미한다. 현재 사법제도가 1이라면 외부로 보이는 건 0.083 즉,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우리의 기획의도를 표현한다. 부제인 '빙산을 부수다, 사법개혁'은 대한민국 법조타운이 있는 서초동의 나머지 0.917(빙산)을 파헤쳐 깨부수겠다는 야심을 표현한다.

우리가 설정한 독자층은 첫째, 갓 법조계에 입성한 젊은 판·검사이고, 둘째 법학도이며,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이다. 이를 위해 책을 가볍고 재미있게 쓰려고 했다. 또 법조계의 그늘을 콕 집는 적절한 비유와 실례를 많이 다뤘다. 어느 독자는 "사법체계 바깥에서 바라본 제3자의 시선이라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문제점과 해결책이 명확하고 쉽다"는 서평을 내놨다. 우리는 이런 평가를 위해 심층인터뷰와 세미나를 통해 의견을 공유했고 독자들의 독서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체 톤에 일관성을 주었다.

사법개혁은 의식개혁이자 법 개혁이다. 사법제도 개혁의 출발점은 법의 지배(rule of law)이다. 모든 일상의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곳까지 법령으로 규율하여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법 밑에 살지만, 법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건조한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니며, 그것을 아는 사람만을 위한 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사법제도는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린 양상이다. 법조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직업을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적대적인 사회적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법조인들은 외부와의 연계를 끊고 자신들만의 세상에 몰입해서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기성 법조에 대한 불만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으니,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혁명에 성공하면) 우선 모든 법률가를 죽여야 해"라는 대사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사법제도 전반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사법관련 종사자들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법권 밖의 시각을 보며 내부의 관련자 모두 자신의 위치에 서서 돌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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